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지방선거가 한바탕 축제처럼 지나가고 이제는 월드컵 축제가 한창이다. 술렁이는 분위기 속에서도 목숨 걸고 기말고사를 치러야 하는 대학생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종강 후 성적처리 전’의 꿀 같은 휴식시간은 짧아서 더 달콤하다. 낮에는 극장에서, 밤에는 TV 앞에서, 한껏 빈둥거리며 축제를 즐기고 싶은 요즘이다. 간간이 실시간 검색어나 클릭하면서, 머리를 텅 비우고 하루만 더, 하루만 더…
그런데 뭐가 문제일까? 축제의 묘미는 모름지기 세속적인 현실 바깥으로, 자의식의 감옥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엑스터시의 체험일 텐데, 어쩐지 나는 자꾸 발목을 잡히고 만다. 북한팀의 선전에 찬사를 보내고 정대세의 포르투갈어 인터뷰와 지윤남의 복근에 열광하다가, 스크린에 클로즈업 된 학도병 탑의 눈물(<포화속으로>)에 가슴이 짠해지는 우리 모습이 너무 아이러니하기 때문일까? ‘꿈★은 이루어진다’의 설레는 별무리를 개떼처럼 몰려오는 인공기의 선동적인 핏빛 물결 속에서 보게 되는 섬뜩함이란.
월드컵 기간에 개봉한 영화 <포화속으로>는 천안함 사건 직후 상영된 <꿈은 이루어진다>와 기묘한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최고조에 달한 전쟁의 위기감이 비무장지대 남북한 군인들의 월드컵 합동 응원(<꿈은 이루어진다>)을 씁쓸한 코믹 판타지로 만들더니, 이제는 생존자의 실제 인터뷰까지 동원하여 학도병들의 장렬한 전사에 분노와 애도를 강요하는 <포화속으로>가 월드컵으로 급조된 화해의 포즈를 싸늘하게 비웃고 있다. 기분 따라 분위기 따라, 내 아들 내 아버지를 죽인 불구대천의 원수에서 다른 ‘유니폼’을 입은 형제들 사이를 현기증 나게 오가는 것이 그들에 대한 우리의 양가감정은 아닐는지.
북한군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북한 GP와 군복의 리얼리티까지 신경 쓴 영화 <꿈은 이루어진다>에서도 사실 그들은 철저히 남쪽의 시선으로, 남쪽의 소망이 투사된 채 묘사돼 있었다. 그러니 ‘잊지 말자, 6. 25!’를 부르짖는 <포화속으로>에서 어린 학도병들을 탱크로 밀어 붙이는 인민군 유격대가 적개심과 증오의 대상으로 조명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해야 하나? 그렇다 쳐도, 압도적인 스펙터클 속에서 “학도병은 군인이다!”, “가자, 포화 속으로!”를 외치는 이 영화는 150억을 쏟아 부은 반공영화일 뿐 아니라 전쟁과 군인정신을 찬양하는 군국주의 영화로 보이기까지 한다. 천안함 침몰 당시 남학생들 사이에서 “진짜 전쟁이다, 군복 다려라!”는 농담(?)들이 심심찮게 오갔던 게 떠올라, 극장에서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 위에 겹쳐지는 안쓰러운 얼굴들은 지난 학기 마치고 입대한, 더럽게 운 없는 일병, 이병들.
지난 지방선거에서 북풍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천안함 사건에 대한 조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월드컵에 간단히 묻혀버렸어도 그 국제적 파장은 계속 번져가고 있으며, 뉴라이트 정권의 군사영웅 만들기 프로젝트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축제는 현실을 견뎌낼 힘을 주지만, 그 자체로 현실을 뒤엎어놓진 못한다. 현실을 바꿔나가는 데는 축제만큼 신나고 멋지진 않지만 축제보다 길고 끈기 있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축제는 영원하지 않으며, 축제가 지나가면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이 지독한 현실이니까. 그나저나, 내 어정쩡한 축제는 이렇게 오늘로 끝인가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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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박진
문학평론가, ‘나비’ 편집위원, 계간 <작가세계> 편집위원. 저서로 『문학의 새로운 이해』(공저), 『서사학과 텍스트 이론』, 『장르와 탈장르의 네트워크들』, 평론집 『달아나는 텍스트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