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하는 사장언니는 「중경삼림」이라는 영화를 보러 가자 했다. 너무 좋아서 세 번째 보는 거라며 옛날 영화를 리마스터링한 거라 했다. 배우가 누가 누군지 헛갈려 살짝 조는 사이에 등장인물의 아이디 ‘만년동안 사랑해’를 자막에서 읽는 순간 잠이 확 깼다. 내 삶의 아이디를 본 듯해서다. 영화 속 대사 중에서 “우리 사랑의 유효기간은 만년으로 하자.”라는 말도 꼭 내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만년이란 시간일 수 있을까? 일분이 만년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리라. 어차피 시간은 상징이다. 하루살이의 삶을 보면 안다. 갑자기 만 가지 생각이 겹쳐왔다. 세금, 큐알QR체크, 유효기간, 경계선, 난민들, 대출금, 빚, 시시한 꿈들, 선거현장, 사막 풍경…. 생각이 너무 많아져 영화에 집중하지 못한 채, “우리 사랑의 유효기간은 만년으로 하자.”는 그 말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쩌면 많이 건진 거다. 「중경삼림」이라는 영화는 유효기간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영화였다. 그것처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유효기간, 우리는 그것만 알고 살면 된다. 하지만 그걸 아는 것만큼 어려운 건 없다. 갖가지 색깔의 약병들과 식료품들과 관계들의 유효기간, 우정과 사랑의 유효기간, 목숨의 유효기간, 염색의 유효기간, 권력의 유효기간, 전성기의 유효기간.
영화가 어느덧 막을 내리고 멍한 상태로 있는 내 팔을 이끌고 사장언니는 새로 생긴 거대한 백화점 건물로 나를 끌고 갔다. 한 번도 못 본 달나라 같은 백화점 매장에서 그녀는 입어보지도 않고 비싼 옷 몇 벌을 마치 껌처럼 쉽게 사더니 어느 게 좋으냐며 한 벌 가지라 한다. 눈썰미가 좋은 그녀는 내게 어울리는 옷을 잘 골라서 선물로 쥐여 주곤 한다. 그녀의 ‘묻지 마’ 쇼핑은 내게는 거의 대리만족의 정점이다. 그녀는 나비처럼 화려한 명품 옷들은 자기가 갖고, 우아하지만 비싼 티조차 안 나는 명품 옷은 내게 준다. 우리는 신나게 쇼핑을 한 뒤 그녀의 아파트로 가서 비싼 와인 한 병을 딴다. 무언가의 맛을 안다는 건 어느 기간 동안 맛의 경험을 축적했다는 뜻이다. 사장언니 덕분에 나는 와인의 맛을 알게 되었다. 대충 비싼 와인이 혀에 착 붙긴 하지만 가격대비 좋은 와인들이 분명히 있다. 뭔들 안 그럴까? 가격대비 훌륭한 와인이나 물건이나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러니까 운이다. 살아가는 데 운처럼 중요한 건 없다. 무슨 영화에선가 “삼십 년 동안 운이 좋으면 삼십 년 동안 운이 나쁘다. 그렇게 우리는 평등하다.”라던 말이 생각난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운이 좋을 때다. 문제는 운이 좋을 때도 사람은 만족하지 못한다는 거다.
술에 살짝 취하고 나면 사장언니는 패션쇼 하는 걸 좋아한다. 밤이 깊어질수록 그녀의 몽유병을 떠올리게 하는 환상적인 패션쇼도 무르익는다. 옷장에 가득 찬 그녀의 옷들은 마치 그녀가 몰래 숨겨둔 선녀의 날개가 아닐까 싶다. 옷을 사재끼고 한두 번 입고는, 아니, 한 번도 입지도 않은 새 옷들을 여기저기 나누어주고 나서도 그녀의 옷장 속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옷들은, 그녀가 특별히 애착을 갖거나 그리운 누군가를 기억하게 하거나 행복했던 시간을 간직했거나 한 특별한 옷들이었다. 그녀는 가끔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내가 만일 죽으면 이 옷은 다 네가 가져.” 사실 내게 옷이란 계절마다 한 벌씩이면 족했다. 사장언니를 만날 때만 나는 그녀가 준 옷으로 멋을 냈다. 그녀는 갖은 멋진 옷들을 걸쳐 입고 넓은 거실에서 패션쇼를 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그녀는 마치 달 표면을 걷는 우주인처럼 걸었다. 나는 그 모습을 구경하길 좋아했다. 문득 그 유명한 닐 암스트롱과 함께 달에 착륙한 버즈 올드린이라는 사람의 인터뷰를 교육방송에서 보았던 생각이 났다.
