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 <아바타>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편집자
2009년 나의 연말은 그런대로 무사했다. 소란스런 모임들은 가능하면 피하고 해가 가기 전에 챙겨야 할 사소한 일거리들에 적당히 마음을 붙이다가, 혼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어쩐지 버거우면 편안한 사람들과 가볍게 영화 한 편. 그렇게 본 영화들 중에 <아바타>도 들어 있다.
실사(實寫)와 애니메이션의 경계, 실제와 가상의 경계가 지워진 <아바타>의 스펙터클은 황홀하고 안락했다. 분석의 욕망이 작동한다면 인간의 지배욕과 자본주의의 폭력성, 살아 있는 모든 것들과 영적인 교감을 나누는 생태적이고 신화적인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나는 우선 주인공의 ‘아바타’에 마음을 빼앗겼다.
토착민인 나비족(!)의 외형을 지닌 아바타는 낯설고 두려운 행성 판도라의 환경에 최적화된 생명체다. 아바타에 링크된 제이크는 인간의 작고 무력한 몸, 하반신이 마비된 ‘부적합한’ 자아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놀라운 접속률로 그는 아바타와의 사이에서 괴리감을 겪지 않으며, 최후에는 링크 머신 밖으로 나가 자신의 아바타와 완전히 융합한다. 그럴 수 있다면. 그런 아바타와 합체하여 거칠고 적대적인 세상을 두려움 없이 헤쳐나갈 수 있다면!
때때로 나는 그 어떤 아바타에 실린 채로 사람들을 만나고 행사에 참석하고 이런저런 ‘임무’들을 수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쉽게도 내 아바타는 적응력도 접속률도 뛰어나지 못하여 여전히 서투르고 실수투성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사교적이고 가끔은 탈 없이 일을 끝낸다. 문득 혼자가 되어 주위를 둘러보면 나는 링크 머신 안에서 눈을 뜬 듯, 여기가 어디인지 두리번거리고 내가 누구인지 불안해한다. 어쩌면 나는, 내 변변찮은 아바타보다 더 무력하고 더 수동적이며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존재인지도.
접속을 끊고 비로소 나로 돌아왔을 때, 나는 가장 불완전하고 나를 가장 낯설어한다.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사람들을 만나고 회의에 참석하고 소소한 업무들을 처리하기 위해, 나는 또 아바타와 링크해야 한다. 어수룩하고 부적합한 내 아바타, 어쩌면 나보다 더 나를 닮았을 내 아바타, 한 해 동안 정말 많이 수고했다.
링크 머신을 부수고 맨몸으로 세상과 접촉할 수 없다면, 또는 영화 속의 제이크처럼 온전히 아바타로 다시 태어날 수 없다면, 새해에는 안쓰럽고 모자란 내 아바타와 좀 더 안정된 접속을 유지하기를. 자꾸만 스스로를 불신하지 않으면서, 의심 없이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를. 그리하여 더 열렬히 기뻐하고 더 맹렬히 슬퍼하고 또 누군가를, 혹은 누군가의 서투른 아바타를 기꺼이 사랑할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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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박진
문학평론가, ‘나비’ 편집위원, 계간 <작가세계> 편집위원. 저서로 『문학의 새로운 이해』(공저), 『서사학과 텍스트 이론』, 『장르와 탈장르의 네트워크들』, 평론집 『달아나는 텍스트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