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책’ 코너가 그 대장정을 마무리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마음 한쪽이 허물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디지털 매체에 떠밀려 점점 더 책과 멀어지는 세태 속에서 그나마 둑이 무너지지 않도록 견뎌온 시간과 노력이 소중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1면에 서평 코너가 만들어진 것이 2007년 1월1일이다. 시대의 흐름을 바꿀 만한 사건이 거의 매일 끊이지 않는 ‘역동적인’ 한국에서 신문 1면에 등장한 서평이라니! 이 코너는 ‘책읽기365’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중간에 이름이 바뀌었지만 그 취지와 정신은 꿋꿋하게 유지됐다. 경향 각지의 독서인이 쓰는 칼럼을 지속함으로써 책 읽는 문화를 확산하겠다는 것.
이 시리즈는 ‘책읽는 대한민국’ 캠페인의 연속선상에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2005년 경향신문의 ‘책읽는 대한민국’ 캠페인은 독서교육과 학교도서관, 공공도서관 실태와 예산, 지역서점과 동네책방, 직장의 독서경영, 독서문화의 풀뿌리인 독서동아리, 출판문화와 출판산업, 장애인 독서, 병영 독서, 독서문화 축제 등 책 문화 생태계의 현실을 두루 짚으며 여러 과제를 제시했다. 이 캠페인은 ‘독서문화진흥법’ 제정2006년 12월28일의 한 계기가 됐다. 학교도서관과 작은도서관 지원사업이 펼쳐졌다. 독서경영 우수직장 인증사업이나 독서동아리 지원사업이 기획됐다.
신문 1면 서평 시리즈는 ‘사회적 독서’의 현장이었다. 이 기나긴 서평 시리즈 앞에 놓여 있는 글, 도정일 교수의 ‘독자여, 당신에게서 희망을 찾는다’2007년 1월1일자를 다시 꺼내 읽어본다. 도 교수는 이 글에서 ‘사회적 독서’를 시작해보자고 제안했다. 17대 대선을 앞둔 당시, 새로운 정치를 가능하게 할 궁극적 힘은 ‘시민’에게서 나온다는 것, “시민적 자질을 강화하는 첩경 중의 첩경은 누가 뭐래도 책 읽기이고 독서를 통한 숙고의 능력 키우기”라며 “당신이 뽑아주는 책, 당신이 만드는 책들의 목록”으로 ‘사회적 독서’를 시작하자고 했다. 이 서평 시리즈 3년째이던 해, 나도 “여기 책이 있고, 책 읽는 사람이 있으며, 책 읽는 문화를 감싸 안는 언론이 있다는 메시지가 발신”됐다고 했다.“생각의 기둥 세우는 ‘사회적 독서’ 현장”, 2010년 1월4일
언론 매체에 소개되는 책은 대부분 신간이다. 신문 서평의 특징은 독자가 제대로 읽기 전에 기자와 비평가들이 소개하는 프리뷰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서평 시리즈는 독자의 리뷰였다. 단지 책 소개만이 아니라 책과 함께한 삶의 이야기,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고민과 모색을 담아낸 리뷰는 그 자체로 독서 저널이었다. 책과 삶이 결합된 리뷰를 통해 독자는 거대한 독서공동체를 만들어냈다.
15년1개월, 길다면 긴 시간이다. 세월이 지난 뒤 21세기 초 대한민국 국민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전국의 독서인이 무엇을 탐구하고 모색했는지 짚어보려면 이 시리즈를 들추게 될 것이다. 긴 이어달리기 마지막 주자가 된 듯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신문이 멈출 수 없듯 책 읽기도 멈출 수 없다. 책 읽는 문화를 바탕으로 성숙한 시민사회와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일도 끝이 없다. 그렇기에 다시 희망을 찾아 목소리를 내어본다. “독자여, 읽자, 다시 읽자, 다시 책 읽기를 시작하자!”
★ 경향신문 1월 27일자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