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도록 직접 서점에 가서 책을 구입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도 언제부터인가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편안함에 길들여졌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구하다보니 편안한 점도 많아졌지만 도서 구입 실패율도 높아졌다. 말하자면 ‘꽝’을 뽑을 때가 많아진 것이다. 화려한 도서마케팅 전략 속에서 소비자들은 ‘광고’의 이미지와 카피에 현혹되지 않을 수 없다. 웬만하면 책의 목차까지는 확인해보고 사는 편이지만, 이제 목차마저도 독자의 ‘낚시질’에서 자유롭지 않게 되었다. 매혹적인 목차에 침을 꿀꺽 삼키며 ‘24시간 총알배송’의 이점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오르지만 막상 결과는 ‘24시간 이내 실망’일 때가 많다. 이것이 꼭 아둔한 소비자만의 탓일까. 책을 ‘읽는다’는 것보다 ‘소비하는’ 데 가까워진 우리의 독서문화의 현주소는 어디쯤인 것일까.
책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만만해졌다. 한 권의 책을 사서 읽는다는 경험은 이제 까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만큼이나 쉽고 편안해졌다. 책이라는 매체가 독자에게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 친밀함 자체가 책의 가치를 높이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한 듯하다. 책을 쉽게 쓰고 내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좋은 책을 고르는 것은 훨씬 더 어려워진 것이다. 책을 내는 것을 ‘산고(産苦)’에 비유하는 것이 결코 과도한 엄살이 아니었던 시대는 가버렸다. 게다가 책만이 가진 아우라가 사라져가고 ‘1+1’식 파격 할인 판매식으로 책이 유통되는 사례도 많아져 책의 문화적 가치는 위협받고 있다. 1+1식 할인 판매는 한 권의 책을 팔기 위해 나머지 한 권의 상품성만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식의 파격할인은 결국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책 자체의 문화적 가치를 추락시키는 것이다. 책 한 권에 한 권을 더 얹어준다는 것은 두루마리 화장지나 캔커피 하나를 더 얹어주는 것과는 다르지 않을까. 책은 화장지나 캔커피처럼 한 번 소비하면 사라지는 제품이 아니다. 책은 우리 마음속에 끈질기게 살아남아 우리 인생 도처에서 예상치 못한 영향을 미친다.
책을 편집하는 기술과 기획력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일단 요새 책들은 정말 얼짱들이다. 이렇게 어여쁜 책들이 많이 나오니 책 표지만으로도 흥미로운 전시회를 기획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목차는 어떤가. 목차는 이제 ‘충실한 내용의 집약’이 아니라 밋밋한 내용조차도 섹시하게 도배하는 ‘포장의 기술’이 되어가고 있다. 목차를 꼼꼼히 훑어본다고 해서 마음에 맞는 책을 고르기 힘들어진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무엇보다도 ‘제목의 진화’가 출판 문화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멋진 제목들도 많아졌지만 ‘정직한 제목’은 ‘촌스럽다’는 이유로 사장되어 간다. 특히 가장 소비자에게 유해한(?) 제목들은 ‘한 권으로 읽는 OOO’식의 초특급 속성재배를 부추기는 제목들이다. 어떻게 세계사를 하룻밤에 끝낸다는 것인지, 어떻게 일주일만 공부하면 OOO만큼 영어나 컴퓨터를 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인지, 소비자들은 일단 궁금해서라도 사보게 되지만 결과는 ‘역시나’이기 쉽다. 이것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쌍방과실이겠지만 일단 기획 단계에서 이런 식의 마케팅은 지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제 책에 관해서라면 나는 한없이 ‘구닥다리’이고 싶어진다. 도서 구입 실패담이 늘어갈수록 한없이 그리워지는 것은 ‘누군가 나에게 직접 골라준 책’이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가 월급의 절반이 넘는 각종 전집들을 덜컥덜컥 사 오셔서 엄마의 애간장을 녹이셨지만 어린 나와 동생들은 그 ‘엄청난 과소비’의 행복한 수혜자였다. 엄마의 가계부는 진땀을 뺐지만, 나와 동생들은 한 권을 수십 번씩 읽고 또 읽어가며 책장이 나달나달해지도록 매일매일 책들을 쓰다듬으며 기뻐했다. 그 책들을 아끼고 사랑한 버릇이 지금의 행복한 문자중독증을 낳은 것 같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는 ‘선배의 추천 도서’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사실 선배라고 해봤자(?) 한두 살 차이거나 많아야 대여섯 살 차이였겠지만, 그때는 어찌나 대단해보였는지. 그들이 아르바이트비를 쪼개고 쪼개 사준 책들을 받아 안을 때면 가슴이 뭉클한 나머지 불타는 독서욕에 사로잡히곤 했었다. 그때는 ‘촌스럽게도’ 표지 뒷장에 짧은 편지를 써서 책을 선물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난 사실 책보다도 그 편지나 메모를 노린 적이 많았다. 책은 언제든 내 힘으로 살 수 있지만 선배들의 소중한 손글씨는 어디서도 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선배가 직접 사준 책들의 좋은 점은 일단 ‘그가 감동한’ 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컨텐츠의 충실성이 보증된다는 점이었다. 선배가 책장 앞에 써주는 메모들은 후배를 아끼는 마음이기도 했지만 그 어떤 서평보다 가슴 시린 독후감이곤 했다. 그런 책을 선물 받던 시절 내 ‘독서목록’은 ‘꽝’을 뽑을 때가 결코 없었다. 이 세상 오직 한 사람의 독자만을 위한 아날로그적 서평의 향기가 문득 그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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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여울
문학평론가, ‘나비’ 편집위원, 계간 <자음과모음> 편집위원. 2004년 봄 <문학동네>에 「암흑의 핵심을 포복하는 시시포스의 암소―방현석론」을 발표하며 평론가로 데뷔했다. 이후 <공간>, <씨네21>, <출판저널>, <드라마티크> 등에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저서로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내 서재에 꽂은 작은 안테나』, 『미디어 아라크네』, 『모바일 오디세이』, 옮긴책으로 『제국 그 사이의 한국』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