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유명 짜한 곳으로 꽃놀이를 가지 않아도 문밖으로 나가면 곳곳이 ‘꽃 대궐’입니다. 운이 좋아 양켠으로 벚나무가 늘어선 길을 만나면, 꽃들이 팡파르를 울려주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 중이지만 봄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만화방창萬化方暢·만물이 봄기운을 받아 힘차게 자람입니다.
‘봄의 정원’으로 사랑하는 이를 초대하는 루미의 시는 국내 독자들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을 겁니다. 류시화 시인이 엮은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에 소개되면서 암송하는 분들도 제법 있다고 들었습니다. 루미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으로 13세기 페르시아 수피즘회교 신비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입니다. 수피즘은 엄격한 수행을 통해 신을 경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답니다.
수피즘을 배경으로 놓으면, 루미가 정성을 다해 마련한 ‘봄날 야회夜會’ 주인공은 절대자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봄의 정원’은 신을 영접하기 위한 성소聖所이겠지요.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시는 빼어난 연애 시입니다. 이보다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사랑의 초청장’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벚꽃 터널을 지나다 문득 멈춰 섰습니다. 이 봄밤, 나를 위해 ‘꽃과 술과 촛불’을 준비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순식간에 살아온 날들이 다시 정렬되었습니다. 그간 내가 생각해왔던 것과 다른 삶이었습니다. 잔등이 서늘했습니다. 질문을 바꾸자 급기야 봄밤이 싸늘해지고 말았습니다. 내가 ‘봄의 정원’으로 초대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하르르, 하르르 떨어지는 벚꽃잎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살아라, 다시 살아라.”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