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란 변하지 않는 일정한 값을 가진 수나 양을 이르는 수학용어이다. 물리학에서는 일정한 상태에 있는 물질의 성질에 관하여 일정량을 보이는 수를 지칭한다. 상수에 맞서는 말인 변수는 어떤 관계나 범위 안에서 여러 가지 값으로 변할 수 있는 수이다. 서로 관계를 주고받는 둘 또는 그 이상의 변수 중에서 다른 변수에 영향을 주거나 혹은 받는데 영향을 받는 변수가 종속변수이고 영향을 주는 변수가 독립변수이다. 그런가하면 몇 개의 변수 사이에 함수관계를 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또 다른 하나의 변수도 있는데 바로 매개변수이다. 수학과 물리학의 체계는 대부분 상수와 변수의 관계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다. 경제학 등의 사회과학에서도 이러한 수는 마찬가지 혹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삶도 세상도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상수와 변수가 전도되거나 잘못 해석되면 모든 체계와 해석이 어그러진다. 그러니 상수는 상수의 자리를 변수는 변수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도 그걸 분별하지 못하거나 분별을 훼방하면서 제 이익만 탐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에게 북한은 상수였다. 적어도 1970년대 초반까지는 그랬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북한이 위협적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상수로 잡는 데에 반대할 명분도 대안도 없었다. 그 상수를 절대상수로 삼으려 한 것이 바로 '10월 유신'이다. 남한이 북한보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우월하기 시작했는데도 북한의 위협을 막기 위해 우리 식의 정치체제가 필요하다며 만들어낸 일종의 친위쿠데타였다. 절대상수가 되면 어느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한다. 유신헌법에 대해 입도 대지 못하고 코도 홀짝 못하게 재갈 물린 긴급조치법이라는 괴물이 그런 유전자변종의 사냥개였다.
세상은 변했다. 그리고 우리는 당당하게 성장했다. 그 성장의 과정에서 겪은 그늘이 여전히 짙게 드리우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적어도 국력의 총체를 따지면 확실히 그렇다. 그런데도 여전히 북한을 상수로 두고 있는 이들이 있다. 종속변수는 아니어도 매개변수나 독립변수쯤 되는 건 여전하고 분명하다. 하지만 더 이상 상수가 아님은 분명하다. 물론 만사불여튼튼이고 방비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은 법이다. 그러나 그것을 절대상수로 두고 있는 이들은 결코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외눈박이인 건 부끄러워하지 않고 두 눈으로 균형있게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이들을 외려 위험한 세력으로 몰아세운다. 하도 오래 우려먹은 빨갱이라는 낱말은 식상하니 교묘하게 종북이라는 신조어로 뭉뚱그려 몰아세운다. 21세기에 자행되는 매카시즘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온갖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당당하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늙은 매카시가 화려하게 귀환하여 제 잇속을 챙기는 걸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지만 이른바 일베충이라는 젊은 매카시들이 설쳐대는 걸 보면 아연해진다. 상수와 변수조차 분별하지 못하고 남들에게 그것을 강요할 뿐 아니라, 제대로 상수와 변수를 보라고 따지면 같잖은 변수를 상수로 우기며 종북 운운하는 프레임을 덧씌운다.
국정원을 비롯한 관권개입 사건을 워터게이트에 비견하는 이도 있는데, 적절한 비견이 아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선거에 이기려는 한 정당 소수 집단의 음모였지만 지금 우리가 겪는 일은 국가 기관들이 개입한 사건이다. 이러고도 국가라고 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상수와 변수의 그것만큼이나 간극이 크다. 21세기다. 유신쿠데타의 시대가 아니다. 그런데도 독립변수나 매개변수를 불변의 상수로 못 박고 제 성을 쌓는 자들이 설쳐댄다. 무지와 탐욕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늙은 매카시는 곧 자연사하겠지만 젊은 매카시들은 우리의 미래까지 갉아먹을 것이다. 그게 두렵다.
상수와 변수를 분별하지 못하면 운수에 맡기게 된다. 그리고 미래는 미지수가 된다. 도대체 구름은 언제 걷힐까? 구름이 고름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 수학공부 다시 해야겠다.
★ 본 기고글은 한국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