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의 ‘보편성’에 대한 물음
윤지관 (문학평론가)
1. 세계문학의 지형변화
현재 서구문학 중심의 세계문학 구성이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세계문학은 세계의 문학 전체를 포괄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세계적으로 탁월하고 위대한 문학으로 구성된 세계적인 정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대개 세계문학이라는 용어는 이 가운데서 후자의 의미를 강하게 담고 있고, 현실적으로 그 정전이 서구문학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세계문학의 구성이 변해야 한다는 말은 일차적으로는 서구중심의 정전구성, 그 불균형을 시정하여 비서구의 문학들을 포함하는 더 포괄적인 질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리상에 존재하는 세계 각국의 문학이라는 첫 번째 의미를 더 살려내어 두 번째 의미의 세계문학의 질서를 재편성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세계적 정전을 재조정하는 일이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다. 우선 이 같은 재조정 자체가 각 지역의 국민문학들이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세계문학의 장이 수용할 때에만 가능하고, 어떤 작품이 정전 질서에 들어가느냐의 여부 내지 관건은 다름 아닌 서양 중심의 현재의 문학권력이 소유하고 있다. 지구 상의 각지의 문학들이 세계문학의 정전이 되기 위해서는, 단적으로 말해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세계문학 앤솔로지]에 수록되기 위해서는, 역시 세계문학 텍스트들을 생산해내는 서구문단이나 학계나 출판사 등 세계문단 문학권력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근대 이후 세계문학의 개념이 형성되면서 서구중심의 완강한 질서를 유지해오던 세계문학 지형이 일부 변화하는 기미는 이미 나타났고 또 일정 정도 진행되어 왔다. 20세기 후반부터 탈식민화가 이루어지면서, 과거 서구 열강의 식민지였던 국가나 지역에서 산출된 근대문학들이 서구문단이나 학계의 인정을 받아 새로운 정전으로 속속 추가되었다. 그 대표적인 작가들은 대개 지구의 두 지역 즉 남미와 아프리카에 집중되어 있다. 마르께스나 보르헤스를 필두로 하는 남미문학의 거장들과 소잉카나 아체베 등으로 대변되는 아프리카의 대표 작가들이 탈식민시대의 새로운 정전으로 편입된 것이다. 반면 비서구문학 가운데 아시아 문학은 인도와 일본의 한두 작가를 제외하면 세계문학의 정전에 속할 정도의 문명(文名)을 획득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것이다.
탈식민과 더불어 이루어진 이 정전개편이 비서구권으로 세계문학의 영역을 확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따른다. 즉 이 같은 재조정 자체가 과연 얼마나 비서구적인 가치나 관점을 동반하고 있는지가 그것이다. 새롭게 정전으로 떠오른 작가의 출신국가들은 대개 서구의 식민지 시대부터 서구문학과 긴밀한 연계를 맺었고 이것은 독립을 획득한 탈식민의 시대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즉 이 작가들이 사용하는 언어부터가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 유럽의 중심어들이고, 이 지역의 문학 엘리트들은 유럽의 문단이나 문화계에 친숙하였다. 이것은 이 탈식민작가들이 상당한 정도 유럽문학의 전통 속에서 자라났다는 것을 말해주며, 해방 이후의 민족현실을 일정하게 반영하되 서구 주류문학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타자적인 성격을 가지지는 못하였다. 그 반면에 각 지역의 민족어나 지역어로 창작된, 그리고 그곳의 현실을 좀 더 직접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은 세계문학의 질서에 거의 배제되었던 것이다.
지구화가 시대의 흐름이 된 지금의 국면에서 이 세계문학의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을 맞고 있는 듯 보인다. 서구에서 발원한 자본주의 체제의 전 지구적인 확장이 명실상부하게 완성되어가는 시점에서, 세계문학의 양상이 어떠하며 어떤 지향을 가져야 하는지가 국내외 문학계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일부 탈식민지 문학의 정전화에서 더 나아가서 이전에는 국외에 알려지지 않았던 각 지역의 민족/국민문학들이 번역을 통해서, 문학인들의 교류를 통해서 세계적인 차원으로 소개되고 있고, 이것은 서구문학과 비서구문학 사이만이 아니라 비서구권 문학들 사이의 만남으로 확산되어 가는 경향을 보인다. 이 국면에서 각 국민문학의 고유한 성과들이 어떻게 세계문학의 형성에 개입하는가의 문제는, 단순히 서구중심의 기존정전에 여기에 부합하고 승인을 받은 비서구 일부 문학들을 포함시키는 일 이상의 어떤 과제를 동반하는 것이다. 과연 지구화의 시대에 세계문학의 지향은 어떠해야 하는가?
