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아침에 본 반짝이는 물체 때문이었다. 아니, 어젯밤 숙취 때문에 미추(美醜)를 구분하는 감각이 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낯선 곳에, 더구나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이 시간에 유유자적하고 있다는 해방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고깃배들은 포구 군데군데 묶여 있었고, 어부들은 부지런히 어구들을 옮기고 있었다. 저만치 층계 아래 참에 있는 두 사람도 눈에 들어왔다. 부부로 보였는데, 처음에는 왜 저 자리에 있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런데 손을 아래위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닌가. 바닷가 마을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지만, 그래도 설마 이런 곳에서, 하면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바로 2미터 눈 아래 바닷물 속에서 은빛들이 수도 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난 그 순간 언젠가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았던 장면을 떠올렸다.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하더니 딱 그 비유에 맞는 순간을 난생처음 겪었다. ‘저놈들은 뭐야, 멸친가’하며 지근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고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해장하러 가자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놈들의 정체는 조금 뒤에 밝혀진다.
초췌한 모습을 한 늙수그레한 일행 여섯 사람은 해장국집으로 몰려갔다. 서산의 해장 명물이라며 누군가 냄비 한가득 무언가를 끓여 나온다. 그런데 입이 써서 그런지 짭짜름하기만 하고 뭔 맛인지 모르겠다. 우럭젓국이란다. ‘우럭젓국?’ 아니, 우럭으로 젓국을 끓이기도 하는구나. 포구의 반짝이던 물고기 떼도 그렇고 우럭젓국도 그렇고, 살면 살수록 배울 게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어찌 해장을 하고 나와서, 하릴없이 아까 고기떼를 보았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기 낚던 부부는 온데간데없었다.
“아, 이럴 게 아니라.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도 한번 낚싯대를 던져 봅시다.”
바닷가까지 와서, 그리고 눈앞에서 물 가득한 고기떼를 본 데다, 넣기만 하면 물고기들이 올라오는데 여기서 그냥 가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의기투합했는지, 아니면 손님들에 대한배려였는지 그곳 멤버 세 사람도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때마침 서울에서 함께 내려간 일행 가운데 자동차 트렁크에 늘 낚시가 들어 있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어디로 갈까 하다가 저 멀리 방파제 끝으로 가기로 했다. 가게에서 물어 미끼로 쓸 새우 한 통을 사서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곳을 피해 한적한 곳으로 갔다. 프로 낚시꾼처럼 보이는 사람이 홀로 줄을 던지고 있었다. 낚싯대 하나를 여섯 사람이, 실제로는 두 사람이 돌려가며 힘껏 던졌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던지는 족족 고기는 물지 않고 바늘만 돌에 걸리는 게 아닌가. 그 자리에서 5분 동안 떼인 바늘이 몇 개인지 모른다. 당장에라도 팔뚝만 한 우럭을 낚을 것처럼 의기양양하던 우리는 금방 의기소침해지고 말았다. 여기는 고기가 물 데가 아니다, 낚시꾼의 솜씨가 형편없어서 그렇다, 갑론을박하고 있는데 글쎄, 조금 전의 그 프로 낚시꾼의 낚싯대가 휘청하는 게 아닌가. 풀고 감기를 여러 차례 되풀이하더니 이윽고 들어 올렸다. 힘센 바닷장어였다. 우리들은 한없이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다가, 다시 힘을 내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뭔가가 물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애초에 방파제 끝으로 온 것은 우럭을 잡자는 것도, 바닷장어를 낚아보자는 것도 그 무슨 멋진 이름을 단 고기를 낚아 올리자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는 슬그머니 낚시를 챙겨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 있던 방파제 초입으로 갔다. 역시 우리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야 살맛이 난다는 생각 옆에는 설마 저기서야 잡겠지 하는 그 어떤 심보가 숨어 있었다. 가는 길에 누군가가 버리고 간 낚싯대를 주워들고는 드디어 우리에게 기회가 올 모양이라고 위로도 했다. 의기양양해져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갔다. 방파제 비탈길을 내려가는 길에 슬쩍 보니 낚은 고기들을 담아놓는 통마다 작은 고기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때까지도 우리는 까마득하게 몰랐다. 우리가 마지막에 어떤 처지에 놓일지. 방파제 비탈길에 있던 30-40명 사이를 어떻게 비집고 한 자리를 차지했다. 우리 오른쪽의 모자(母子)처럼 보이는 이들도, 우리 왼쪽의 부부처럼 보이는 이들도, 그 옆 사람도, 그리고 저만치 떼로 몰려 있는 사람들도 화기애애하다. 아, 그런데, 그런데 우리들의 낚싯대 둘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느낌이 와서 들어 올리면 미끼 새우는 온데간데없다. 그러기를 한 30분 했나. 우리는 천천히 심드렁해져 갔다. 슬쩍 옆 사람들을 보니 연신 들어 올리기 바쁘다. 언뜻 우리 일행인 R시인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여기저기 쭈그려 앉아 뭔가 주워 먹고 있는 게 아닌가. 뭔가 했더니, 바위에 붙어 있는 굴을 따서(캐서) 먹고 있었다. 곁 사람한테서 굴 따는 호미(전문용어로 뭐라 하는지는 모르겠다)를 빌려서. 참 시도 감칠맛 나더니 붙임성도 그만이었다.
