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이 지난 2007년 5월 17일 향년 69세의 일기로 타계하셨다. 권정생 선생은 돌아가시기 전인 2005년 5월 1일 작성한 ‘유언장’에서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권 선생의 이러한 뜻을 받들어 2009년 1월 7일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KCFC : The Kwon Jung Saeng Culture Foundation for Children이 만들어졌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은 설립취지문에서 “물질적인 가난과 고통을 넘어 정신적인 가난과 고통을 극복하는 건강한 어린이로 성장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권정생 선생의 5주기가 막 지난 어느 날,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의 안상학 사무처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80년대 초 리얼리즘 영화를 감상하는 자리에서 권정생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재단의 일까지 맡아 보게 되었다는 그는, 현재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권 선생의 미발표 원고들을 책으로 발간하는 사업과 더불어 “선생의 유지였던 소외된 남북어린이, 세계 분쟁, 기아 지역 어린이들을 돕는 사업을 실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대북 지원은 거의 막혀 있는 실정”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짧지만 권 선생의 문학에 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안 사무처장은 권정생 문학의 중심이 ‘반전평화’와 ‘더불어 사는 삶’이라며, 권 선생의 작품을 어린이들에게 전하는 어른들에게 권정생 선생의 삶을 먼저 알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권정생 선생이) 어떤 삶을 사셨던 분이기에 이런 글을 쓰셨을까를 고민하고 연구한 후 작품을 보면 훨씬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며 “그래야만 아이들에게도 선생의 깊은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 사무처장은 어린이들을 향해서도 권 선생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권정생 선생은 가난과 질병, 폭력과 전쟁 속에서도 꿈을 꾸면서 살았다. 자신의 쓸모를 꼭 밝히겠다는 마음이 권정생이라는 위대한 작가를 만들었다”며 “『강아지똥』에 나오는 ‘하느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언가에 귀하게 쓰일 거’라는 말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살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상학 사무처장은 1962년 안동에서 태어났으며,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7년 11월의 신천’이라는 작품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이다. 펴낸 시집으로 『그대 무사한가』 『안동소주』 『오래된 엽서』 『아배 생각』을 펴냈고, 민주화기념사업회의 간행물의 하나로 『권종대』 등이 있다.
본래 이 인터뷰는 지난 4월 30일 『몽실 언니』 개정판 출판기념회 자리를 빌려 하고자 하였으나, 권정생 선생의 유언장에 나오는 세 분 가운데 한 분인 정호경 신부님(천주교 안동교구)께서 4월 27일 숙환으로 선종하면서 지면 인터뷰로 대신하게 되었다.
나비: 얼마 전 권정생 선생의 5주기가 지났습니다. 매년 추모식이 열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어떤 추모 행사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안상학 사무처장 |
안상학: 5월 17일, 추모일은 요일에 상관없이 지킵니다. 올해는 목요일에 열렸습니다. 멀리서 참석하기 힘듭니다. 추모 주간 앞뒤로 주말에 선생께서 사시던 집을 찾는 분들을 위해 분향소를 차려 두었습니다.
‘권정생 선생 귀천 5주기 추모의 정’의 특별한 점은 권정생 선생 생전의 인터뷰 영상을 감상하는 자리였던 것입니다. 2007년 1월 (주)여산통신 온북TV에서 창비 50주년 기념 영상으로 찍은 겁니다. 당시 행사에는 일부만 쓰고 보관해온 미공개 영상을 기증받았습니다. 평소 인터뷰를 사양하신 터라 영상이 희귀합니다. 선생을 느낄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올해는 또 한 분을 추모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권정생 선생의 유언집행인으로 지목되어 재단 설립까지 활동하신 정호경 루드비코 신부께서 지난 4울 27일 선종하셨습니다. 생전 두 분의 남다른 교분을 생각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두 분과 정을 나누었던 두봉 주교께서 추모사를 하셨습니다.
추모식에서 소외지역 공부방 도서 전달식도 가졌습니다. 올해로 4차가 됩니다. 전국 76개 공부방에 선생의 저서를 비롯해서 양서 100권씩 기증했습니다. 2부에서는 제3회 ‘권정생창작기금’ 시상식도 가졌습니다. 권정생 선생의 삶과 문학의 정신을 잇는 작가를 선정하여 창작기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소설가 김남일의 작품 『천재토끼 차상문』(문학동네)을 선정하였습니다.
사무처장께서는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계시는데, 권정생 선생과 어떤 인연인지 궁금합니다
권정생 선생과는 80년대 초반에 만났습니다. 안동문화회관에서 당시 국내 개봉이 불가했던 리얼리즘 영화들을 감상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정기적으로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선생께서 나오셨죠. 저도 글을 쓰고 있던 터라 관심이 갈 수밖에요. 이후 선생님을 가끔 찾아뵈었죠. 사숙한 스승이기도 하고, 따뜻한 아버지 같은 분이라 여기기도 하면서 따랐죠.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의 활동에 대해서는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듯싶습니다. 이 재단은 어떻게 조직되었으며,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요
권정생 선생께서 유언집행인으로 세 분을 지목하셨습니다. 민들레 교회 최완택 목사, 박연철 변호사, 정호경 신부였죠. 이 세 분이 선생의 유산을 투명하게 관리 집행될 수 있도록 재단을 설립하셨죠. 인세, 저작권 관리와 책으로 묶이지 않은 원고들을 정리해서 책으로 발간하는 사업을 기본으로 하죠. 아울러 선생의 유지였던 소외된 남북어린이, 세계 분쟁, 기아 지역 어린이들을 돕는 사업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은 “여력이 된다면 유언에서 걱정을 잊지 않은 북측과 중동, 아프리카, 티베트 등 분쟁지역 어린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남북의 어린이들이 권정생 선생의 작품세계와 정신을 공유할 수 있는 사업도 전개되는 것이 있는지요. 어려움은 없으신지요
최근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대북 지원은 거의 막혀 있는 실정입니다. 평양에 어린이사과농장을 조성하던 사업이 중지된 상태에 있습니다. 직접적인 통로가 막히다 보니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중국을 경유하여 우회적으로 하고 있는 함경북도지역 유치원 급식지원 일부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외국재단인 ‘유진벨재단’을 통해서 북쪽의 결핵환자들을 일부 돕고 있습니다.
