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저는 주로 글로써 발언을 해와서 그런지, 이런 자리에서 얘기하고 돌아가면 마음이 항상 불편해요. 글만 보고 기대하고 오셨다가 막상 얘기를 들어보면 신통치 않기도 하실 테고, 저도 뜻하지 않게 거창한 얘기를 하게 되기도 해서요. 그래도 제가 생각하는 학교 교육, 학부모들이 아셨으면 하는 학교 교육의 속살, 그리고 우리 교육의 좌표에 대한 실감 같은 걸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갈수록 TV 드라마 같은 걸 잘 안 보게 돼요. 이번에 어디에 학교를 만들 준비하고 있는데 그 일 때문에 전북 쪽으로 답사를 2박3일간 다녀왔어요. 그리곤 저녁에 집에 와서 씻으려는데 집사람하고 장모님이 TV를 보면서 이러쿵저러쿵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러다 볼륨을 키웠는지 어떤 아줌마가 역정을 버럭 내요. “로펌은 왜 그만뒀어!” 그걸 들으면서 ‘아 저거 로펌 그만둔 사람 얘기하는 드라마구나.’ TV가 다 그렇잖아요. “마트는 왜 그만뒀어”, “공장은 왜 때려쳤니”, 이런 게 아니라 로펌 그만둔 사람들 얘기만 나오고. 자꾸 성격이 외로 가가지고 그런 얘기는 쳐다보지 않게 되고 실감이 나지 않아요.
오늘도 강의하는 장소를 검색해 보니 주상복합 건물이더라고요. 여기가 사실 학교 때 나름 제 ‘나와바리’에요. 저는 미아동에 있는 돌산이라고, 거기 철거지역에 있는 교회를 군대 제대하고 나서 2년 정도 다녔어요. 친한 친구가 공부방 선생님을 했거든요. 그래서 그 지역 철거싸움 하는 과정을 쭉 지켜봤고, 최근에도 ‘my sweet home’이라고, 용산참사 관련한 2시간짜리 다큐 영화를, 견딜 수 없는 기분으로 봤어요. 철거지역에서 싸우는 분들인데 용산 때 도와주러 가셨다가 같이 징역 4년 받았던 분들의 이야기에요.
이 아파트도 월곡동이니까 2000년 이전만 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동네일 텐데, 여기 아주 번듯한 건물이 올라와서 먼지 하나 없는 이런 자리에 앉아서 우리가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가 진짜 교육이고, 산다는 게 뭘까. 생각하다 보면 많이 어긋나 있는 시간과 공간 속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큐멘터리 <마이 스윗 홈─국가는 폭력이다>(김청승 감독, 2010)의 한 장면 |
‘자녀교육’은 착각이다
요즘 이런 강의를 몇 번 다니다 보니까 저의 의도와 무관하게 제가 자녀교육에
관련한 강의를 하는 사람으로 분류가 되는 거 같아서 불편한데요, 저 자신이 자녀교육에 대해 하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자녀교육이라는 표현
자체가 온당하지 않은 거 같아서요.
자녀교육이라는 말이, 원래 없던 말이거든요. 부모님들 세대 생각해 보세요. 자녀교육이라는 말이 어디 있었어요. 다 근대에 들어온 발명품이죠. 자녀교육이 뭔가 따로 있는 것처럼, 그래서 부모교육 프로그램이다 뭐다 해서 부모도 뭔가 배워야 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기본적으로 어폐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녀교육이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자녀교육을 통해 부모가 자녀에게 뭘 줄 수 있다는 게 전제가 돼야 하는 거잖아요.
근데 제가 짐작건대 아이들은 부모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요. 특히 초등 고학년부터 중등과정에 이르게 되는 사춘기 시절에는 부모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요. 물론 애살 있고 곰살 맞은 딸아이나 아들아이가 있어서 부모와 살갑게 지낼 수는 있죠. 그건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경우 아이들은 친구들의 영향력 하에 강력하게 놓여 있어요. 형제집단, 동네의 어른들, 부모집단이라고 하는, 인간 삶의 관계 테두리를 구성하는 것들이 사실은 해체돼 있어요. 한국같이 IMF 이후에 신자유주의의 무한한 경쟁 속에서,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부모와 자식이 떨어져 지내게 되는 사회에서는 더더군다나 그래요. 출산부터 모든 것을 전문화된 기구나 제도 속으로 집어넣어야 되는 흐름 속에서 아이들의 관계라는 것은 결국 부모도 아니고 형제도 아니고 그냥 또래들이죠.
