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시계에 관한 기억이 몇줌은 된다. 필기도구가 그런 것처럼 시계는 통과의례와 연관된다. 중학교에 들어가 펜글씨를 배운 것처럼 고등학교에 올라갈 때 손목시계를 선물로 받았다. 반자동 오리엔트가 스톱워치까지 되는 전자시계로 바뀔 무렵 나는 청소년기를 벗어났다. 닭 우는 소리와 별자리가 시간을 알려주던 농촌에서 ‘분초 단위’로 돌아가는 거대 도시로 빨려 들었다.
함민복 시인의 ‘죽은 시계’를 읽다보니 고향집 안방 괘종시계가 생각난다. 그 시절 시계는 다들 ‘밥’을 먹었다. 바늘이 9시 부근에서 제자리걸음을 할라치면 아버지나 큰형이 큰일이라도 난 듯 벌떡 일어나 태엽을 감아줬다. 그런데 태엽을 감는다고 하지 않고 ‘밥을 준다’고 말했다. 손목시계는 하루에 한번, 괘종시계는 한달에 한번씩 밥을 먹었다.
근대화 초입에서 일상으로 들어온 신문물은 ‘사람 대우’를 받았다. 건전지를 ‘약’이라고 불렀다. 라디오는 약을 먹었다. 구두도 약이 필요했다. 전기는 방문객이었다. 정전이 되면 ‘전기가 나갔다’고 했고 다시 불이 들어오면 ‘전기가 들어왔다’고 했다. 우리는 신기술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다.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환대한 것 같다.
나도 시로 썼지만, 시계가 ‘밥’을 먹지 않게 되면서 실제로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렇다고 무조건 아날로그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아니다. 생기 있던 그 시절 마음씨를 돌아보자는 것이다. 저 혼자 울던 머리맡 자명종을 잊지 말자. 우리를 잠에서 깨워주던 그 종소리. 신기술로 인해 혼자 우는 사람들이 있다. ‘밥과 약이 다 떨어진 자명종’들. 그렇다. 혼자가 혼자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아니다.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