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대지 - 무엇이 ‘세계’인가?
김형수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뱀의 앞발
원고청탁서에서 ‘주변성의 돌파’라는 표현을 읽었다. 한국문학이 모국어의 장벽을 넘어서 국제관계를 정비하는 행사를 통해 얻을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아닌가 한다. 하나는 분단과 이데올로기로 파괴된 자신의 서사적 자아를 재구성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그로 인해 복원되어야 할 이웃 관계를 찾아내는 것. 그를 위해 주변성을 돌파하는 일이야말로 내가 오래 꿈꾸던 것이며, 또한 ‘지난 1년’(작년 8월부터 몽골에 들어가 초원을 취재하면서 소설을 썼다)의 이유였으므로,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는 게 좋겠다. 2004년에 썼던 글이 있어서 현재적 시점에서 해체, 재집필하려고 한다. 요지는 최근 나의 주제가 왜 ‘아시아의 중세’가 되었는지 밝히는 것이다.
자의식
인간은 존재 어딘가에 자신이 아직 닿지 못한 장소를 남겨두고 있다. 그 미지의 장소에는 우리가 한 번도 실체를 본 적이 없는 각자의 영혼이 살며, ‘영감’이라 부름직한, 인간에게 신비한 능력을 주는 정신적 유성(流星)이 흘러다닌다. 여행이란 어쩌면 그곳을 찾아가는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여행을 잘하는 유일한 길은 자연과의 신체적 접촉을 확장하는 데 있다. 최선의 방법은 오직 몇 날이고 걸어서 저 드넓은 대지를 관통하는 수고를 지불하는 것이다. 육신이 낯선 곳으로 떠날수록 정신은 더욱더 자아의 깊은 곳으로 돌아온다. 옛날부터 길이 현자들을 끌고 다녔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십여 년 전, 몽골 여행은 나로서는 그러한 순례의 기념비적인 하나였다. 초원에서는 누구나 막막한 지평선의 한 점을 벗어날 수 없다. 지평선 너머에도 지평선이 있고, 그 너머에도 또 지평선이 있다. 그 어디에서 섭씨 30, 40도의 무더위를 가르고 기습해온 소나기가 한겨울의 추위를 무색하게 한다. 가파른 자연의 변덕 앞에서 재산이 많다거나 지식이 높다거나 용모가 곱다거나 하는 것들은 아무 쓸모가 없다. 개인마다 소지한 사회적, 문명적 도구들이 그곳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광활한 대지는 질주의 본능을 충동질하나, 육체는 미약하고 공간은 크다. 우리는 오직 유한한 존재의 숙명을 확인하고 고개를 숙여야 할 뿐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 몸서리치면서, 멀고 먼 초원에서 겪었던 생리적인 소일을 참는 불편과 여러 날의 불면을 사다리처럼 딛고 올라간 끝에 비로소 자아의 은밀한 장소에 다다랐던 것 같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힘들어했던 갈등의 세계는 끝도 없이 광활한 몽골 초원의 지평선에 비하면 한없이 작고 부질없는 것들이었다. 열쇠 구멍만 한 세상 속에 들어 있는 ‘존재의 미천함’이 그렇게 뼈아플 수가 없었다. 지금도 나는 삶에 지치거나 마음이 아플 때 시야를 가로막는 문명의 축조물들이 완벽하게 지워져 버린 장소에서 저 홀로 허둥대는 인간을 상상하면서 내가 이웃들과 주고받은 상처를 달래고는 한다. 막막한 고원에 서면 누구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같은 한 마리의 외로운 짐승이 된다. 고독에 눈뜨고 사랑할 대상과 친구를 찾으며 ‘흔들림 없는 영혼’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약한 것이다. 짐승들처럼 국가도 제도도 사회적 기반도 없이 대지에 홀로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그 두려움은 우리에게 마치 어머니와도 같은 문화적 고향, 즉 눈앞의 세계를 사랑하고 해석하고 창조할 능력을 공급받을 대지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그러나 지상의 어디에 그러한 대지가 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지상의 척도였다
한 시대의 미학적 준거 틀은 지배자의 용모라는 말이 있다. 이광수의 문체를 한글로 된 근대적 산문의 완성태라고 평하고 주요한의 시를 최초의 자유시라고 말할 때 기준치로 작동되는 준거 틀은 분명히 지배자의 용모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리일 수 없음은 물론이다.