학교에서 보면, 아이들 관계가 우정 넘치고 서로 투닥투닥 하면서도 커가는 과정 속에 있어야 하는데, 많은 경우 긴장되어 있어요. 아이들은 대체로 친구가 좋아서 사귀어야겠다는 적극적인 의식이라기보다 굉장히 수동적이에요. 내가 이 또래집단에서 밀려나면 안 된다는 긴장이 되게 강해요. 그래서 수업시간에 발표도 잘 안하려고 해요. 여간 너그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놓지 않으면 글도 잘 안 쓰려고 하고요. 요컨대 도드라지는 것 자체를 되게 어려워해요. 또래집단에서 문제시되는 존재로 각인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거죠.
보통 한 그룹이 대여섯 명의 아이들로 이루어진다고 하면, 이 친구들을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건 대체로 급식을 같이 먹는다는 거거든요. 이 중에서 두 친구 정도는 가장 가까운 ‘BFBest-Friend’ 관계에요. 이 친구들은 교무실 올 때, 화장실 갈 때도 같이 가요. 여학생들의 특징이기도 한데 남학생들도 많이 그래요. 교무실은 혼자 잘 안 오려고 해요. BF 둘을 포함한 세 친구 정도는 친해요. 얘들은 소풍가기 전날이면 옷 사러도 같이 가요. 다른 한 친구는 ‘독고다이’라 칩시다, 홀로 존재하는 아이. 그러면 남는 두 친구 정도가 있는데, 얘들은 급식 먹는 정도까지는 끼워주는 경우가 있어요. 경계선상에 놓인 애들이죠.
이 친구들이 이 그룹 안에서 급식 동아리 정도까지 같이 어울려 다닐 수 있었던 건, 이 그룹 안에 제일 ‘센 아이’, 말하자면 성깔도 있고 할 말도 또박또박 잘하고 외모나 공부나 집안 중에 하나가 되는 아이가 여기에 들어와도 된다는 걸 허락 내지 동의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 두 아이는 센 아이의 눈치를 보게 되는데, 혹여 센 아이가 거슬리는 말을 했다거나 원치 않는 행동을 해서 눈치를 주면 얘들은 되게 움찔해요. 친구지간인데도 긴장에 차 있는 거죠. 그러다 어느 날 무슨 일이 있어서 점심 먹으러 갈 때 한 친구나 두 친구를 빼고 네 명만 갔다 그러면 이 제외된 친구는 이 상황이 해석될 때까지는 다른 일을 못합니다.
학교 안에서 ‘일진’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 일진이 기본적으로 학교교육의 변화와 맞물리는 거 같아요. 학교에 “하면 안 돼”라고 하는 금기가 되게 많은데, 여학생 같은 경우 치마단 줄이면 안 되고, 파마하면 안 되고, 남학생의 경우 학교 안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되잖아요. 그러면 지금도 굉장히 엄한 처벌을 받지만 애들 앞에서는 자기가 센 아이라는 걸 보증해주는 제위가 되기도 해요. 모욕을 받기는 하지만 고개 빳빳이 들고서 몇 시간 벌을 서고 있으면 자기가 학교에서 담배를 피운 존재라는 걸 알리는 의례가 되기도 하는 거죠.
이 금기 속에는 인정 욕구 같은 게 있는 거 같아요. 아이들이 존재감이 약하니까. 어릴 때부터 또래집단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어른들과 동네와 자연세계와 사귈 기회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가 누구인지에 대해 아무런 확신이 없는 거예요. 소를 키워본 아이와 닭 모이를 주거나 돼지를 먹여본 아이, 그런 노동을 해본 아이가 느끼는 자기의 존재감과 어릴 때부터 학원만 다녀본 아이는 다르잖아요. 학원에서 어느 정도 잘하는 축이었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니까. 나를 좀 알아달라는 거거든요.