1969년 7월, 인간은 달 착륙에 성공한다. 그들이 달에서 발견한 건, 달에는 아무 생명체도 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참 허무한 발견이다. 달에 갔다 온 사람들은 이후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달 표면을 걸을 기회가 없었다는 건 행운일지도 모른다고 해설자가 조용한 목소리로 설명하고 있었다. 닐 암스트롱 다음 타자로 달에 발을 디딘 버즈 올드린은 이후 달에 갔다 온 감상을 이렇게 말했다. “별 감각이 없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행복이란 이른바 ‘쾌락 분자’라 불리는 도파민에 의해 형성된다고 한다. 도파민이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원하게 하는 분자라 한다. 그래서 도파민의 과다 분비는 중독을 가져온다. 사장언니가 명품 옷을 사재끼는 것도 도파민 과다 현상일까? 다큐 프로그램에서는 점점 더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하는 도파민의 새로운 충전을 위해 쾌락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술과 커피와 달콤한 것들과 쇼핑과 성적 접촉과 모든 자극적인 것들에 대한 의존성으로부터 벗어나 재부팅하는 삶을 권유한다.
날이 갈수록 사장언니는 더 많이 마시고 더 많이 사들이고 남편 아닌 낯선 남자들과 어울렸다. 달 표면을 걸어본 사람의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 인간은 마약에 중독되고도 그 중독을 극복하기도 하는 대단한 동물이다. 처참한 전쟁의 경험으로 전쟁 컴퓨터 게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죽여 막 죽여.” 전쟁만 겪지 않고 한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고마운 일이다. 잔뜩 취한 사장언니를 침대에 뉘며 나는 전쟁터에서 사장언니와 함께 폭격을 피하며 위험한 거리를 걸어가는 환영을 본다. 우리가 같은 편이기는 한 걸까? 문득 전쟁을 겪고 간 모든 인류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나는 취해서 미동도 않는 사장언니에게 밤 인사를 보낸다. “언니 인생은 어차피 꿈이야. 이왕이면 밝고 기분 좋은 길몽을 꾸다 가자. 굿 럭 투 유.” 사장언니의 착하고 돈 많고 인심 좋은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마치 이게 다 내 책임인 듯 마음이 무거워진다.
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아침은 온다. 남편은 이미 출근한 뒤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따로따로 출근한다.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본다. 어제는 술을 많이 마셨다. 사장언니의 주정을 들어주며 나도 같이 주정을 부린 기억이 난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하는 말은 늘 진담일까? 갑자기 어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사장언니의 말이 뒤늦게 거슬린다. “요즘 나는 새로운 인물과 다시 사랑을 시작했어. 남편은 좋은 사람이고 내게 모든 것을 다 해주는데 왜 늘 지루할까?” 그래서 내가 말했다. 다 가질 수 없는 거라고. 그랬더니 사장언니가 말했다. “다 가진 건 내가 아니고 너야.” 그 말이 뒤늦게 지금에야 거슬려오는 이유는 뭘까?
나는 즐겨듣는 스님의 법문에 자주 나오는 “마음을 쉰다.”는 말을 좋아한다. 마음을 쉬기로 하며 무심코 창밖을 바라본다. 전신주에 앉은 새 한 마리가 창문을 사이에 두고 나와 눈을 맞춘다. 이건 내 생각일 뿐, 새는 사실 나 따위 관심도 없는지 모른다. 비를 맞으며 계속 하늘에 가로로 걸린 전신주 줄 위에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다. 비를 흠뻑 맞으며 춥지도 않은지 비를 피할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새의 마음이 궁금하다. 왜 반대 방향으로 앉아 있지 않고 하필이면 내가 있는 아파트 창문 쪽을 향해 부동의 자세로 앉아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디로 갈 건지, 친구 새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 늘 혼자인지, 빗속에서 비를 맞으며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지, 비를 피하며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사람과 빗속에서 비를 맞으며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새 중에서 누가 옳은지. 내 생각이지만 새는 한 시간째 나를 스토킹 중이다. 책을 보며 새의 존재를 잊고 있다가 문득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새가 방향을 틀어 반대쪽 아파트를 향하고 있다. 내가 관심을 주지 않아서일까? 나는 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비를 흠뻑 맞은 새의 안녕을 걱정한다. 그러다 새는 비를 맞아도 젖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난다. 그 가는 다리로 전신주 위에 하염없이 앉아있는 새의 모습은 명상 중이거나 도를 닦는 것처럼 보인다. 새가 바라보는 것은 하늘일까? 아파트 실내의 사람들일까? 길가의 자동차일까? 아니 다른 새를 기다리는 중일까? 생각해봤자 쓸데없는 맞지도 옳지도 않은 망상일 뿐이다. 실내의 피아노 음악과 비와 새와 내가 사중주를 빚어내는 비 오는 봄날의 정오, 다시 창밖을 바라보니 새가 없다. 새를 이렇게 오래 관찰한 건 처음이다. 모든 첫 경험을 떠올린다. 처음 마신 술, 처음 들은 피아노 소리, 처음 달을 디딘 기분, 첫 섹스, 첫 출산…. 당신들은 알았을까? 모든 첫 경험은 아프다는 걸, 다음 경험도 그다음 경험도 계속 아프다는 걸. 그래서 나는 감히 말한다.
삶은 누구에게나 다 아프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