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연으로 이뤄진 짧은 시다. 인과 관계가 뚜렷하고 비유가 어렵지도 않다. 어린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해와 상상문제 제기.은 다른 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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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수준에서 읽으면 이 시는 식물의 한살이이다. 봄에 씨앗이 발아하고 마침내 꽃봉오리가 솟아오른다. 한여름을 견뎌내면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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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앞두고 뿌리와 줄기는 열매를 떨군다. 번식을 위한 이별인데 이별 속에 또 다른 만남이 내장되어 있다. 씨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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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씨앗이 여무는 순간을 차마 저버릴 수 없는 약속 하나가 생기는 순간이라고 썼다. 이 대목에서 시는 성큼, 인간 세계로 들어선다. 그런데 시인이 발견한 약속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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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칠 수 없는 약속은 하나가 아닐 테다. 열매를 떨군 나무는 ‘이 자리를 지키겠다’라고,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씨앗은 ‘반드시 살아내겠다’라고 다짐했으리라. 뿐이랴, 벌 나비는 물론 땅과 물, 해와 달도 동참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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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청년기, 열매=중장년기, 씨앗=노년기죽음과 탄생.. 이렇게 대입하면 이 시는 전혀 다른 맥락에 놓인다. 함께 캐물어 보자. 지금, 젊은이와 중년 그리고 노년 사이에 ‘새로 생긴 약속’은 무엇일까. 아니, 서로 약속하기는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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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서 씨앗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순환 고리가 조만간 끊어질지 모른다. 기후 대재앙이 닥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국가, 우리의 문명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않으려 한다. 어제 같은 오늘을 살고, 오늘과 다를 바 없을 내일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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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간, 지구 생태계가 이렇게 연일 사이렌을 울려대고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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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