이런 것들이 뭉쳐서 아이들은 긴장에 차 있는, 편하지 않은 학교생활을 지내고 있죠. 사실 이런 것들에서 툭툭 도드라지는 것이 학교폭력인 건데요, 다수의 아이들이 이런 상황 속에 놓여 있어요.
학교폭력? 사회 자체가 상시적 폭력의 체제
학교 폭력을 얘기하면서도 바뀐 게 많이 있어요. 폭력적인 상황이 있으면, 이건
일탈이고 비정상이어야 하잖아요. 다수의 정상적인 상황과 비폭력적인 상황이 전제돼서 ‘여기서 정상으로 돌려야 한다’는 건데, 정말 둘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요.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어디부터가 비정상인지.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사회 전체가 사실 비정상 아니에요?
제일 큰 문제가 이런 것이죠. 모국어를 채 익히지도 못한 아이에게 외국어를 주입시키잖아요. 독일에 20세기 현자라고 불리는 루돌프 슈타이너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의 가르침에 따라 설립된 발도르프 유치원에서는 10살 이전까지 글자를 가르치는 것은 아이에게 독을 주는 것과 같다고 해서 일절 가르치지 않아요. 성적표 자체가 없어요. 선생이 부모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이 다거든요. 그런 가르침이 저는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생각해 보세요. ‘연애하고 싶어요’, ‘기타 배우고 싶어요’, ‘여행가고 싶어요.’ 넓은 세계를 보고 싶고, 자기 속의 에로스를 충족시키고 싶고… 다 정직한 욕구의 발로잖아요. 그런데 그게 다 기본적으로 유예해야 할 대상이잖아요. 아이들은 절제의 전사에요. 비정상이죠.
폭력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전 사회 자체가 상시적 폭력의 체제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내려오면서 용산 철거민 이야기를 다룬 만화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을 봤는데, 보기 괴로워요. 철거 깡패들이 마지막 남은 세 집에 콘크리트 덩어리를 던져서 자고 있는데 비가 줄줄 새요. 힘 없고 약한 사람을 일상적으로 패는 사회 아닙니까.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쌍차 파업 때 건물 옥상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발암 물질이 뒤섞인 최루액을 뿌리고 나서 항의 겸 문하는 기자에게 되묻잖아요. “그럼 그분들한테 몸에 좋은 거 줘야 합니까?”라고.
사회 폭력이라는 게 사실상 제도화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회에서 학교폭력을 문제 삼으면서 아이들을 정상으로 돌려놔야 하고 비폭력적 상황으로 돌려야 한다는 게 어폐죠.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진, 일진 그러는데 대한민국 최고의 일진은 이명박이죠.
얼마 전 대구에서 중학생이 자살했는데, 그 날이 어떤 날인 줄 아세요? 일제고사 치는 날 아침이었어요. 저는 그거 관련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심층 속에선. 아이들이 이렇게 약한 애들 괴롭히는 걸 취미로 삼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공격적으로 바뀌어가는 건 일제고사가 크게 한몫을 했잖아요.
일제고사 이전과 비교하면 예전에는 초등학교, 중학교는 그래도 꽤 여유가 있었어요. 이제는 선생님들 성과급을 학교별로 따로 주거든요. 학교 성과급은 학교의 일제고사 성적을 포함해서 학교폭력 이런 지표들을 갖고, 많게는 7~80만원까지 차이가 나게 지급해요. 교사들도 꽁지에 불을 탁 붙여놓으니까 미친 듯이 닦달을 해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보충수업 같은 거 하면 수당이 많이 나오거든요. 노동자들 잔업하는 거랑 비슷한 개념이에요. 그냥 월급 받으면 뭔가 비정상 같고 보충, 야자, 일제고사 특별수업 같은 거 해서 4~50만 원식 더 붙어야 월급을 제대로 받은 거 같고, 이런 느낌 속에 있어요. 그러니까 애들을 바짝 쪼는 거죠.
그리고 아이들 먹을거리만 놓고 생각해도 그렇잖아요. 정자 수가 1/4로 감소했다고 하는데, 사실 절반 정도로 감소했다는 건 그 이전에도 많이 나왔었어요. 테오 콜본이라고 하는 조류학자가 있었는데 미국의 미시시피호 철새들을 조사했더니 이상하더라는 거예요. 알을 낳았으면 품어서 부화시켜야 하는데 내팽개쳐요. 설령 부화시켜서 새끼가 나와도 먹을거리를 주지 않아서 부화된 새끼들이 빼짝 곯아 죽어요.
