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항상 집에 있다
“항상 집에 있다- 어느 날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하여 자부심을 느끼며 우리가 거쳐 온 긴 여행길을 가리킨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는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어느 곳에서나 집에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먼 길을 거쳐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니체를 뒤적이다가 집에 관한 몇 구절을 읽습니다
저는 연희동에 삽니다. 신촌동은 제가 살고 싶어 하는 마을이지요. 연희동 일대가 재개발에 들어가 작년에 집을 옮겨야 했을 때 저는 신촌동으로 오고 싶었습니다. 이 마을에 대한 기억들이 참 많거든요. 대학 1학년때 처음으로 갔던 선배의 자취방도, 그 시절 이웃대학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봉원사 쪽으로 올라갔던 이상하고 구불구불한 산길도 모두 신촌동이었니까요. 그렇지만 신촌동에 집을 구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연희동에 살면서 신촌동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신촌동으로 이사 갈 수 있을까? 사실 어디로든 가야합니다. 내년에는 이곳도 재개발에 들어갑니다.
요즘 연희동 집에서 숨어 다른 마을들을 생각합니다. 다른 마을들을 떠올리면서 그곳에 집을 얻어 사는 새로운 삶을 상상하곤 하는데, 니체의 말에 따르면 집과 마을에 대한 상상이란 바로 여행에 대한 상상일지도 모르겠네요. 요즘 저를 가장 오랫동안 상념에 빠뜨리는 어느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당신께 전합니다. 신촌동에 사시든 다른 마을에 사시든 부디 평안하세요. 집을 갖는 것이 사실은 여행이나 모험과 같은 일이기 때문일까요? 한 마을에 원하는 만큼 머물기 위해서 오지를 여행하는 여행자들마냥 위태롭고 고생스러운 일들을 이토록 끊임없이 겪어야 한다니…
2. 용산 멜랑콜리아
오스카 와일드는 햄릿 덕분에 세계가 슬퍼졌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햄릿은 선친의 유령을 보았다는 호레이쇼의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을 믿지 않거나 흘려버릴 수도 있었지요. 그러나 그는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정말 선친 모습이라면 내가 한 번 말을 걸어 보겠어. 비록 지옥이 아가리를 벌리고 내게 침묵을 명령하더라도 말이야.” 햄릿은 진실을 전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유황불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유령으로부터 자신의 죽음에는 끔찍하고 비열한 범죄가 개입돼 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습니다. 햄릿만 이 말을 들었을 뿐 다른 이들은 유령의 말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햄릿은 스스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지나쳐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지나쳐 내가 드디어 망상에 빠진 건 아닐까…’ 그래서인지 유령은 희미해지는 반딧불을 따라 사라지면서 당부합니다. “이 아비를 잊지 말아다오!”
왕좌를 차지한 햄릿의 숙부 클로디어스는 햄릿에게 말합니다. “아버지가 아들보다 일찍 세상을 등지는 것이 세상의 순리이다. 그런데도 어리석게 가슴 속에 슬픔을 담아두는 것은 고인에 대한 불충이며 자연에 대한 역행이며 이성에 대한 반역일 뿐이다.” 이제는 클로디어스의 아내가 되어버린 어머니 거트루드 역시 왕의 말을 거듭니다. “햄릿, 그 어두운 상복을 벗어버리고 폐하께 좀 더 다정하고 부드러운 눈길로 대하거라. 언제까지 그렇게 눈을 내리깔고 돌아가신 아버님만 흠모할 수는 없지 않니? 그게 모든 인간의 운명이란다.”