우리 중남미의 거대한 현실이 문학도에게 제안하는 아주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그런 현실에 적합한 단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강에 대해 말할 때, 유럽 독자들은 기껏해야 2,790킬로미터의 다뉴브 강을 상상하면서 이 강을 가장 길다고 생각한다. (…) 이런 이유로 우리의 현실의 크기를 설명하려면 새로운 단어 체계를 만들 필요성이 있다. 이런 필요성의 예는 수없이 많다. 금세기 초에 아마존 상류 지역을 돌아본 네덜란드의 탐험가 그라프는 5분 만에 계란을 삶을 수 있을 정도의 뜨거운 물이 흐르는 개울을 발견했다고 서술하고 있으며, 또한 큰 목소리로 말할 수 없는 지역도 보았는데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큰 소리로 말하면 억수같이 소나기가 내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르케스, 「문학과 현실에 관하여」)
많은 작가들이 이렇게 유럽을 향해 ‘독트린’을 선포한 바 있다. 그런데 한국의 지식인들은 자신의 정신으로 세계를 투사하는 의식의 광학(光學)을 갖지 못한다. 백두산 천지 아래에도 “5분 만에 계란을 삶을 수 있을 정도의 뜨거운 물이 흐르는 개울”이 있으며, 서울에도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돼지꼬리의 사람’은 살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에 한 독자는 한국의 수도인 서울에서 돼지꼬리를 갖고 태어난 한 소녀의 사진을 오려서 보냈다. 내가 소설을 썼을 때 생각하던 것과는 정반대로 서울의 그 소녀는 꼬리를 자르고도 살아남았던 것이다. (마르케스, 「문학과 현실에 관하여」)
한국에서 사용되는 ‘지상의 척도’는 언제나 유럽에서 수입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저 도도한 ‘중심’의 급류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하여 한국인들은 끝없이 ‘자아’를 버렸다. 지식인이 먼저 뉴욕과 도쿄를 복제했고, 예술가가 나중까지 베를린과 파리를 탐닉했다. 바로 이 같은 ‘주체 포기’의 바이러스로부터 한국적 사고의 오리지널리티는 돌이킬 수 없이 손상을 입는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국의 자아사(自我史)는 세계사로부터 소외당한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이 지니고 있는 심미의식의 통합이 근대 미학에 부응한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가령 “이렇게 좋은 날에 내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의 환희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는 회한을 유럽인들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 때문에 우리는 유럽의 눈을 빌려 김소월을 ‘미숙한 신파’로 취급한다.
‘나’라는 달팽이의 껍질에 대하여
우리의 눈에 ‘국제사회 속의 한국인(?)’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세계화 논의가 시작된 이후가 아닌가 한다. 그 전에는 온통 민족사적으로, 혹은 국가사적으로 내홍을 겪는 개인들을 주목해왔다. 마종기의 「차고 뜨겁고 어두운 것」은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예과 시절에 식물학을 좋아했다. 크고 작은 꽃과 나무와 풀잎의 이름을 많이 외우고 있었고, 식물채집과 표본은 언제나 학년에서 으뜸이었고 위안이었다. 30년이 더 지난 요즈음, 나는 그 풀잎이나 꽃의 이름을 거의 다 잊고 말았다. (…)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 때문에 미국을 선택한 나는, 자유를 얻은 대가로 내 언어의 생명과 마음의 빛과 안정의 땅을 다 잃어버렸다. ― 내게도 안정의 땅과 마음의 빛이 있었을까.
여기서 인간에게 ‘안정의 땅과 마음의 빛’을 주는 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내 영혼은 궁극적으로 무엇의 자식인가? 자아의 바깥을 ‘세계’라 부른다면, 문학의 대지는 세계가 된다. 한데, ‘나’라는 ‘자아’의 달팽이 껍질이 ‘국경’의 크기와 동일하지 않다는 데 우리들의 문화적 곤혹과 딜레마가 있다.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는 ‘국가’란 근대 속의 격동기 200년이 만들어놓은 한 쪼가리의 정치 공동체일 뿐. 국경의 크기와 대지의 크기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 한국인들의 인문지리가 자연지리를 이탈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래서 물어야 하는 것이다. 가령,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중남미’ 같은 것, 밀란 쿤데라의 ‘유럽’ 같은 것이 우리에게도 있는가?