2. 서구적 보편성의 극복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문학이라는 뜻이 아니라면 세계문학은 세계인들에게 보편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읽히는 작품들을 대개 지칭한다. 이것이 세계문학의 ‘보편성’을 말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보편성이란 용어 자체는 여기에 늘 끼어들기 마련인 힘의 관계에 의해 왜곡되기 쉽고 이는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세계문학이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는 당위를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현실의 그 보편성이 다름 아닌 ‘서구적인’ 관점이나 가치라는 특수성의 한 구현이라는 비판이 성립하는 것이다. 즉 세계문학에서 서구적인 특수성이 ‘보편성’을 선점 내지 위장하고 있고 현재까지도 그것은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서구문학이 가지는 일정한 보편성을 단순히 허구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현재의 지구화가 그렇듯이 근대의 세계사는 크게 보면 서구적인 근대성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각각의 비서구지역이 근대화되는 과정 속에서 서구적 근대성의 요소들이 지역의 특수한 현실과 상호작용하면서 일정한 보편성을 획득하게 됨을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서구적인 근대성의 충실한 표현이라고 할 서구문학이 전 지구 차원에서 가지는 일정한 호소력과 매력의 원천을 이루고, 그 결과 서구문학의 특성과 핵심성취들은 근대화가 진행되는 각 국지의 작가나 독자들에게 보편성을 가진 문학으로 대두한 것이다.
그러나 서구적 근대성이 각 국지로 전파되는 과정은 서구와 그 국지들의 거리에 의해서 저마다의 독특한 성격을 지니게 된다. 서구적 근대성이 가지는 어떤 보편성이 있다 하더라도 각 국지의 시공간에서 그 형식이나 내용은 그것을 그대로 복사하거나 되풀이하는 방식이라기보다 지역현실과 만나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특수한 방식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지리적인 거리라는 공간의 차원에서도 그렇고, 근대화의 과정이 뒤늦게 일어난다는 시간적인 차원에서도 그렇다. 이 시공상의 거리는 한편으로 후진성의 표시이기도 하겠지만 달리 보면 서구적인 근대성에 온전히 흡수되지 않는, 그런 점에서 보편화된 서구적 근대성에 대한 대안적인 가능성의 영역을 열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 서구적 근대성의 세계 확산이 폭력적이고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또 다른 하나의 중요한 여건이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비유럽 지역들의 민중들에게 각인된 상처와 원한의 정서 자체가 서구와는 다른 이 지역들 특유의 어떤 보편성을 얻게 하고, 그것이 이 지역의 근대문학들에 서구문학과는 다른 성격과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을 다시 제3세계 문학의 어떤 공통적인 특성으로 추상화하는 것은 그것대로 문제겠지만, 각각의 지역에서 발현되는 민족 혹은 국민문학 속에는 이 세계사적 과정에서 발생한 특수한 체험이 인각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제3세계의 민족문학이 가령 유럽지역들의 국민문학 형성과는 이처럼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문학들에는 서구적 근대성의 이름으로 보편화될 수 없는 요소들이 내재해 있고, 그런 만큼 거기에서 서구적이라는 수식을 벗은 또 다른 보편성의 획득을 말할 여지도 생겨난다. 지구화의 시대에 민족문학이 새삼스런 의미를 획득하는 것은 이처럼 그것이 세계문학의 새로운 지형을 형성하는 기획에서 의미 있는 타자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점이며, 특수한 것처럼 보이는 이 비서구의 민족/국민문학의 성취들이, 서구중심의 정전 구성을 단순히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고유한 문학들의 새로운 관계를 통해 이룩될 세계문학의 갱신을 위한 자산들로 등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서구문학의 ‘보편성’의 틀을 극복할 힘이 될 가능성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3. 민족작가와 국제작가
그러나 민족이나 민족문학의 의미를 강조하는 이런 관점이 지구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에 직면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구화가 한편으로는 민족의 경계를 허물고 넘어서는 활동을 증진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국민국가의 틀이 그로 인해 무너지거나 그 역할이 상실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격해지는 국가 간 경쟁의 주체가 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 같은 비판이 일면적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앞으로의 추세가 국민국가의 종언을 예기하고 있고 한국문학 또한 민족적인 특성을 앞세우기보다 그것에서 벗어나고 세계적인 ‘보편성’을 지향해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하나의 추세를 이룬다.