조사를 해 보니까 오대호 연안에 사는 철새들이 공단지역의 폐수나 화학물질, 중금속에 오염돼서 내분비체계가 교란된 거예요. 자연스럽게 자기 몸속에 축적된 유전정보가 바뀌었어요. 그래서 내팽개치는 거예요. 테오 콜본의 큰 경고가 뭐냐면 새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인간에게 일어난다는 거였거든요. 테오 콜본의 『도둑 맞은 미래』라는 책이 나오고 나서 인간의 내분비계를 조사한 연구들이 많이 나왔는데 남성의 정자 수가 한 세대 이전과 비교했을 때 이미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불임이 흔해지고요.
아이들이 갖고 있는 행동 장애 중에 ADHD(과잉행동장애) 아시죠. 실제로 되게 흔해요. 그걸 애들 컴퓨터게임, TV만 갖고 평가하는데 전 그것만이 아니라 먹을거리와 관련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먹을거리에 포함된 첨가물들이나,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육식을 좋아하는데 육식에 사용되는 돼지, 닭, 오리가 어떻게 키워지는지 아시잖아요. 동물들이 기본적으로 영성을 가진 존재들인데 그런 취급을 당하면, 죽어가면서 인간을 얼마나 저주하겠어요. 화기라는 게 있잖아요. 그게 어디 가는 거 아니거든요. 그게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상 속의 내상’을 입다
그래서 전 아이들에게 ‘외상’보다 ‘내상’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엘리펀트>라는 영화 보셨나요. 내상 생각할 때마다 전 이 영화가 떠오르는데. 미국 콜롬바인 총기사고 사건을 다룬 영화에요. 그
사고가 나기 전날하고 당일, 아무 배경설명이나 극적 장치 없이 다큐처럼 아이들을 쭉 따라가는데, 그 아이들은 별일 없었어요.
그 전날 택배로 주문한 최신형 총기가 왔고 그것을 가지고 지하실에서 모래자루에 실험을 해 봤고 당일 날 아침에 볼링을 한번 쳤고 에릭이라는 친구 집에 와서 샤워를 했고 비장한 표정으로 진한 키스를 하죠. 그리고 가방에 실탄과 총을 갖고 도서관에 가서, 전교 왕따를 당하는 뚱뚱하고 둔하기 짝이 없는 여자애를 쏴서 죽이고,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서, 몸매 관리를 한답시고 급식을 먹고 토하는 여자애를 쏴서 죽이고, 토론 동아리 교실에 들어가 별 내용도 없는 토론에 몰두하고 있는 몇 명을 쏴서 죽이고, 또 자기들에게 아주 험한 욕을 했던 교장선생님을 쏴서 죽이고 영화는 끝이 나요.
‘트렌치코트 마피아’라는 극우단체 조직원이었다는 거 빼곤 너무 정상적인 아이들이었어요. 그 영화에 나오진 않지만 그 사고가 난 후 추적해 들어가서 정신과 기록도 찾아봤다는데 퍼펙트하게 정상으로 나왔다고 해요. 그 애들이 학교에서 약간 경계선상에 있던 애들이었어요.
이 영화의 제목이 ‘엘리펀트’거든요. 코끼리는 미국에서 공화당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지만, 미국 속담 중에는, 방안에 큼직한 코끼리가 한 마리 들어와서 그 때문에 자기가 설 땅이 조금밖에 없는데 사람이 거기 적응해서 살다보면 코끼리가 있는 줄도 모르고 편안하게 살더라는 격언이 있대요. 아주 중요하고 심대한 문제인데도 사람들이 망각하고 지내는 것을 상징하는 게 엘리펀트에요. 그 영화 내내 아주 음울하게 깔리고 있는 것은 아이들 모두가 갖고 있는 병적일 정도의 우울, 권태예요. 일상 속의 내상, 이게 훨씬 무서운 거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일진들은 되게 건강한 애들이에요. 풀고 살거든요. 인정욕구가 됐든 뭐가 됐든 날 좀 알아달라고 욕구를 발산하기도 하고, 학교가 시키는 거에 대해 빠득빠득 개기면서 넘어서기도 하고, 그런 걸 통해 존재감을 맛보기도 해요. 문제는 멀쩡한 아이들이죠. 글쓰기 하다 보면 그런 걸 많이 느껴요. 타자에 대한 관심 자체가 전혀 없는 아이들이 왕왕 있어요.
