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면 집은 늘 비어 있었다. 마을도 고요했다. 다들 들에 나가 있었다. 허기진 배를 쓰다듬으며 가마솥 뚜껑을 열면 옥수수나 감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곤 했다.
우리 집만 가난한 것은 아니었다. 이웃도 넉넉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 안전망’이 살아 있었다. 품앗이·울력·계·두레…. 나누고 모으면서 함께 살았다. 가난한 집들이 가난한 이웃과 더불어 가난의 무게를 이겨냈다.
우리가 함께 읽는 시 「낮달을 볼 때마다」는 저 가난한 시절의 마음 씀씀이가 오롯하다. 큰집과 작은집이 같은 마을에 살았던 모양이다. 집성촌이었을까. 큰어머니는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 작은집이 늘 마음에 걸렸을 터.
들에서 돌아와 솥뚜껑을 여는 어머니나 누이를 상상해보자. 그릇만 보아도 누가 갖다 놓은 밥인지 한눈에 알아보았으리라. 고봉밥보다 큰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이 더 크게 느껴졌으리라. 큰집과 작은집은 더 가까워졌으리라.
‘낮달’을 생각한다. 빛이 없어 존재감이 없는 달. 쓸모없는 달.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달. 하지만 낮달은 분명 하늘에 떠 있다. 우리가 올려다보지 않을 뿐이다. 하기야 밤하늘에 뜨는 달조차 보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가끔씩 고개를 들어보자. 하늘 한복판에 낮달이 떠 있거든, 큰어머니 같은 고마운 분들의 이름을 불러보자. 큰집뿐이랴. 선생님, 선배, 친구, 심지어 낯선 행인까지 타인의 가난에 온기를 불어넣은 이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가난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저 ‘고맙고 미안한 가난’을 잊어버린다면 조만간 이웃과 마을이 영영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