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많이 변했습니다. 올봄에도 다들 보셨겠지만 꽃 피는 모양새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우리 어릴 적에는 꽃들이 순서대로 피었습니다. 제 온기로 눈을 녹여 피어나는 복수초를 시작으로 산수유꽃, 진달래, 개나리가 피어나면 목련과 철쭉이 기지개를 켜고 이어 영산홍과 벚꽃이 만개했습니다.
요즘 봄꽃들은 무슨 시위를 하듯이 한꺼번에 피어납니다.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습니다. 꽃을 대하는 우리들의 마음가짐도 옛날 같지 않습니다. 전에는 가까이 다가가 유심히 살펴보기도 하고 향기를 맡아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몸에 스마트폰이 ‘장착’된 이후 꽃이 멀어졌습니다. 꽃이 피사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꽃을 보면 사진부터 찍습니다. 문제는 찍고저장하고 그만이라는 겁니다. 누군가에게 전송하고는 그만입니다.
꽃이 지고 나면 사태는 더 심각해집니다. 꽃이 지면 우리는 꽃나무를 잊어버립니다. 신록으로, 녹음으로 돌아가 여름을 맞이하는 ‘열매의 시간’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꽃 진 자리에서 생각합니다. 낙화가 ‘아픈 성년식’이겠구나.
그렇습니다. 꽃이 져야 여름입니다.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는 저 시는 그래서 단순한 그리움이 아닙니다. 내일에 대한 각오이기도 합니다. ‘너’가 지금 열매를 맺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꽃 지는 저녁’은 배가 고파야 합니다. 허기를 채워야 다음날 거뜬히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월16일이 또 지나갑니다. 꽃이 져도 누군가를 잊은 적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전화 한통 없어도’ 꽃 진 자리에서 더 나은 내일을 그리며 늦은 저녁상을 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