동양? 혹은 동아시아?
사실 동아시아라는 말이, 항용 사용되듯이 우리를 일본이나 중국과 묶는 틀로서 준비된 것이라면 나는 실망할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은 우리가 삶에 대해 느낄 수 있는 신비의 크기나 상상력의 크기를 충족시킬 ‘세계의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월드컵 같은 제전을 통해 각국의 대중사회가 드러내듯이 중국은 ‘아시아 의식’이 없고(왜냐하면 자기를 아시아라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은 탈(脫)아시아를 지향하며, 한국의 대중사회는 ‘프라이드 오브 아시아’를 외친다. 그래서 나는 일단 달아나게 된다. 근대로부터, 서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사에 대한 인류의 관념을 재편집해버린 19세기, 20세기의 상식들로부터! 그리고 그 제국주의의 아시아 진출로 산산이 부서져버린, ‘나’라는 자아의 달팽이 껍질을 다시 찾게 된다.
우리는 단순한 반도 국가의 사람들이 아니라 오랫동안 유라시아 대륙을 끼고 살아온 고구려, 발해의 후예들이며, 우리의 노래 속에는 아직도 북간도, 만주, 고비사막, 몽골 초원의 향기가 흐르고 있다. ‘코리아’적인 것들은 지금도 연변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우리의 민속학은 끝없이 그 길을 따라 복원된다.
지워진 대지
나는 우리가 분단과 근대 앞에서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용기 있고, 좀 더 정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 인간의 운명이 시작되는 출발지는 어디인가? 그것은 필연적으로 나를 낳은 곳, 즉 나의 자연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바로 ‘나’라는 육체를 조각한 자연의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변덕스런 기후와 극심한 추위와 건조한 토양, 초원의 유목생활이 형성시킨 피부색과 광대뼈와 짧은 목, 납작한 코……. 우리의 신체에 기록된 이 지울 수 없는 대지의 그림자 위에 우리의 역사가 얹혀 있다. 나의 문화적 정체성은 그 속에서 만들어진다.
무릇 자연에는 자연언어가 있습니다. 바람과 흐르는 물, 있다가 없다가 하는 구름과 비와 이슬, 그 어느 것 하나도 자연이자 자연언어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새소리와 한밤중 천장에서 들리는 쥐의 소리 그리고 시베리아 호랑이의 고독한 포효 역시 이야기가 아닌가요. 이런 자연언어로서의 이야기들이 자연의 생태관계를 유지시키는 것입니다. 이에 못지않게 인간에게도 자연으로부터 충분히 익혀온 것에 더해지며 인간 사회의 흐름과 물음을 거치는 동안 터득한 자신들의 관습언어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인간의 의미가 부여되고 오늘과 오늘 이후가 연결됩니다. (고은, 「아시아 서사시대를 위하여」)
이 같은 사실은 우리에게 필히, 지금은 ‘세계사’ 관념에서 사라져버린 근대 이전의 대지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유라시아가 동양과 서양으로 찢기면서 서양에게 끌려 다니는 동양이 만들어지고, 그 동양의 귀퉁이 한쪽에 마치 절벽 가에 나앉은 땅처럼 단절된 곳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고 믿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리하여 왜 우리가 인류사의 ‘변두리’여야 하며, 농경문화와 유목문화의 생태분계선을 잇고 있는 지구의 한복판이 왜 한쪽은 서양의 귀퉁이로 또 한쪽은 동양의 귀퉁이로 이해되어야 하는가?
무려 시차(時差) 11시간의 광막한 세계인 아시아 각 지역의 선사 이래 수많은 유실(流失)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전승되는 유산으로서의 서사 앞에서 우리는 새삼 옷깃을 여미고 탄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강조하건대, 아시아의 이야기야말로 인간실존의 가장 오래된 구원(救援)이며 그와 함께 그것은 인류의 새로운 문화 고전의 정의(定義)를 낳을 것입니다. (…) 여기서 아시아는 ‘잃은’ 아시아를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가를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고은, 「아시아 서사시대를 위하여」)
중국사와 로마사로 상상되는 역사의 결정론을 이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에서는 왜 유럽이나 중국에서 세운 ‘세계사 상’만을 유일한 ‘세계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거침없이 제기되고 있는 ‘보다 바른 세계사 상’을 찾는 일에 한국의 지성이 동참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왜 ‘아시아의 중세’인가?