가령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의 희망버스 같은 이야기를 수업시간에 많이 보여주고 했는데, 눈물을 흘리는 애들도 있어요. 그러나 아무 관심도 없이 눈만 똘망똘망 보고 있다가 엎어져 자는 애들도 많아요. 그리고 자기에게 가장 기뻤던 순간, 슬펐던 순간, 친한 친구에 대한 기억에 관해서 글쓰기를 시키는데 그런 기억 자체를 드러내지 못해요. 능력이 퇴화돼서가 아니고요, 가까운 시간 안에 그런 기억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타자와 진하게 교섭해본 기억 자체가 없는 거예요. 그런 아이들 중에는 가끔 아주 작은 구겨짐,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생각 없이 던진 한마디에 폭발해 버리고 관계가 죽 찢어져 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경우를 많이 봤는데 기본적으로 내상의 발현이라고 봅니다.
김순천 선생님이 쓴 『대한민국 십대를 인터뷰하다』라는 책이 있어요. 교육문제에 관심 있는 부모님이라면 숙독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시골부터 도시까지, 공부 잘하는 애부터 못하는 애까지 다양한 아이들을 쭉 인터뷰해서 해서 모아놓은 책인데, 되게 인상적이었던 게 타워팰리스에 사는 고1짜리 인터뷰였어요. 잊을 수가 없어요.
그 아이는 초등학교 때 캐나다에 갔다 왔는데, 엄마가 집에 와 있으면 단어를 외우라고 그래서 엄청 짜증났었는데 고등학교 와보니까 고맙다고 생각이 든대요. 그 친구의 일상이 학교 끝나면 3~4개의 그룹과외를 다니고 보통 한시에 집에 와요. 주말에는 시간이 비니까 아예 학원에서 종일 수업을 한대요. 그 친구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으니까 며칠간 잠만 자는 거래요. 그리고 “친구란 존재는 뭐죠?” 라고 물으니까 친구는 고마운 존재래요. 혼자 있으면 나태해지는데 친구가 나를 닦달질 해주니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냐고 물으니까 “지난 일 년간 선생님, 부모님들께 정말 미안했어요. 앞으로 좀 더 열심히 해야겠죠”라고 말을 해요.
저는 되게 무서웠었어요. 사람 사는 게 아니잖아요. 짐승보다 못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기본적으로 미안하다고 그래요. 그리고 자기를 닦달해주는 친구를 고맙다고 그래요. 저는 굉장히 심각한 정신병적 징후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것이 사실 도회 중산층 부모들과 그 부모들의 닦달에 살아가는 아이들의 일반적인 멘털리티에요.
이런 상황에서 출구가 뭐냐 많이 물으시는데요. 저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기본적으로 제가 갖고 있는 답만 말씀드리면요, 빠져나오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육 불가능’의 학교를, 나오다
제가 학교 그만둔 얘기를 하면 제 고민을 전달하기 좋을 것 같아서 얘기를
드릴게요. 저는 지난 3월 1일자로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그전까지 경기도에서 2년 간 근무했고 고향인 밀양으로 돌아가서 9년간 근무했었습니다.
굉장히 즐거웠고요, 사실 되게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저는 대학 때도 그렇고 자의식 자체가 우중충한 데가 있어서 자주 우울에 빠지던 인간이었는데
학교 선생님하면서 많이 치유가 된 편이에요. 애들은 아무리 까불어도 기본적으로 선한 존재니까요. 부모님이 실감하시는 것과 전혀 달라요. 그건
제가 더 제대로 봤다고 생각해요. 그 속에서 제 자신이 치유가 많이 되었고요. 그러면서 극렬한 전교조 운동가가 되었었어요. 아주 극렬한.(웃음)
전교조 안에서는 아주 저 왼쪽에 있는 그룹으로 저를 분류하는 사람도 많이 있었고, 저 자신이 딱히 잘나서라기보다는 전교조가 너무 엉터리로 가는
것 같아서 행동해야 한다는 얘기도 늘 했었죠. 저 자신도 아슬아슬한 경계선상에 많이 놓여있었어요. 학교 안에서, 심지어는 아이들이 보는 자리에서
윗사람들과 다투는 일이 여러 번 있었는데, 사실 그런 것 때문에 학교를 그만둔 건 전혀 아니에요.
