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소리가 예년 같지 않다. 밤에는 거의 들리지 않고 한낮에도 왁자지껄하지 않다. 소리와 소리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 개체수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리라. 갑자기 늘어나도 걱정, 갑자기 줄어들어도 걱정. 이 또한 급격한 기후변화 탓이 아닌가 싶어 한숨이 나온다.
대도시에서 살다 근교 산기슭으로 이사 간 한 사람 이야기가 생각난다. 숲속에서 생명과 더불어 살고 싶어 작정하고 도시를 등졌는데 글쎄, 숲이 우거졌는데도 새소리가 들리지 않더란다. 자연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자연이라니. 그 사람은 무서워 서둘러 짐을 쌌다고 한다.
아침에 아파트 단지를 한바퀴 돌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때마다 새소리가 들리는지, 벌과 나비가 날아다니는지, 나뭇잎은 푸르른지, 하늘은 멀쩡한지, 고양이 밥그릇은 어제 그 자리에 있는지 따위를 살핀다. 구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을 때는 마당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그런 날 아침이면 아버지는 “오늘은 어디 멀리 가지 말라”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평생 농부였다.
소음이 소리를 가로막는다. 소리는 자연이, 생명이 내는 소리고 소음은 기계들에서 나온다. 갈수록 소리와 소음의 경계가 뚜렷해진다. 자연의 소리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데, 기계음은 무슨 바이러스 같아 견디기 힘들다. 특히 백색소음. 긴긴밤 불면의 병원체다. 소음의 장벽 너머 생명의 하모니를 들으려면 사람과 천지자연 사이에 빼곡한 전자제품을 치워야 한다. 전원을 끄고 눈을 감아야 한다. 그러면 ‘별빛이 묻은’ 소리가 들어온다. 우주가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면 우리도 저마다 우주다.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