돌이켜보면, 20세기의 지상을 21세기의 것으로 교체하느라 바쁜 서울은 ‘탈근대’ ‘탈냉전’ ‘탈이데올로기’ 공사로 언제나 소란했다. 혹시, 서울의 상상력이 너무 자폐적인 것은 아닌지, ‘탈’이라는 글자는 이상하게 나를 대지로 돌려보내는 게 아니라 자꾸 유럽 정신의 더 깊은 골짜기 속으로 밀어 넣는 건 아닌지, 자주 이런 의심으로 골똘해지고는 했다. 그래서 나를 자신의 과거사와 단절되고, 대지에서 멀어지며, 미래의 반대편으로 걷게 하는 것 같은, 이 답답한 인문학적 오지를 탈출하고 싶은 욕망이 쉼 없이 솟구쳤다. 아마도 그런 결과가 나를 고원으로 끌고 간 게 아닐까 한다.
이번에 나는 모처럼 고원의 바람 속에서 소설을 썼다. 초원은 이상한 중독성을 가진다. 초원에 닿으면 나는 잃어버린 고향을 되찾는 느낌에 젖는다. 대지의 원초적 향기가 코끝에 닿을 때마다 내 몸에서 흩어져간 동물의 본성이 하나씩 되돌아온다. 그것은 오랫동안 시를 쓰지 않던 내게 자주 시를 쓰게 했다. 초원을 찾고, 시를 쓰고, 생각에 잠기고……. 이런 사춘기적 상태는 필연적으로 어떤 ‘미의식의 발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지금 ‘능력은 모자랄지언정 행보는 옳았다!’ 하고 생각하고 있다.
2011년에 일어난 세계사적 사건을 들라면 누구나 자스민 혁명, 후쿠오카 원전사고, 월가 점령 시위를 언급할 것이다.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에서 각각 일어난 이 사건들의 원인을 언론이 근원적으로 파헤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의탁해 있는 문명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전복시키기 때문인지 모른다.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자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에 값할 또 다른 ‘인류사 상’을 얻기는 어렵다. 낡은 역사관을 대체할 그림이 있어야 새로운 역사 관념이 들어설 수 있다. 12-13세기 지구의 절반을 휩쓸어 버린 고원의 에너지는 어떻게 생성될 수 있었을까? 이 의문에 제대로 답할 수 없다면 우리가 머릿속에 구성하고 있는 인류사는 허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가톨릭과 비(非)가톨릭의 싸움으로 얼룩진 골방의 중세가 아닌, 이동문명과 정착문명, 농경민과 유목민의 혈전을 낳은 아시아의 중세를 그리기 위해 나름대로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보았다.
뱀의 뒷발
오늘날 지상의 거의 모든 예술에서 드러나고 있는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인간의 시야에서 대지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문명의 어항’ 속으로 도피해버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든 도시에서 창작된 소설에는 자연의 무대가 없고 시에서는 대지를 호흡하는 노래가 없다. 인간이 갖는 근원적인 욕구들이 우리의 본성을 구성할진대, 춥고 배고프고 무섭고 전율하는 욕구들은 모두 우리가 대지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춥지 않고, 배고프지 않고, 무섭지 않으려고 만들어낸 문명이 우리의 삶에서 대지를 내쫓아버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처럼 당황스러운 일은 더 없을 것이다. 마치 공상과학영화의 외계인들이 맑은 공기와 물이 그리워 지구를 찾는 것처럼 문명의 어항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필시 자신들의 얼굴에서 사라져버린 대지의 그림자를 그리워하게 되어 있다. 몽골의 대지에, 몽골의 초원에, 현생 인류가 급격히 잃어가고 있는 본원적 심미적 체험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굳게 믿는다.
-----------------
필자 소개
김형수
1959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1985년 『민중시 2』에 시로, 1996년 『문학동네』에 소설로 등단했으며, 1988년 『녹두꽃』을 창간하면서 비평활동을 시작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정열적인 작품활동과 치열한 논쟁을 통한 새로운 담론 생산은 그를 1980년대 민족문학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시인이자 논객으로 불리게 했다. 작품으로 시집 『가끔씩 쉬었다 간다는 것』, 『빗방울에 관한 추억』, 장편소설 『나의 트로트 시대』, 소설집 『이발소에 두고 온 시』, 평론집 『반응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그리고 『문익환 평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