강의 때마다 언급하는 예화가 몇 개 있는데요, 잊을 수 없는 기억들입니다. 그런 류의 기억들이 쌓이고 쌓여서 제가 못 견뎠던 거 같아요. 이를테면 한 3~4년 정도 됐는데, 야자를 마치고 자전거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어요. 밤에 행인도 없는 샛길에 어떤 트럭 한 대가 놓여 있고, 짐칸에 불이 환하게 켜진 채 딸기를 팔고 있어요. 어느 청년인데, 보니까 고3 담임을 했던 아이였어요. 스물네 살 정도 되어서 군대를 갓 제대했을 때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전투복 바지를 입고 딸기를 팔고 있었어요. “뭐하냐” 그러니까 “학교 그만두고 딸기 팔고 있다”고 해요. 그 친구는 제가 3년간 가르쳤기 때문에 친했고 잘 아는 아이였어요. 부모님이 두 분 다 안 계시고 할머니랑 자란 애였거든요. 기초생활수급자라서 등록금은 지원이 되는데, 지방대학이라는 데가 되게 처참해요. 일단 아이들이 등록금을 4~500만원씩 내는데 배우는 게 없다는 겁니다. 학과 분위기도 남자들은 일단 군대부터 가고 보자는 식이고 여자들은 편입 준비, 자격증 준비를 하는데 삭막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는 거예요. 그 친구도 군대부터 갔는데 제대해도 별로 달라진 게 없으니까 그만두고, 동네에서 딸기 하우스를 하는 형님들이 농협에 출하하고 남은 딸기를 갖고 와서 밤에 파는 거예요. 그거 두 상자를 사가지고 학교로 돌아와서, 남아서 자습하는 3학년 아이들한테 나눠주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죠.
한 친구는 여름에 학교를 놀러왔는데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리고 말투도 변해 있어요. 그 친구도 전문대를 갔는데 그만두고 군대 가기 전에 효도나 하고 싶어서 노가다를 했대요. 경기도 쪽에서 노가다를 해서 서울말투로 바뀌어있는 거예요. 그렇게 백 몇 십만 원 번 돈을 부모님한테 드리고서 좀 있으면 군대 간다고 하더라고요. 착하잖아요. 학교 다닐 땐 사고도 많이 치고 그랬었는데. 근데 그 친구가 군대를 갔다 온들, 아까 딸기 파는 친구와 별로 달라질 게 있을까요.
또 어느 날은 한겨울에 자전거타고 밀양 시내를 가다가 한 여학생을 만났어요. 작업복 바지에, ‘헬로우 디’ 로고가 새겨진 점퍼를 입고, 공구가방을 들고 있었어요. 어디 가냐 그러니까 학교 그만두고 여성 독신자들 집에 인터넷을 달아주거나 A/S 하는 일을 한대요. 그 친구도 수업을 3년간 했던 친구니까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지 잘 알았죠. 엄마가 타지에서 식당을 하면서 부쳐주는 생활비로 자취하면서 학교 다닌 애였는데 성적이 신통치 않으니까 지방 사립대를 갔거든요. 등록금 잘 댈까 걱정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1학년 마치자마자 그만두고 월급 100만 원짜리 계약직 기사를 하고 있더라고요.
시립도서관 같은 데 방학 때 공부하러 가면 애들이 우수수 일어나요. 인사한다고. 27살 이래된 애들인데, 취직이 안 됐거나 일 하다 그만두거나 하고 다시 이름도 긴 자격증, ‘열처리 무슨무슨 기능사’ 이런 거 준비하고 있어요. 임용고사 준비하는 애들도 있고요.
