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숍’ 하면 뭐가 떠오르나요?” 진행자가 물었다. 선뜻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서로 처음 만나는 자리여서 서먹서먹했을 것이다. 진행자가 재차 묻자 누군가 기어드는 소리로 말했다. “1박2일요.” 잠시 후 다른 누군가가 “뒤풀이요.”라고 말하자 옅은 웃음이 번졌다. “사무실 떠나기”, “장기자랑”, “회식” 등 짧은 답이 이어졌다.
진행자(‘촉진자’가 정식 명칭이다)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워크숍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드뭅니다.” 나도 그랬다. 일 년에 네댓 번 이상 워크숍에 참석해왔지만 귀갓길이 개운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설명회인지, 공청회인지, 토론회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설령 토론회라고 해도 의견이 활발하게 개진되지 않았다. 분임토의도 형식적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워크숍의 사전적 정의는 연구집회, 공동수련, 공동연수다. 두산백과는 그 절차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문제제기, 문제해결을 위한 조언, 문제해결법의 강구와 해결, 잠정적 결론의 형성 등으로 나뉜다고 한다. 협의에 의하여 얻어진 결론은 어디까지나 가설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실천을 통해 그 결론의 타당성을 평가하게 된다.” 그간 내가 참여했던 워크숍은 사전적 정의를 따르기는 했지만,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지는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합의에 의해 결론을 냈다 해도 그것이 ‘실천을 통해 타당성이 평가’되는 단계까지 도달하는 수범사례도 흔치 않았다. 다시 말해 집회만 있고 ‘연구’는 없는 연구집회였고, 공동만 있고 ‘수련’과 ‘연수’는 부족한 공동수련, 공동연수였다. 그런 연구, 수련, 연수가 구체적 실행으로 이어진다면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그런 워크숍에 반복적으로 참여하면서도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8월 초순, 서울 도봉구 ‘기적의 도서관’에서 ‘기적의 협동조합’ 창립대회가 있었다. 독서토론과 글쓰기, 출판을 하나로 묶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협동조합이 첫걸음을 내딛는 자리였다. 이날 워크숍 진행자로 초청된 최영선 선생(한국주민운동교육원)은 문제의식, 자발성, 민주적 운영, 책임 있는 대안 마련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최 선생은 워크숍의 원리부터 소개한 다음, 주제별로 토론을 진행했는데 내게는 매우 새로운 경험이었다.
주제사실을 있는 그대로 확인하고(사실 인식), 그것을 분석하고 객관화하며(사실 분석), 조직의 목적을 되짚고(생각 성찰), 당사자들이 자발적으로 행동 지침을 마련하는(행동 조직) 것이 워크숍의 네 가지 원리였다. 그런데 이 원리가 그대로 워크숍 진행(촉진) 순서이기도 했다. 최 선생은 조를 편성하고 조별로 설립취지, 활동 방향, ‘나’와 사회의 변화, 각자의 참여 방식, 운영 원칙 등에 대해 각자 한두 문장으로 적고 그것을 발표하도록 했다.
내게는 첫 번째 순서부터 충격이었다. 최 선생은 세 가지 사항을 꼭 지키라고 당부했다. 발표 시간을 엄수할 것, 발표자가 어떤 말을 하든 개입하지 말 것, 참여자 모두가 발표할 것. 돌아보니, 내가 참여했던 워크숍(다른 회의도 마찬가지지만)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던 것이다. 서로 다른 견해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결정적 오류였다. 이날 창립대회에 참석한 조합원 20여명의 생각은 자유분방했고 다채로웠다. 그렇다고 공통분모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의견이 몇 가지 개념으로 묶여졌다.
예컨대 기적의 협동조합 성격은 연대와 공유, 친목, 삶의 변화, 지속가능성 등으로 모아졌다. 결코 포기해서는 안될 운영 원칙은 공공성, 화합, 투명성, 소통 등으로 수렴됐다. 마지막으로 각자 칠판 앞으로 나가 “정기회의에는 참석하겠다”, “올해 안으로 조합원을 10명 모셔오겠다” 등 앞으로 실천할 행동을 적었다. 공개적인 약속이자 각오였다.
‘협동조합은 민주주의의 학교’라는 말이 있다. 그 학교 학생이 1학년 때 반드시 이수해야 할 교과가 있다면 그것은 사실 인식, 즉 경청일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공감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여전히 ‘불가능의 예술’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가능의 예술’로 만드는 첫걸음이 경청이다. 두 번째 걸음은 자기표현이고, 세 번째 걸음은 공감과 연대로 이어질 것이다.
이번 창립대회에서 새삼 깨달았다. 모든 협동조합은 ‘기적’의 협동조합이다. 어떤 협동조합이 깊이 뿌리를 내렸다면 조합원들 사이에 경청과 자기표현, 공감과 연대가 일상화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 협동조합이 곳곳에서 생겨날 때 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것이다. ‘함께 읽고 함께 바꾸는 기적의 협동조합’(가칭), 갈 길이 멀다. 게다가 아무도 가지 않은 길, 함께 걸어가야 길이 되는 길이다.
★ 본 기고글은 경향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