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돌아보니, 내 대답은 매번 달랐다. 도시적 삶에 신물이 나 있을 때는 히말라야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도시농업에 관심이 있을 무렵에는 쿠바라고 답했고, 평화가 화두일 때는 코스타리카에 가서 군대 없는 나라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체험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다가스카르 지도를 오래 들여다보던 때도 있다.
몇 년 전부터는 하나다. 살고 싶은 나라가 어디냐고 물어오면 덴마크라고 말한다. 『삶을 위한 학교』시미즈 미쓰루 지음, 김경인 외 옮김, 녹색평론사를 읽고 나서 덴마크가 일순위로 올라섰다. 그룬트비라는 위대한 선각과 그가 세운 자유학교폴케호이스콜레가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모른다. ‘헬조선’ ‘금수저’ 같은 단어가 귓전을 맴돌 때마다 나는 덴마크의 평생학습을 떠올렸다.
시인이자 역사가, 교육자였던 그룬트비는 민중이 각성해야 국가와 대등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자유학교를 설립했다. 150년 전 탄생한 민중의 학교는 사립 교육기관이다. 현재 60여개가 운영되고 있는데 17세 이상이면 국적에 관계없이 누구나 입학할 수 있다. 창의성, 자율성, 협동적 실천으로 요약되는 자유학교의 모토는 ‘대화와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구체화된다.
‘미래는 교육과 재난 중 누가 승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영국의 작가이자 역사가인 웰스가 100년 전에 남긴 메시지다. 최근 대학 혁신과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마주친 한 세기 전 경고가 또 덴마크를 환기시켰다. 교육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구현해야 한다는 웰스의 권고가 있은 지 한 세기가 지났지만 과연 현대 교육이 재난을 제압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저 둘의 전쟁을 한반도 남쪽에 국한시킨다면 교육은 승리하지 못했다.
안팎의 재난 앞에서 우리의 교육은 무기력하다. 감정조절 장애를 마음의 재난으로, 양극화와 초고령화, 일자리 부족을 사회적 재난으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재난의 한복판에서 살고 있다. 재난이 내면화, 일상화하는 상황에서 살기 좋은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인가라고 캐묻지 않는다면 그것처럼 심각한 재난도 없을 것이다. 행복한 삶, 건강한 사회의 요건은 무엇인가. 사회적 안전과 심리적 안정이 핵심 요건일 것이다. 안전과 안정의 조화. 지금 우리 모두에게 절실한 목표일 것이다.
『덴마크 사람들처럼』말레네 뤼달 지음, 강현주 옮김, 마일스톤이란 책이 있다. 덴마크 출신으로 프랑스에 거주하는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덴마크에서 행복의 원리를 찾아낸 것이다. 『삶을 위한 학교』가 덴마크의 남다른 교육 제도에 초점을 맞췄다면 말레네 뤼달의 책은 덴마크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통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정돈한다. 뤼달의 책에서도 교육은 각별한 비중을 차지한다. 덴마크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열 가지 요건 가운데 두 번째로 교육을 꼽고 있다.
첫 번째는 신뢰다. 덴마크의 가판대에는 상인이 없다. 감시하는 장치도 없다. 지갑을 잃어버려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대부분 찾을 수 있다. 부부가 식당 안에서 점심을 먹는 동안 아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식당 밖에 세워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도 대단히 높다. 덴마크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정부’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부정부패가 없고 개방되어 있으며 국민의 기본권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요소는 교육인데 우리 눈으로 보면 매우 낯설다. 덴마크는 교육 수준을 최고가 아니라 기초 수준에 맞춘다. 엘리트를 키우려 하지 않는다. 덴마크 교육의 궁극 목표는 ‘모든 학생이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이다. 대학은 등록금이 없을 뿐 아니라 대학생들에게 매달 120만원에 달하는 장학금을 지급한다. 이런 교육 환경에서 성장한 덴마크 청년 중 60%는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코 낮은 비율이 아니다. 프랑스는 26%, 독일은 23%에 불과하다. 한국의 청년들은? 아마 20%를 넘지 못할 것이다.
덴마크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나머지 여덟 가지 요소는 자유와 자율성, 기회균등, 현실적인 기대, 공동체 의식, 가정과 일의 균형, 돈에 초연한 태도, 겸손, 남녀평등이다. 이 가운데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 눈에는 단 하나도 없어 보인다. 열 가지 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들이다. 열 가지 중 우선순위를 정하기가 어렵지만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교육을 꼽고 싶다. 웰스가 말했듯이 교육이 바로 서지 못하면 재난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교육 앞뒤에 정치와 예술을 나란히 놓고 싶다. 정치, 교육, 예술은 서로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공통분모가 있다. 미래를 상상하는 것. 진정한 정치라면 지금과 다른 미래를 추구해야 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예술은 말할 것도 없다. 정치, 교육, 예술이 서로 견제하고 보완하는 가운데 미래를 논의하고 함께 실현하는 생태계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정치는 ‘대의제에서 직접민주주의로’, 교육은 ‘교육에서 학습으로’, 예술은 ‘향유에서 창조로’ 전환돼야 한다. 그래야 덴마크처럼, 아니 덴마크를 뛰어넘는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안전과 안정을 기반으로 하는 더 크고 더 많은 미래 말이다.
★ 본 기고글은 경향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