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강화도에 들어가 한달을 혼자 지냈다. 이른바 ‘한달살이’. 밀린 원고를 정리한다는 핑계를 대고 짐을 꾸렸다. 결혼한 지 35년 만에 처음 해보는 ‘자취생활’. 불편하고 낯설었지만 설레기도 했다.
외진 곳이어서 사회적 거리 두기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무엇보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편의점이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 혼자 살아보니 편의점의 역할이 대단했다. 편의점은 ‘거대한 냉장고’를 넘어 ‘엄마’에 가까웠다. 음식을 비롯해 일상생활과 관련된 거의 모든 ‘편의’를 제공했다.
혼자살이의 진면목은 밥상에서 드러났다. 생각과 달리 혼자 먹는 밥, 소위 ‘혼밥’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김밥을 데워 먹을 때는 소풍 가던 날 아침 어머니가, 쌀밥을 전자레인지에서 꺼낼 때는 늙은 아버지가, 만둣국을 먹을 때는 명절 전날 저녁처럼 온 가족이 나타났다. 혼밥은 독상이 아니었다. 최소한 겸상이었다.
매일 혼밥을 한다면 그 삶은 비정상이다. 나는, 그가 누구와 밥을 먹는지 알면 그가 어떤 삶을 사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행복한 사람과 밥상을 마주하는 사람은 행복해질 확률이 매우 높다. 행복한 밥상이 행복한 삶의 명백한 증거 중 하나다.
1인가구, 독거노인,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같은 신조어가 귀에 익는 동안 혼밥이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혼밥은 반사회적이다. 공동체, 대동사회의 ‘동同’ 자에는 한집에서 밥을 같이 먹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인용 시에서 ‘외간 남자’의 옆자리를 지켜주는 화자의 마음은 그래서 따뜻함을 넘어 거룩해 보일 정도다. 타인혼자을 배려하는 저 마음씨가, 우리가 잃어버린 ‘시의 마음’일 테다.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