저는 어쨌든 전교조의 교육 모토도 그렇고, 교육은 희망을 얘기하는 거라고 생각을 했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그런 모습들을 몇 년 간 쭉 지켜보면서 이 모토(교육 희망)를 되게 빈정거리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저는 아주 열성적인 전교조 활동가였음에도 불구하고요. 그러면서 은연중에 ‘교육 희망’이 아니라 ‘교육 불가능’이다,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됐습니다.
거기에 저 자신에 대한 허위의식 같은 게 자꾸 쌓여 오더라고요. 그 친구들이 고2, 고3 때 제가 담임도 하고 글쓰기 수업도 하면서 애들 속내를 많이 듣고 보고, 아이들 세계를 나름 깊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의식 있고 고민하는 친구들이 그런 고민을 던졌단 말예요. “대학을 왜 가야 합니까. 비전도 없을 거 같은데… 어떻게 해야 되지요?”
고3쯤 되었을 때 특히 5~6월, 10~11월에 아이들이 굉장히 힘들어 하거든요.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 이런 얘기를 많이 했었어요. 그때마다 고민은 되지만 결국 제가 하는 답이라는 것은 “그래도 대학은 가야하지 않겠나.” 그리고 “대학 좀 가면 나아질거야.” 위로라고 하는 것도 뻔하죠. “넌 잘해낼 수 있을 거야.” 그런 정도의 얘기였죠.
저는 그게, 결코 거짓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제 나름의 진심을 담은 선의였다고, 생각은 해요. 그렇지만 저 자신이, 그런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마음의 위로를 찾는 그 아이가 대학에 가서 결국 1년 만에 그만두고 100만 원짜리 인터넷 기사가 될지, 동네 형님들 팔고 남은 딸기를 갖고 와서 행상하는 총각이 될지, 스물일곱, 여덟 살이 되어서도 시내 시립도서관에 와서 온종일 두꺼운 책 갖고 100대 1짜리 시험 준비를 하게 될지, 모르지 않았어요. 그러면서도 꽤 양심적인 척, 좋은 선생님인 척 하면서 그 자리에서 애들에게 희망을 얘기하는 것이 어느 순간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 거 같아요. ‘원점에서 차라리 솔직하게 얘기해 보자. 이 땅에서 아이들이 학교를 통해 성장을 하고, 상처가 있다면 치유를 받고, 그 인증으로써 물질적인 경제생활 속으로 편입해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가.’ 그런데 다 아니더라는 거예요.
그럼 우리는 뭐 때문에 학교를 하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가는 거둔 세금을 써야 해요. 선생님들은 월급을 받아야 해요. 부모는 달리 애들을 맡길 데가 없지요. 학교를 가지 않으면 애들은 갈 데가 없거니와 또 졸업장을 받아야 되니까, 그래서 그냥 벌거벗은 당나귀의 우화처럼, 이게 다 아닌 걸 알면서도 ‘학교야 힘내라’, ‘선생님 힘내세요. 교육만이 희망입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부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저는 학교를 그만두고 나니까 마음이 좀 편해요. 같이 교류를 하게 된 신부님 두 분이 계신데, 두 분 다 부산교구에서 빈민사목, 환경사목을 하시다가 귀농을 하셨어요. 그 분들과 의기투합이 돼서 농사학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교육과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한국 교육을 위해, 우리 아이들을 위해, 이런 목적으로 하는 일은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 자신을 위해 하는 거고요, 제가 마음이 덜 불편하고 애들에게 덜 미안하기 위해 하는 일이에요.
거창하게 얘기하면 이런 식이죠. 아까 말씀드린 그 아이들, 길에서 딸기 파는 아이, 인터넷 기사하는 아이, 혹은 시립도서관에서 준비하는 아이들이 혹시 저를 찾아와서 술이라도 한 잔 하게 된다면, “얘들아, 그거 하지 말고 선생님이 농사 학교를 하는데 여기서 2년간 같이 농사짓는 법을 배워서 혼자 자립해서 살 수 있는 기술을 좀 익혀보자. 너들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노. 집을 지을 줄 아나, 집을 고칠 줄을 아나. 형광등은 갈 줄 아나? 김장을 담글 줄 아나, 된장을 담글 줄 아나. 바느질을 할 줄 아나. 책을 제대로 읽을 줄 아나, 글을 쓸 줄 아나. 그런 삶의 기술을 배워서 밀양에서 같이 살자.” 이 얘기를 하고 싶어서 그런 준비를 하고 있는 거죠.
