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에 자신에게 던진 질문은 여럿이었을 테다. 계획이 얼마나 성사됐고 어떤 일은 왜 손도 못 댔는지, 누구를 새로 만나고 또 누구와 헤어졌는지, 어디를 다녀왔고 그 결과는 어땠는지….
나는 내 생각을 바꾸게 해준 만남을 중심으로 한해를 정리했다. 지난해에도 고마운 분들을 많이 만났다. 특히 기후 위기를 해결하자며 피켓을 든 노년들. 이해할 수 없는 잇단 참사와 몇권의 책도 내 잠든 뇌를 일깨웠다.
이번 송구영신에는 루미의 시가 화두다. 이렇게 작은 내 안에 들어와 있는 ‘큰 사랑’은 무엇인가. 작은 우리 두눈에 보이는 ‘큰 하늘’은 또 무엇인가. 신을 믿는 이들은 바로 답이 나오겠지만 나는 아직 ‘사랑’과 ‘하늘’에 관한 나만의 사전을 만들지 못했다.
13세기 페르시아 신비주의 시인 루미가 시만 남긴 것은 아니다. 루미는 자신의 학교종교를 세우고 다음과 같이 초대했다. “누구든 오라! 우리 학교는 희망 없는 학교가 아니다. 맹세를 100번이나 깨뜨린 사람도 좋다. 오라!”
루미는 누가 희망을 부여잡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지적했다. 다름 아닌 수없이 맹세를 어긴 사람들. 그가 옳았다. 맹세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랴.
새해에도 맹세를 하자. 깨져도, 어겨도 다시 하자. 그러다보면 내 안의 ‘큰 사랑’과 ‘큰 하늘’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다만 잊지 말자. 뼈에 새겨야 할 맹세가 무엇인지 잊지 않아야 한다. 맹세가 무너지는 결정적 이유 가운데 하나가 맹세를 잊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맹세를 잊지 않겠다는 맹세. 이것이 ‘작은 우리’가 희망을 실현하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