남북어린이가 함께 읽는 옛날이야기 책 발간도 지금은 중지된 상태입니다.
그 밖에도 재단에서는 미얀마 난민촌에 선생의 작품을 발간, 보급하는 단체를 돕기도 하며, 티베트에 도서관 건립 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은 “권정생 선생 유품은 도서 5,208권, 물품 417종, 서류 문서 1,106종”이라고 하는데, 권정생 선생의 유품은 어떻게 정리하셨고, 어떻게 전시하고 계시는지,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선생께서 돌아가시고 정호경 신부께서 ‘유품관리위원회’를 조직하고 유품을 폼목 별로 분류하여 목록작업까지 했습니다. 지금은 재단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재단 출범을 하면서 독자들에게 공개했습니다. 원고를 쓰시던 소반, 비료포대를 재활용한 부채, 등잔, 빨래집게, 상장, 저서 등을 전시해 두고 있습니다.
권정생 선생께서 돌아가신 뒤에도 권정생 선생의 문학을 만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녹색평론사에서 『우리들의 하느님』 개정판(2008)이, 한겨레아이들에서는 김용철 씨의 그림으로 『닷발 늘어져라』(2009)가, 낮은산에서는 김세현 씨의 그림으로 『엄마 까투리』(2008) 등이 나왔고 최근에는 『몽실 언니』 전면 개정판이 간행되기도 했습니다. 권정생 선생의 작품이 거듭 새롭게 우리 어린이들과 어른 독자들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안상학 시인께서는 권정생 선생의 문학정신의 고갱이는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권정생 선생의 작품들이 자라나는 세대들과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올해 5주기에 즈음하여 새롭게 책이 3권 나왔습니다. 지난해 발간한 『동시 삼베치마』가 사투리나 고어 등으로 어린이들이 쉽게 감상하기 어려워서, 40여 편을 엄선하여 약간씩 현대어로 고쳐서 묶은 동시집 『나만 알래』를 문학동네에서 펴냈습니다. 창비에서 책에 실린 적 없는 동화 『까치골 다람쥐네』 등을 모은 동화집 『아기 토끼와 채송화꽃』과 권정생 선생의 산문집 『빌뱅이 언덕』을 펴냈습니다.
권정생 선생의 작품에 깃들어 있는 정신은 반전평화와 남북통일입니다. 일본에서 소학교를 다닐 때 태평양 전쟁, 귀국해서 해방공간에 극심했던 좌우대립, 이어서 터진 한국전쟁을 몸소 겪으면서 전쟁과 폭력만은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셨죠.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했으며, 건강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어린이들에게는 이와 같은 불행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신 거죠. 또 하나는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다운 삶에 늘 목말라 하셨죠. 선생의 작품은 거의 이 그물망에 걸립니다. 제가 이런 작품을 읽고 자라는 세대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이기도 하죠.
이오덕 선생께서는 평소 권정생 선생의 작품이 아이들에게 교과서처럼 읽혀지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권정생 선생의 작품은 어린이들의 교과서에도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에 실리면서 문장을 수정하거나 이야기를 줄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정 정도 왜곡이 일어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권정생 선생의 작품을 어린이들에게 전하는 학교 선생님이나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해주십시오
무엇보다도 권정생 선생의 삶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삶을 사셨던 분이기에 이런 글을 쓰셨을까를 고민하고 연구한 후 작품을 보면 훨씬 풍부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알 수 있는 거죠. 그래야만 아이들에게도 선생의 깊은 마음을 전달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예컨대 『강아지똥』도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전쟁과 폭력을 볼 수 있나요? 있습니다. 자기 땅을 떠나서 낯선 곳에 떨어진 흙덩이에서는 일본에서 태어난 선생의 모습을 봅니다. 수레바퀴가 곧 으깨어버릴 듯 달려오는 상황은 어떤가요? 가까스로 살아나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설정에서 무엇을 알 수 있나요. 전쟁에서 살아남아 고국, 고향으로 돌아온 선생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연결해서 보면 강아지똥은 권정생 선생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삶을 알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며, 그래야 아이들에게도 선생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권정생 선생을 대신하여 온 세상의 ‘낮고 외롭고 아픈 어린이들’에게 하고픈 이야기가 많을 듯합니다
권정생 선생은 가난과 질병, 폭력과 전쟁 속에서도 꿈을 꾸면서 살았습니다. 『강아지똥』에 나오는 “하느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언가에 귀하게 쓰일 거”라는 말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살면 좋겠습니다. 이 믿음 하나가 권정생이라는 위대한 작가를 만들었거든요. 이 작품을 쓸 때 선생께서는 수술을 받고 2년 밖에 못 산다는 말을 들었지요. 그래서 자신의 쓸모를 꼭 밝히겠다는 마음으로 쓴 작품이 바로 『강아지똥』이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