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의 시에는 여러 미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지명과 호칭의 의미를 재발견했다는 것이다. 사실 땅 이름은 시어詩語로 쓰기에 적절하지 않다. 때가 많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개별화된 말, 혹은 말이 너무 커서 그렇다고 해도 좋겠다.
호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서울이나 제주가 시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것처럼 외삼촌이나 고모도 시인들이 즐겨 호명하지 않는다. 혈연에 관한 시 역시 문장이 길어지기 쉬운 탓이다. 일상에서 쓰는 말은 양날의 칼이다. 낯익어서 말을 하기 쉽지만 낯선 의미를 발생시키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박준의 시는 지명과 호칭을 사적 영역 안으로 자주 끌어들인다. 그러면서도 수식어를 최대한 아낀다. 형용사나 부사를 동원하지 않고서도 정황을 또렷하게 그려낸다. 감정을 절제하는 것이다. 길게 말하지 않고 그저 한 장면을 보여줄 뿐인데 모든 게 다 보인다. 여간만한 솜씨가 아니다.
우리가 함께 읽는 이 시는 얼마나 짧은가. 오랜만에 아들 집을 찾은 아버지가 현관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데, 그 이유라고 털어놓은 ‘사실관계’란 보잘것없다. 40년 전 종암동에서 홀로 살다 가신 할아버지의 냄새가 전부다. 그리고 한 호흡 쉬었다가 삼대三代가 만나는 결정적 순간. “아버지가 아버지, 하고 울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속마음을 우리는 잘 모른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엄연한 현실을 우리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가 엄마, 하고 흘리는 눈물과 우리가 엄마, 하고 흘리는 눈물은 같을 수가 없다. 이것이 함께 살지 못하게 된 우리 삼대의 가족사다.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