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는 올 초에 전국의 141개 고교로부터 참가 신청을 받은 뒤 고심 끝에 40개 학교를 선정했고, 기본으로 김해 시내 4개 고교를 더했다. 그리하여 44개 학교(각기 학생 4명 및 지도교사 1명)에서 무려 220여 명이 참여했다. 이 행사를 위해 주최 측인 김해시와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은 물론, 전국국어교사모임, 전국학교도서관교사모임, 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 모임과 한국출판인회의, 그리고 인제대 인문학부 교수 등이 운영위원회를 구성,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준비를 했다. 식사와 숙박은 김해대학의 구내식당과 학생 기숙사를, 전체 행사는 동부스포츠센터 대형 강당과 김해대학 강의실을 활용했다. 덕분에 인기 연예인이나 가수를 불러 행사 참여자를 구경꾼으로 만들거나, 최고급 뷔페와 호텔 등 천문학적 돈만 쓰고 실질적 토론은 거의 없는, 통상적인 외화내빈 식 행사와는 전혀 달랐다. 모든 참여자가 자율성과 협동심으로 함께 만드는, 진짜배기 행사였다. 모두에게 진심의 박수를 보낸다.
한편, 전국적 열풍으로 부는 '인문학 바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일례로, 문강형준 문화평론가는 최근 <한겨레> 기고문에서 오늘날 인문학이 정작 '인간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기초로 한다면 "무엇보다 한을 품고 죽음을 택하는 노동자들, 일에 치여 값싼 엔터테인먼트밖에 즐길 줄 모르는 대중, 상상력 대신 수량화된 평가 일변도인 교육현실 등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인문학 열기가 치솟자 책 시장도 '광고 인문학' '사장 인문학' '돈 인문학' '연애 인문학'처럼, '묻지 마 인문학'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원래 인문(人文)이란 '삶의 결'을 다루기에, 참된 인간성에 대한 고뇌가 필수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는 이번 김해 청소년 인문학 대회가 그런 천박성을 극복하고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촛불이 될 것을 믿는다. 크게 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이 대회는, 비록 당초에 지원한 고교생이 모두 참여하진 못했지만, 최종 참여자들끼리는 '비경쟁' 방식이었다. 그래서 모든 참여자가 '상장'을 받았다. 만약, 올림픽 대회처럼 금·은·동메달을 걸고 경쟁적으로 했다면, 사전행사인 토크쇼나 본 행사인 질문과 토론의 전 과정들이 그렇게 재미있고도 평화롭게, 또 생산적으로 진행되진 못했을 것이다. 한 참여 학생은 "이 대회가 비경쟁 방식이라 친구들과 협동을 하면서 모두 더 성숙해진 것 같다."고 했다.
둘째, 이 대회에서 선정된 책들은 주최 측과 운영위원회의 집단적이고 민주적이며 투명한 공동결정의 산물로, 한창 주체적인 삶을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대단히 유익한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란 점이다. 대상 서적은,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조선의 힘>, <데미안> 및 <팔꿈치 사회>였다. 책도 책이지만 저자들도 본연의 학식과 경험에다 나름의 유머와 재치까지 섞어 행복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한 지도교사는 "아이들이 이런 기회를 갖게 된 것이 너무 좋다"고 했다.
셋째, 이 대회는 단순히 '누가 책을 정확히 읽었는지' 또는 '누가 말을 잘 하는지' 따위를 재는 게 아니라 '성숙한 삶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와 같은 공동 화두를 갖고 함께 고민하는 것이었다. 토론도 자율적이고 협력적이었다.
나는 이 김해시 청소년 인문학 모델이 전국으로 퍼지길 바란다. 벌써 좋은 소식도 있다. 이미 전북교육청에서는 '김해 모델'에 따라 전북 차원에서 청소년 인문학 대회를 했다고 하고, 강원교육청도 오는 10월, 자체 인문학 대회를 할 예정이다.
찬란한 승자의 역사만 빛나는 공식 역사에서는 별로 빛나진 않았지만, 500 년 내지 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민중적 가야 공동체의 중심지 김해가 한국 청소년 인문학 모델의 진원지로 계속 발전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