지금은 송전탑 싸움을 맡아 하고 있어요. 신고리원전에서 만든 전기를 서울로 보내는 고압송전탑이 마을을 관통해서 7년간 싸우시다가 분신하신 할아버지 얘기 들으셨지요. 학교 딱 그만두고 나니까 “시간 많지? 옛다, 니가 해라” 그래가지고 사무국장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군데 관련해서 글도 쓰고 했는데, 이번 주에 탈핵희망버스가 또 출발을 합니다. 아이들 손잡고 와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풍요의 시대 이후, 다른 교육을 상상하다
이제 우리가 누렸던 풍요의 시대를 다시 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 세대는, 부모들 세대보다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학교 교육 속에 어쩔 수 없이, 마치
볼모 보내듯 보내는 게 아니라 이제 다른 생각, 다른 상상을 할 때가 됐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많은 분들이 “선생님 말씀 다 알겠다, 나도 알고 있던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말씀하시거든요. 불안. 이게 훨씬 더 큰 문제인 거 같아요. 도태될 거 같고 낙오될 거 같고. 근데 사실 이 불안을 응시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왜 불안해야 되지. 불안이 대체 뭐지. 우리 애는 충분히 건강하고 충분히 예쁜데. 그 나이는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인데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불안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죠. 시대가 주는 겁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식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부분 만들어진 불안이기도 해요. 예컨대, 나는 우리 아이 영어공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엄마 얘기 듣다가 어느 학원에 테스트 한번 받아 봐라 해서 받아 보면 그래요. “큰일났어요. 이 성적으로는 아무데도 못가요. 벌써 앞서가는 애들은 어디까지 공부하고 있는줄 아세요? 레벨이 몇 단계인줄 아세요? 이 아이는 이 학원에 오면 2단계밖에 안 되요. 10단계 배우는 애들도 있어요.” 기본적으로 이런 구조 안에 있어요, 불안이라는 것은. 저는 이거 허구라고 생각합니다. 그 불안을 통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많죠. 기본적으로 기업이 있고요 넓게 보면 이 체제를 굴려가는 사람들이에요. 이런 불안들이 공공의 문제,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집중할 수 없게 해요. 우리 새끼 걱정이 먼저 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성이라는 게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이런 자리 강연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한 얘기도 아니고. 교사를 하다 그만둔 사람이 절절한 자기 체험을 얘기하는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돼요. 다만, 우리가 공부를 할 필요는 있죠. 이 불안에 대해서, 세계 자본주의가 어떻게 굴러가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살게 될 세상, 10년 혹은 20년 뒤의 세상 저는 많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석유 하나만 봐도 그렇죠. 제가 밀양에서 6시 58분 기차를 타고 세상에 천릿길을 9시 20분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석유와 시스템의 힘이거든요. 아침 식탁에 올라온 것들 석유가 키워준 것들이더라고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석유고요, 이 건물 안에 든 물품들도 다 석유에요. 근데 이 석유가 사실 한 세대밖에 안 남았다는 것만 생각해 보십시다. 그리고 이 기후변화, 에너지, 식량의 문제. 이 지표들을 조금만 공부해 보면 이 시스템이 얼마 못 간다는 것을 다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흐름에서 우리가 그렇게 애닳아 하고 불안해하는 것이, 우리 아이가 30대가 되었을 때, 그 시간대에 놓고 보면 별 의미가 없는 것일 수 있다는 것, 그런 확신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확신이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얘기가 장황하고 길었습니다. 제 얘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 원고는 이계삼 선생님이 지난 25일 ‘시민모임 즐거운교육상상’이 주최한 학부모 월례강좌에서 ‘절망학교 희망교육’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한 내용입니다. 이계삼 선생님은 밀양 밀성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일했고, 현재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입니다. 여러 매체에 교육과 사회에 관한 글을 쓰고 있고, 이를 묶어서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등 몇 권의 책을 냈습니다. 지금은 故이치우열사분신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아 고리원전 1호기 폐쇄와 765kv 송전선로 백지화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