말을 없애겠다는 이씨의 생각은 사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타당성이 없었다. 이씨 자체가 말이 없고 사교성이 적지만 이걸 사업으로까지 발전시키고 싶어 하게 된 것은 몇 달 전 북어국집 앞에서였다.
북어국집에 가기 전날 이씨는 아내와 크게 싸웠다. 싸움의 시작이 어찌 됐든 이씨의 말없음이 빌미가 된 것은 사실이다. 시고모가 돌아가셔서 내게 된 부줏돈이 많네 적네 하다가 불거진 싸움이 발명가인 이씨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말았다.
“으휴, 내가 진작에 저놈의 연구실인지 공작실인지를 불을 확 싸질러버렸어야 되는데…….”
“뭐라구?”
이씨의 눈썹이 꼬리 올라간 처마가 되자 아내도 지지 않고 입안에 개구리 알을 품었다.
“‘뭐라구’라니, ‘뭐라구’라니? 내가 못할 말 했어? 뭐라고만 하면 ‘뭐라구?’ ‘뭐라구?’ 말고 다른 말 아는 거 있어? 그저 나온다는 말이 평생 가야 ‘뭐라구?’지. 내 그놈의 ‘뭐라구?’만 나오면 그냥 참으려다가도 천불이 나서……. ‘뭐라구?’ ‘뭐라구?’ 허구한 날 ‘뭐라구?’지.”
이씨의 연구실 문이 거칠게 닫혔고, 그날 연구실의 불은 밤새 환하게 켜져 있었다.
밤새 연구를 하고 찾은 북어국집은 아침부터 손님들로 붐볐다.
“자, 마셔.”
하우스 주인인 듯한 여자가 눈이 푹 들어간 놀음꾼에게 술을 권했다.
“아휴. 그것도 사내라고 좆 달고 그러면 안 되지. 나, 걔한테 고리 한번 뜯은 적 없어. 근데 이 웬수가…… 정말 재수가 없으려니까…….”
거북살스러운 말도 말이지만 노기등등한 여자의 눈초리가 거슬려서 이씨는 슬그머니 옆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이씨가 옮겨 앉은 자리 위에는 오래된 브라운관 식 TV가 있었다. TV에서는 연쇄살인범의 현장 검증이 방송되고 있었다.
“8번째 살인 현장에서 태연하게 범행을 재연하는 범인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치를 떨었고 희생자의 어머니는 다시 졸도, 구급차에 실려…….”
낡은 TV에서 나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분노 때문인지 노후한 스피커 때문인지 더 떨리는 듯 들렸다.
북어국이 나오자 이씨는 북어 고깃덩어리를 숟가락으로 건져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명태들도 얘길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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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명태들은 말을 안 했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바다 속에서 떠드는 것들은 고래뿐일 거라고, 어류와 포유류는 그렇게 다른 거라고 북어를 씹으면서 생각했다. 딱히 눈길을 던질 데가 마땅치 않은 이씨는 밥을 먹는 내내, 넘겨지지 않은 채 몇 달 전을 가리키고 있는 달력을 바라보았다.
달력을 넘기는 일도 말을 하는 것과 똑같다. 오늘이 몇 년 모 월 모 일이라는 게 뭐 대수인가? 바다 속에서는 날짜도 계절도 없다. 그래도 모든 것이 태어나고 사라지고 평화롭고 풍요롭고 인자하고 끝까지 인내하지 않는가?
침묵의 세계여!
북어국도 조용한 세상이다. 두부도 말이 없고 파도 말이 없고 뽀얀 국물도 침묵의 국물이다.
이씨는 말없이 북어국을 먹었다.
이씨는 말없이 북어국 값을 치렀다.
이씨는 말없이 거스름 돈을 받았다.
이씨는 돈도 말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주머니에 넣으며, 돈을 꺼내고 넣는 주머니는 입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제 기회가 되면 주머니를 꿰매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아내에게 복수하는 일이기도 했다.
