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 벗들이 꽃소식을 보내 온다. 눈 속에서 피어나는 복수초 사진이 날아오더니 요즘은 단연 매화다. 클로즈업된 매화 꽃술은 잔뜩 성이 난 것처럼 보인다. 봄을 맞이하는 생명들은 숨이 가쁘다. 꽃과 잎을 피워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한다.
반칠환의 시는 이른 봄날 생명의 약동을 요리사의 주방에 비유한다. 어투가 조금 어른스럽지만 동시처럼 읽힌다. 운율까지 살아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굳이 설명하자면 시에서 요리사는 조물주일 테고 냉장고는 지난겨울일 테다.
그런데 몇번 읽다보면 시를 뒤집어 읽고 싶어진다. 시인이 반어법을 구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리사가 신이 아니고 실제 우리 인간이며, 새싹과 꽃도 야생이 아니라 비닐하우스에서 나오는 ‘공산품’이다.
신의 죽음을 선언한 이래, 우리 인류는 ‘요리사’를 자처했다. 모든 식재료를 천지자연에서 가져오면서도 고마워하지 않았다. 지구를 ‘커다란 냉장고’쯤으로 여겼다. 그 결과, 인류세가 도래했다. 인류세란 인류가 지구 생태계 전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지질시대를 말한다. 지구 곳곳에서 발견되는 플라스틱과 닭뼈가 인류세의 대표적 증거물이다.
문제는 ‘냉장고’가 비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냉장고에서 나오는 쓰레기가 지구 전체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쓰레기뿐이랴. 우리의 ‘문명 생활’ 자체가 지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인간은 ‘지구의 요리사’가 아니다. 진짜 요리사는 지구 생태계 전체다.
벗들아, 시의 마지막행이 아직도 아지랑이로 보이느냐. 나는 CO2로 보인다.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