● 서산 고파도ㅣ사진제공: 서산시청
전날 저녁을 먹으며 시인한테 들은 어머니 얘기가 걸작이었다. 어느 겨울날 하루는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야, 나 요즘 새 키운다.” 어머니의 뜬금없는 말씀에 시인은 “뭔 말씀이래요. 개도 고양이도 아니고 갑자기 새라니요?” 하고 묻는다. “아 글쎄, 호박들 다 따고, 나무 위로 너무 높이 올라간 두 덩이를 그냥 뒀잖니. 그런데 배가 고팠는지 새들이 들락날락 거리며 호박을 파먹지 않겠니. 그러니 내가 새 키우는 것 아니고 뭐겠어.” 그리고 얼마 뒤에 어머님이 또 전화를 하셨다. 이번에는 쥐를 키운다고 하셨다. 얘기인즉슨 새들이 맛있게 먹던 호박 두 덩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쥐들이 드나들며 맛나게 먹고 있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아마도 K시인의 시심 8할은 어머니한테서 나온 게 아니었을까. 서울로 돌아와서 선물로 받은 시집을 보면서 배꼽으로도 감탄했다.
R시인은 그새 친해졌는지 어느 향우회 청년들과 어울리며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천생 시인이야. 하고 감탄할 수밖에. 왠지 우리 처지가 너무 쓸쓸하게 느껴져 “그게 뭐예요?” 했더니, 딴 굴을 연신 우리 쪽으로 날라왔다. 늙수그레한 여섯 사내가 그 작은 굴을 맛보며 있으니, 우리가 참 안돼 보였나 보다. 바로 옆의 어머니와 아들이 “여기 학꽁치 좀 가져가세요.” 한다. 우리는 흥에 겨워 이 자리에 온 거라 아무 준비가 없었다. 학꽁치를 담아올 알루미늄 접시조차 없었다. 그걸 눈치 챘는지, 알루미늄 접시에 다섯 마리를 담아주시는 게 아닌가. 바로 낚싯대를 내팽개치고, 우리는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었다. 그냥 맨 고기를 먹을 수는 없잖은가.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향우회 사내들이 초고추장을 주는 게 아닌가. 우리는 얼씨구나 하며 얼른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기왕 먹을 거면 회를 떠서 먹자는 의견이 나왔고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R시인이 실력을 발휘할 차례였다. 휘익 가더니 커터 칼을 빌려서 당당히 돌아온다. 한 손에 소주도 한 병 든 채로. 다음 차례는 이 글에서 아직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J시인이다. “아마 일식집 주방장 출신 중에서 커터칼로 회 뜨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이거 체면이 말이 아니네.” 그러면서도 기분 좋게 쓰윽 회를 뜬다. 그런데 10여 센티짜리 학꽁치(나중에 들은 얘기로, 학꽁치는 우리가 흔히 보는 꽁치처럼 자란단다. 그날 우리가 먹은 것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놈들이었다.) 다섯 마리를 누구 코에 붙이겠는가. 소주 한 잔씩 돌리고 손가락을 빨고 있었더니, 또 안돼 보였는지 그 모자분들이 “더 드세요. 우리는 또 잡으면 되지요.” 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염치 불구하고 또 가져왔다. 술이 들어가선지 늙수그레한 여섯 사내가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화기애애하고 있자, 이번에는 옆에 있던 부부가 힘들여 딴 굴을 접시째 주는 게 아닌가. 이거 환한 대낮에 자연산 굴을 마음껏 먹다니 꿈인가 생신가 하며 분위기가 한껏 올랐다. 그런데 이번에는 난데없이 소주 세 병이 공수되어 왔다. 향우회 청년 하나가 손가락에 소주병을 끼워들고 아예 자리를 옮긴 것이다. 빈손으로 와서 빈 낚싯대만 만지작거리던 늙수그레한 여섯 사내는 그날 그렇게 서산의 뭇 사람들한테서 선물 받은 후한 인심 때문에 행복했다. 다음에 또 그 인심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도둑놈 심보일까.
“게가 그렇게 많다면서요.”
“새삼 놀랍니다. 자연의 복원력이 대단해요.”
기름 유출 사고 뒤 1년 동안 고기잡이를 못했다고 한다. 이 죽은 바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걱정이 컸을 것이다. 그런데 자연은, 바다는 모진 고통을 이겨내며 1년 만에 스스로를 말끔하게 정화하고, 훨씬 더 건강한 모습으로 지금 우리 눈앞에 있었다. 뜻하지 않게 서산의 인심도 마음껏 낚고, 자연의 위대한 복원력의 산 증인인 게 상자도 싣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
---------------------
필자 소개
김수영
한겨레출판 주간. ‘나비’ 편집위원. 책읽기, 산이나 공간 걷기, 사물과 교감하기, 사람들 사이를 기웃거리기를 좋아한다. 그때그때 감정에 따라 모둠 독서를 즐기는 편이라 어떤 날들은 시집만 줄곧 파고, 또 다른 날은 사랑을 주제로 한 책들을 장르 가리지 않고 몇 주 내내 코 박고 본다. 아니면 한 저자의 책들만 모아서 교감하든가. 문자나 영상을 압도하는 소재들과 인간미 물씬 풍기는 역사를 만나는 즐거움이 여간 아니다. 가끔 농담처럼 얘기하지만, 이렇게 하나씩 주운 이야기 파편들로 언젠가 소설 한 권 써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