북어국집을 나오니 도로엔 차들이 가득했다. 소싸움을 하듯 버스들이 머리를 들이밀고 그 사이사이로 닭들이 쫓기듯 오토바이들이 앙칼진 소리를 내며 달렸다. 차들도 말이 많았다.
‘말들이 많다.’
‘말들이 많다.’
이씨가 이 말을 속으로 되뇌며 길을 걷는데 신발 밑창에 갑자기 접착제가 붙은 것처럼 땅에 붙었다. 얼마나 갑작스럽게 붙었는지 왼쪽 신발은 완전히 붙었는데 오른쪽 신발은 끝만 붙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멀리서 보면 계속 움직이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씨는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눈동자도 영국 근위병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숨은 코끝에만 조금 달려 있고 살아 있는 증거로는 차들이 지나가면서 먼지를 풍기면 가끔 움직이는 눈꺼풀 정도였다.
외모는 이렇게 갑자기 동상이 돼버렸지만 이씨의 몸 안에서는 새 세상이 열리기라도 하듯 환호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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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없애자.”
“침묵은 금이다.”
“말은 똥이다.”
“조용할 권리를 달라.”
그런 고함소리 뒤로 심지어 “이씨! 이씨!” 하고 연호하는 소리도 들렸다. 이씨는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웃는 입술 사이로 침이 흘러나왔고 이씨가 발을 떼면서 처음 한 일은 웃음을 거두며 침을 닦는 일이었다.
그 후로 이씨는 말을 없애는 기계를 발명하는 데 모든 시간과 본인의 침묵마저도 갖다 바쳤다. 이씨는 이제 누구와도 즐겁게 이야기를 하곤 한다.
“하하하, 조금만 기다리세요. 됩니다. 바다 속 같은 세상을 곧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이씨의 웃음소리가 고래 뱃속에서 울려 나오는 것 같았다.
드디어 첫 번째 기계가 완성되었다. 옛날 축음기의 혼같이 생긴 나팔이 사과 상자위로 솟아 있었는데 이씨는 그 기계를 ‘길자’라고 불렀다. ‘길자’는 이씨의 아내 이름이다.
이씨는 연구실 안에서 우선 실험을 했다. 전원을 넣자 “윙~” 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길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자 소리가 사라졌다. 자기 목소리를 자기가 삼킨 것이다. 성공의 조짐이 보이자 이씨가 침을 삼켰다. 그의 목젖이 크게 움직이게 보였음에도 연구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침 삼키는 꼴깍하는 소리도 사라진 것이었다. 이씨는 망치를 하나 들었다가 떨어뜨렸다. 망치가 바닥의 철판 위에서 튕겨 올라 다시 못 통 위에 떨어졌는데도 깃털 떨어지는 소리도 나질 않았다. 이씨는 스스로도 놀라 이번에도 신발이 바닥에 딱 붙은 채로 숨만 가늘게 쉬고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이씨가 정신을 가다듬고 첫 번째로 한 소리는 “이런 세상에……”였다. 물론 이 소리도 세상에 나오지는 못했다. 이씨는 뒷걸음질로 연구실 문을 열고 나와 계속 걸어갔다. 그러나 눈은 계속 ‘길자’를 보고 있었다. 여남은 발짝 뒷걸음질쳐 갔지만 마치 자신이 귀머거리가 된 것같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한 발짝 더 딛자마자 세상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이씨는 서둘러 고개를 앞으로 디밀었다. 다시 침묵의 세계였다. 이씨는 연구실로 뛰어 들어가 긴 줄자를 가지고 거리를 재기 시작했다. ‘길자’로부터 9미터 정도까지 말없는 세상이었다. 이 거리는 연구실의 두 배 정도밖에 안 되는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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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는 세상을 만들기에는 턱없이 짧은 거리였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성공에 힘입어 이씨는 그 전보다도 더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연구가 진행될수록 이씨는 더 경쾌해졌다. 그러나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선 점점 더 과묵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씨가 두 번째 기계를 완성했을 때 처음으로 놀란 사람은 길자였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돼서 연구실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 통곡을 하는데 그 이유인즉슨 자기와 아이들이 모두 벙어리가 됐다는 것이다. 물론 귀머거리도 됐으니 이 노릇이 어찌된 거냐고 이씨를 잡고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이씨는 기계의 성능을 알고 싶었던지라 되물었다.