‘왜 햄릿은 자꾸 아버지의 자명한 사망 경위를 문제 삼는 것일까? 혹시 그는 미쳤거나, 아니면 불순한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닐까? 아, 그렇군. 햄릿은 왕국이 탐나는 것이로군. 숙부로부터 하루 빨리 권력을 뺏어오려는 불순한 정치적 야망을 품고 불온한 루머를 퍼뜨리고 미치광이 난동을 부리는 것이 분명하군.’ 햄릿 주위에는 이렇게 수군거리는 이들도 있겠지요. 이런 수군거림은 우리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그것은 끔찍한 불길 속에서 아버지를 잃은 용산의 유가족들에게 어떤 사람들이 퍼붓는 난폭한 말과 똑같습니다. “망자를 볼모로 정치적 시비를 걸지 말아라. 보상금 흥정을 그만 둬라. 용산 참사가 아니라 용산 난동이다. 거리에서 벌이는 미치광이들의 발광을 멈춰라.”
또 어떤 이들은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이 이렇게 말합니다. “물론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크겠느냐. 그렇지만 관을 떠메고 거리로 나오는 것은 지극히 비이성적이고 몰상식한 행위이다. 그러니 슬픔을 그만 거두고 일상으로 돌아가라. 모든 것은 운명이다. 당신 가족은 단지 운이 나빴을 뿐이다.” 이런 류의 말들은 아들에게 애정어린 조언을 한다면서 왕비가 떠들었던 ‘인간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재개발 지역에서 세입자들이 어처구니없는 보상금을 들고서 무조건 쫓겨나야 한다는 것, 돈 가진 사람의 권리를 최우선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 시장경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할 필연적 운명이라는 이야기 말입니다. 이런 운명에 동의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로 무장한 통치자와 결혼한 국회의원들, 경찰들은 어두운 상복을 벗어버리고 이해당사자들끼리 해결하는 것이 순리이며 더 이상 자신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앵무새처럼 되풀이 합니다.
사실 유가족들은 정치인들과 경찰에게 대단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열한 범죄의 비밀은 우리가 밝혀낼 테니 단지 상황을 기록한 자료를 공개해 달라고, 적어도 사실을 왜곡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햄릿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오필리아와의 연애가 잘 풀리지 않아서라고 엉뚱하게 추측하는 왕비마냥 경찰과 여당의원들은 불순 세력의 외부 개입설 등을 떠벌이면서 오히려 사태를 호도하고 있습니다.
햄릿의 죽마고우들이 그에게 이 정직한 나라에서 왜 너만 울상이냐고 반문하면서 그만 모든 것을 잊으라고 종용할 때 그는 너희에게 좋은 이 나라가 내게는 “최악의 감옥”이라고 말합니다. 관료, 어머니, 연인, 친구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그만 슬퍼하라고 말할 때도 그는 슬픔을 멈추지 않습니다. 꼭 슬픔의 감옥에 영원히 감금된 사람처럼 거기서 나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햄릿은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멜랑콜리한 주인공 중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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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멜랑콜리는 상실한 대상을 마음속에서 도저히 떠나보내지 못하는 정신의 병적 상태나 무능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이라도 그들이 죽거나 떠났을 때 그 상실의 슬픔을 잘 극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사랑의 대상을 찾아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회복 능력을 가져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대로 떠나보낼 수 있는 능력, 슬픔을 잘 잊을 수 있는 능력은 애도의 능력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므로 많은 이들에게 햄릿은 애도의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햄릿을 셰익스피어 비극의 최고작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다른 관점을 들려줍니다. 햄릿의 무능력이야말로 진정한 애도를 위한 필수적인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애도를 한다면서 사실은 너무 쉽고 빠르게 마음속에서 슬픔을 몰아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슬픔이 주는 교훈을 제대로 익힐 틈도 없이 모든 것을 잊어버립니다. 이렇게 성급하고 불충분한 애도로 가득한 난폭한 세상에서 멜랑콜리는 마음의 병이 아니라 위대한 능력이 됩니다. 그것은 슬픔에서 제대로 빠져나올 수 있기 위해 슬픔이 발생한 원인과 조건을 찾아보고 다시는 그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슬픔 곁에 충분히 그리고 차분히 머물 수 있는 능력입니다.