이 같은 주장에는 현재 통용되는 세계문학은 ‘보편적’인 것이고 국민 내지 민족문학은 ‘특수한’ 것이라는 이분법이 깔려 있거니와 한국문학이 보편성을 획득하려면 특수한 민족적인 관점이나 경험차원을 벗어나서 일종의 초민족적인 혹은 심지어는 무국적적인 지향이나 전망을 얻어야 한다는, 대개 통상의 세계화론자들이 전제하는 논법이 뒷받침되고 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서구적인 보편성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과 맥을 같이 한다. 즉 일면의 진실을 넘어서서 진정으로 보편적인 문학 질서를 창출하고자 하는 세계문학 갱신의 문제의식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심지어 이런 주장이 더 진행되면, 단지 지구화 시대에 세계독자에게 ‘보편적인’ 호소력이 있는 문학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세계시장에서 잘 팔리는 문학을 지향해야 한다는 지점까지 나가기도 한다. 이것이 세계문학의 이념과 어긋나는 관점이라는 것은 부연할 필요도 없겠다.
그렇지만 지구화 시대에 민족경계를 넘어서는 인적 물적 교류가 촉진되고 있는 현실에서 작가라고 해서 이 국제적인 변화를 감각하지 않을 수 없고, 작가로서 민족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는 활동과 시각을 가지는 일이 요구되는 것도 사실이다. 종래의 민족문학이나 국민문학의 범위를 넘어서는 좀 더 세계적인 차원의 사고와 상상력이 긴요할 법하다. 아울러 국내의 독자만이 아니라 세계의 독자에게 호소할 수 있는 어떤 보편성을 작품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욕구도 강해질 법하다. 한국의 작가들도 이제 세계를 의식하고 세계로 나가야 한다는 어떤 강박을 느끼게 된 것이다. 과연 이 지구화의 국면에서 민족적인 ‘특수성’과 세계적인 ‘보편성’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가?
세계문학을 부르디외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장의 개념으로 파악하려 한 파스칼 카사노바가 ‘민족작가’(national writer)와 ‘국제작가’(international writer)를 구별한 것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흥미를 끈다. 이 구별은 특히 문학의 소국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그에 따르면 민족작가는 민족적 상황과 신념에 충실한 작가들이고, 국제작가는 세계문학의 흐름을 이해하고 민족적인 것에의 집착을 벗어나 보편성을 지향하는 작가들이다. 소국의 문학, 다시 말해서 주변부의 문학에서 나타나는 이 두 부류의 작가들 가운데 후자가 오히려 자민족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민족상황이나 감정을 더 잘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사노바의 이 주장은 한국과 같은 세계문학의 주변부 국가에서 발흥한 민족문학의 한계를 지적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러하나 그리 적확한 것은 아니다. 가령 한국의 ‘민족문학론’이 애초부터 세계에 대한 시각과 더불어 세계문학과의 긴장관계에서 탄생한 것이라는 점은 이 관점에서는 볼 수 없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그리고 다른 여타의 소국의 문학에서도, 그 민족문학적인 성취를 이룬 작가가 실제로 카사노바가 말하는 국제작가의 본뜻에 더 근접할 여지도 있는 것이다.
역시 카사노바의 이분법적 구분에 깔려 있는 전제부터가 세계문학의 흐름에 대한 이해에서 서구중심주의를 벗어나 있지 못하다. 그가 말하는 국제적 감각이란 한마디로 현대 서구문학의 주류라고 할 서구 모더니즘 문학에 대한 인식이다. 주변부의 작가가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이 다름 아닌 서구중심의 세계문학의 장에 진입하는 과정이라는 그의 관점은 이 글에서 지향하는 세계문학 갱신의 방향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진정한 세계작가의 길은 민족작가를 넘어서 국제작가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민족작가이기 때문에 국제작가를 겸하게 될 때 비로소 열리게 될 것이다.
이제 마무리를 하자. 민족현실이나 상황 그리고 민족이라는 범주는 세계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작가가 벗어버려야 할 굴레가 아니라, 그 속에서 새로운 차원의 보편성을 창출하기 위해 민족어를 통해 고투해야 하는 ‘세계’의 현장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각 국지의 고투들이, 특히 주변부의 고투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이들이 서로 교류하고 연대하는 활동을 통해서 세계문학의 갱신이라는 전망도 열릴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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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윤지관
1985년부터 덕성여대 영문학과에서 재직 중이며, 현재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실천문학」 편집자문위원,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등을 맡고 있다. 평론집으로 『민족현실과 문학비평』, 『리얼리즘의 옹호』, 『놋쇠하늘 아래서』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을 비롯하여 여러 권의 이론서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