“어디 있었는데?”
틀림없이 서방이 말을 하는데 하나도 안 들리니 길자는 더 큰 소리로 울 수밖에 없었다. 한참 울다가는 자기가 우는 소리도 안 들리는 바람에 억울해서 더 울고, 자꾸 뭐라고 묻는 신랑을 보니 더 미칠 지경이었다. 근데 가만히 입 모양을 보니 알 듯도 해서 울음을 그치고 이씨의 입을 자세히 보았다. 그러고는 금세 알아차리고 목청껏 “부엌!” 하고 외쳤다. 물론 그 말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그때 갑자기 이씨가 일어나 춤을 추었다. 어리둥절해진 길자가 다짜고짜 일어나 이씨의 따귀를 후려갈겼다. 그래도 이씨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부엌이라면 여기서 20미터는 된다는 얘긴데…….”
그날 일로 길자도 이씨가 하는 연구를 알게 됐지만 오히려 더 미친 사람 취급만 할 뿐이었다. 이씨는 이번에는 100미터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기계는 점점 커져서 이젠 거의 연구실 전체를 차지했다. 원래 꼼꼼한 성격인 데다 방법을 터득하고 나니 출력을 높이는 일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드디어 세 번째 ‘길자’가 완성된 날은 나들이 가는 사람들과 가족 단위로 식사를 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사람이 많은 주말이었다.
그날 저녁 6시쯤 밥상을 물리고 연구실로 들어간 이씨는 ‘길자’의 메인 스위치를 올렸다. 안방에서 들려오던 TV 소리, 옆집 가구점의 망치 소리, 차 소리, 저녁나절이면 “계란이 왔어요, 계란. 싱싱하고 굵은 계란이 왔어요” 하고 외치던 트럭 행상의 소리까지 깨끗이 사라졌다.
이씨는 또 망치를 들어 천장 위로 던졌다. 망치는 높이 떠올랐다 철판 위에 떨어졌다 다시 튀어 올라 이번에는 못 통이 아니라 그 옆의 빈 소주병을 깼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없었다. 이씨는 ‘길자’ 설계 도면이 놓여 있는 책상 위로 발을 올려놓고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때 휴대폰 문자가 떴다. 휴대폰을 열어보니 길자에게서 온 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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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수야 TV 좀 보게 그놈의 기계 좀 꺼.
이씨는 빙긋이 웃으며 길자의 스위치를 내렸다.
이씨는 그날 밤 내내 ‘길자’를 켰다 껐다 하기를 반복했다. 옆집 개가 짖어도 켜고, 자동차 경적 소리만 들려도 켜고, 구급차 지나가는 소리, 불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길자’를 켰다.
이튿날 이씨는 연구실에서 나와 하품을 하며 거실로 들어가 TV를 켰다. TV에선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차들이 엉겨 있고 어떤 사람이 들것에 실려 가면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아무 소리도 안 들렸어요.”
카메라는 유치장 철장 안의 선하게 생긴 청년을 비추고 있었다.
“갑자기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구요. 진짜예요.”
환불 소동이 벌어진 극장 앞에선 아직도 사람들이 농성 중이었다.
이씨는 TV를 끄고 다시 연구실로 돌아왔다. 이씨는 지금 37킬로미터(서울 동~서 간 거리는 36.78킬로미터다) ‘길자’에 도전중이다. 이씨는 서울 한복판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