햄릿은 마음속에 간직한 아버지의 시신을 치우지 않고 남들이 헛것이라고 말하는 유령이 전하는 진실을 고통스럽지만 밝혀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진실이 세상에 공표될 때까지 슬퍼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처럼 용산의 햄릿들도 200일이 넘게 아버지들의 시신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그만 슬픔을 멈추라고 강요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일당 앞을 떠나지 못하는 햄릿들은 그 강요의 목소리가 추악하고 거짓된 것임을 잘 압니다. 그들이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떠난다면 또다시 어디선가 더 많은 아버지의 유령들이 분노로 일그러진 모습을 하고 나타나 더 많은 아들들에게 비열한 범죄를 밝혀달라고 호소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용산의 햄릿들은 계속 슬퍼하면서 미래의 또다른 아버지와 햄릿이 겪을 슬픔까지 모두 등에 짊어지고 싸웁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던 것처럼 용산의 햄릿 덕분에 용인되어선 안 되는 사건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이 세계가 충분히 슬퍼졌습니다. 이 참혹한 사건이 주는 깨달음을 우리 마음속에 새기지 못한 채, 남일당 건물이 그냥 깨끗이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햄릿 때문에 제대로 된 슬퍼함이 무엇인지 배우게 된 작가 오스카 와일드. 그의 무덤은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관광 명소 중 하나입니다. 그를 추모하는 이들이 그의 묘비에 와서 그를 기리는 엄청난 낙서와 입맞춤으로 그곳을 온통 어지럽혀 놓았거든요. 용산의 햄릿이 거쳐 가고 머문 곳 전부가 오스카 와일드의 무덤처럼 성찰의 흔적과 사랑의 얼룩으로 어지럽혀지기를 원합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죽음도 시신도 슬픔도 전혀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청소되어, 다른 비슷한 사연을 지닌 동네와 거리들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세련된 빌딩과 고층아파트들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 번들거리고 말쑥한 표정으로 치장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 파리 페르라셰즈에 있는 오스카 와일드의 묘비
햄릿은 아버지인 햄릿왕 독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왕과 왕비 앞에서 연극을 상연합니다. 셰익스피어가 이 연극에 붙인 제목은 「쥐덫」입니다. 무대에서 살인의 실상이 재연되는 것을 본 왕의 낯빛이 창백해지는 그 짧은 순간을 햄릿은 놓치지 않습니다. 거짓이 생쥐처럼 달려가 구멍에 숨기 전에 잡아채는 것처럼요. 우리는 언제쯤 햄릿을 도와 「쥐덫」을 무대에 올리고 죽은 이의 애통한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요?
반드시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햄릿왕이 낮잠을 즐기고 있을 때 클로디어스가 독약을 부어넣은 곳은 다름아닌 왕의 귀였습니다. 귀로 넣는 독약이 가장 신속하고 범죄의 증거도 남기지 않은 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참 섬뜩하게 합니다. 제대로 들을 권리를 빼앗기는 것은 가장 빠르고 자취도 없이 정치의 죽음, 진실의 죽음, 민주주의의 죽음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귀로 흘러드는 것들을 결정하는 손이 될 미디어법이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햄릿은 비열한 범죄를 폭로하기 위해 싸우다 결국 클로디어스가 독을 발라놓은 칼에 찔립니다. 그는 죽어가면서 친구 호레이쇼에게 말합니다. “내 이야기를 전해주게!” 우리는 자신이 목격한 것을 소박하고 정직하게 전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미덕도 갖추지 못한 호레이쇼입니다. 우리는 햄릿왕을 살해한 권력자를 단번에 끌어내릴 막강한 힘도, 대단한 지위도 없습니다. 다만 햄릿이 마지막 장에서 당부하듯 “명문장 따위로 치장하지 말고 진솔하게” 햄릿왕과 햄릿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용산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말입니다. 힘없고 서글픈 사람들에 대한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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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진은영
2000년 <문학과 사회>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2003), 『우리는 매일매일』(2008)이 있다. 각별히 좋아하는 철학자들에 대해 책을 쓰기도 했다.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2004), 『니체의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2007)와 같은 책들이다. 최근에는 청소년들과 니체의 철학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어져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웃음과 망치와 열정의 책』(2009)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