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이 유U턴 지점’이란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식탁은 지구’라는 말도 근거 없는 과장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신앙인들은 식탁에서 감사 기도를 올린다. 고등 종교로 인정받지 못하는 민간전통신앙도 음식 앞에서 경건했다. 들에서 새참을 먹을 때도 고수레를 하며 신께 고했다. 호모사피엔스는 역사시대 훨씬 이전부터 음식의 경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달라졌다. 먹을거리가 ‘공장’에서 만들어지면서 달라졌다. 식재료에 바코드가 부착되고 택배가 일상화하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지구에서 밥상으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젊은이들이 ‘치맥치킨+맥주’을 즐길 때 양계산업이나 산업농법의 폐해를 논할 리 만무하다. 기성세대도 마찬가지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면서도 여간해선 해양오염 실태를 거론하지 않는다.
시를 다시 보자. 식탁 위 음식들이 “서로를 모르고 가까이 혹은 조금 멀리 있다.” 문명의 첨단을 구가하는 우리도 “그렇게 있다.” 이것이 사태의 본질이다. 우리가 음식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인간 자신과 천지자연을 알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밥상에서 바로 보자. 기도부터 제대로 하자. 안전하고 건강한 음식을 서로 나누는, 지속가능한 인류세를 이룩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신께 간구하자.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을 생각할 때다. 지구에서 몸으로, 우리 몸에서 다시 지구로 돌아가는 순환 구조를 재발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지구에서 “언젠가 소리 없이 치워질” 것이다.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