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신도시 아파트에는 목련이 제법 많다. 출입문 오른쪽에 백목련이 한그루, 왼쪽에는 자목련이 한그루 서 있다. 건너편 아파트 화단에도 세그루.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면 겨울이 물러가고, 목련이 꽃을 피워올리면 봄이 만개한다.
개나리, 진달래, 철쭉, 벚꽃, 영산홍, 모란, 찔레…. 다투어 피어나던 꽃이 지고 나면 봄은 여름에게 자리를 비켜주는데, 이때 나무들의 이름은 대개 잊혀진다. 꽃에는 그토록 눈독을 들이면서도 꽃을 피워낸 나무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 없다’는 정호승의 시구절은 그래서 사무친다.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런 마음이 우리 삭막한 삶에 한줌 온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마른 잎 다 떨군 목련을 바라보며 속엣말을 한다. 이런 늦가을에 누가 목련, 그것도 목련 열매에 마음을 줄까. 우리에게 목련은 목련꽃 피는 봄날에만 존재한다. 하지만 목련은 여름과 가을은 물론이고 한겨울에도 치열하게 살아 있다. 도종환의 시처럼 우리는 ‘씨앗 들면 꽃 지던 일’을 떠올리지 않는다. 우리는 목련의 4분의 1만 보는 것이다.
봄이 그렇듯 가을도 짧아졌다. 단풍이 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잔등을 보인다. 겨울 채비를 마친 나목 아래서 생각한다. ‘산다는 것은 조금씩 잊는 것’이다. 당연하다. 잊지 않는다면 ‘개울가 돌처럼 부대끼’는 삶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러나 정녕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함부로 잊는다면 그 일, 그 사람은 미래가 된다. 우리를 앞질러 가 길모퉁이에서 기다린다. 그렇다. ‘가지 않고 자꾸 돌아오는 옛날’이 있다. 그런 옛날이 우리 삶의 전후좌우를 만들어준다.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