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는 바로 답사로 이어졌다. 시베리아의 중심도시 크라스노야르스크 주립 사범대에서 ‘언어, 문화, 문학’을 주제로 5개국 학자와 문인들이 토론을 벌이고 나서, 스무시간 가까이 횡단열차를 타고 백야를 달려온 직후였다. 긴장은 풀렸지만 여독이 찌뿌드드했다. 이르쿠츠크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다섯시간. 지난 7월6일 오후, 우리 일행은 시베리아의 보석, 바이칼호의 발치에 섰다.
2500만년 전에 생겨났다는 세계 최대의 담수호는 제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약간 흐린 날씨. 하늘에는 뭉게구름, 수면은 수은처럼 고요하게 빛났다. 카페리를 타고 20여분, 알혼섬에 닿자마자 섬에서 제일 큰 마을 우지르를 향해 달렸다. 일행 중에는 12년 전 알혼섬을 방문했던 작가 서넛이 있었다. 그들은 연신 “너무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알혼섬에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우지르 마을 입구에 새로 생긴 호텔에 짐을 풀었다. 바이칼 뷰 호텔. 컨테이너를 한 줄로 이어놓은 듯한 방갈로형 호텔이었다. 멀리서 보면 군대 막사 같았다. 그러니까 3년 전만 해도 송전탑이 없었을 것이고, 그때까지만 해도 휴대전화 서비스를 위한 기지국이나 와이파이 존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원주민 브리야트족의 급격한 문명화 과정이나 바이칼호의 심각한 오염 문제를 환기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인류의 성소聖所에서 신성에 대한 감수성을 재발견하고 싶었다. 하지만 바이칼에서 내가 새삼 재확인한 것은 ‘신인류’였다. 알혼섬 곳곳에서 ‘관광하는 인간’과 마주친 것이다. 내게는 관광객이 최후의 인간으로 보였다. 바이칼에서 영혼의 가장 높은 고도를 경험하고 싶은 나의 기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샤먼바위를 에돌아나가는 유람선을 바라보는데 졸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인류가 순례자에서 여행자로, 여행자에서 다시 관광객으로 변모해온 것 아니냐는 다소 거친 메시지를 서간문 형식으로 풀어쓴 ‘순례’라는 시였다.
시베리아와 바이칼 곳곳에서 ‘관광하는 인류’를 보았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루루 몰려가 저마다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인종과 연령, 성별이 구분되지 않았다. 차 안에서도 찍고, 내리자마자 찍고, 타기 직전에도 찍고, 여럿이 찍고, 혼자서도 찍고, 먹으면서도 찍고, 자기 전에도 찍고…. 그리고 찍자마자 여기저기 보내고…. 관광은 촬영의 연속이었다. 자동차에 이어 카메라, 아니 스마트폰에 의해 여행은 관광으로부터 완전 분리됐다.
여행이 온몸으로 하는 것이면 관광은 두 눈으로 한다. 여행자가 현지인에게 반가운 손님이라면, 관광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소비자일 따름이다. 여행이 타자와 만나면서 자기 삶을 성찰하는 계기라면, 관광은 스펙터클(스토리텔링)을 소비하며 욕망을 재생산하는 자극제다. 그래서 관광객의 두 눈은 관찰, 응시, 교감과 거리가 멀다. 졸시에 썼듯이 관광객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이는 것만 보고, 보여주는 것만 보는, 보이지 않는 것은 절대 보지 않고, 꼭 봐야만 하는 것도 시간이 없다며 보지 않는, 신기하고 화려하고 대단한 볼거리만” 선호한다. 관광객은 시각적 주체이고, 그래서 지독한 소비 중독자다.
고속도로가 막히고 국제공항이 붐비는 휴가철이다. 짐을 챙기면서 한번 자문해볼 일이다. 나는 여행자인가, 관광객인가.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기 위해 떠나는가, 아니면 오로지 사진을 찍기 위해 떠나는 것인가. 제 그림자를 바라보며 저 높은 곳의 절대자를 떠올리는 순례자까지는 아니더라도, 해질 무렵 들어선 낯선 마을에서 환대를 받는 여행자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당장은 불가능할 것이다.
‘돈에 뿌리박은’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여행자로 거듭나기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을 수는 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낯선 사람 앞에서 겸손해질 수는 있다. 우리가 사람 앞에서 사람으로, 생명 앞에서 생명으로 설 수 있다면 달라질 수 있다. 그때 거기서 공감과 연대가 발생할 것이다. 거듭거듭 돌아보자. 우리는 두 눈 인간, 소비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우리가 고작 관광객은 아니었다.
★ 본 기고글은 경향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