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부를 궁금해하는 당신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이 앞섭니다. 막상 또 이곳을 떠난다 하니 무력감이 스며듭니다. 이제 또 어디로 가나 하는 막연한 두려움과 그동안 사는 이유라고 자신을 설득했던 것들이 공중누각처럼 내 마음 안에서 무너져 내리는 걸 봅니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 내가 꼭 이곳에 필요하리라는 믿음, 이런 것들이 사라진 뒤에야 어쩌면 우리는 자신만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당신을 보러 한국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 편지를 쓰다 말고는 하였답니다. 오랜 세월 상상 속의 휴면지대였던 DMG도 가보고요. 언젠가 북한 아이들을 치료하는 꿈을 꾸어본 적 있었던 오래된 기억도 떠오릅니다. 요즘 나는 전쟁이라는 말과 이미지와 그것이 남긴 상처들에 지쳐있습니다. 전쟁은 끝이 나든 휴전 중이든, 아니 평화 속에서조차 잠들지 않고 우리의 잠을 방해하는 죽지 않는 괴물입니다. 푹 잠을 자본 게 언제인지도 모르겠네요. 당신들 자매를 괴롭히는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내 잠 속으로 이사를 온 모양입니다. 폭탄이 터지는 소리, 비행기가 지나가는 굉음, 아픈 이들이 토해내는 신음소리, 등등으로 꼬박 잠을 못 이루기 일쑤입니다, 미국으로 돌아가 당분간 의사 일을 그만두고 푹 쉬려 합니다. 그동안 너무 오래도록 혼자여서 그런 건 아닐까? 당신의 편지가 내게 딱 맞는 치유의 처방전이라서 물리적으로 어쩌면 더 혼자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친구이기도 한, 간호사 아가씨를 어떻게 도와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하네요. 아직은 나타나지 않는 IS연인이 뚜벅뚜벅 걸어와 총부리를 그녀의 가녀린 목에 들이대는 상상 속에서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듯 침묵하는 그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녀의 말없음표와 함께 나의 무기력함과 무상한 계획들은 계속 표류중입니다. 하루가 흘러가고 또 다른 하루가 흘러가고 강의 무심한 흐름에 몸을 맡기고 떠내려가 보자고 자신에게 타이릅니다. 나는 지금 내 생의 어디쯤을 떠내려가고 있는 걸까? 서른 살의 조급한 마음과 나이든 사람의 조급함은 어떻게 다를까? 당신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늘 초조합니다. 당신도 그렇겠지요. 요즘은 당신이 추천해준 포르투갈의 문학적 상징 페르난도 페소아의 『불안의 책』을 보는 중입니다. 얼핏 지루하기 짝이 없는 그 밑도 끝도 없는 긴 책은 내게 위안을 줍니다. 보다가 잠시 졸고나면 새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이 드는 묘한 매력을 지닌 책이네요. ‘불안의 책’을 ‘삶의 책’이라 제목을 바꾸어도 무방할 듯합니다. 살아있다는 건 불안 그 자체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그 지루하고 재미없고 긴 책에 매료되다니 신기한 기분입니다. 요즘의 내 생각과 딱 맞아떨어져 그런 모양인가 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아무 가치가 없고 우리가 그 일을 하는 것은 단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운명을 잊기 위해 밀짚을 엮는 죄수라기보다는 그저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베개에 수를 놓는 수녀에 가깝다.” -페루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살아생전에 여러 개의 이름으로 글을 쓴 이 무명의 작가는 죽은 뒤 그 유명세를 세상 곳곳에 널리 알리게 되는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엉뚱하게도 자신을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살아있기 때문에 글을 써 내려간 유태인 소녀 안네 프랑크를 생각나게도 합니다. 어쩌면 나도 지금부터 이런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떨림이 이 책을 보는 내내 나를 설레게 하네요. 마치 당신의 편지를 읽는 순간처럼 아껴서 읽는 중입니다. 누군가를 절대적인 위험에서 구하겠다는 내 젊은 날의 맑은 의식은 어둔 촛불처럼 흐려져, 내가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고 생각하는 건 단지 착각일 뿐 그들을 구한 건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손이었고, 살고 죽는 건 다 그들의 운명이었다는 생각이 날이 갈수록 절실해지네요.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막연한 불안감에 대하여 써 내려간 삶의 일기, 페소아의 사실 없는 자서전, 그런 책을 한 권 쓰고 싶다는 희망이 생겼답니다. 이왕이면 ‘불안과 사랑의 책’이라는 그런 제목을 붙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책에는 초조함과 불안감 사이로 가끔 섬광같이 끼어드는 순간의 행복감, 살아있음의 추억, 그 중에 당신과 함께 나눈 편지들도 대단히 한 몫 했음을 부인할 수 없겠지요. 저번에 보내준 당신의 편지, 찻집이 즐비한 중국 무이산의 거리풍경과 피아노 박물관의 오래된 피아노들이 내 머릿속을 한참 맴 돌았습니다. 딱 그런 곳으로 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답니다. 아무도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나 역시 그 아무의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모든 소리를 삼켜버린 침묵의 거리, 그러나 햇살만은 가득한 그런 곳으로 말입니다. 언제나 세상의 귀한 햇빛으로 살고 싶었답니다. 내가 많이 사랑했던, 한때는 아내였던 사람의 그림자가 이제는 뿌연 저편의 장막 속으로 사라진지 너무 오래되었고, 그동안 몇 번의 애증의 파도가 내 마음 속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사랑도 미움도 존경도 무시도 모든 건 다 내 마음 속의 파도라고 동양의 선지식이 텔레비전에서 하는 말을 굳이 귀 기울여 듣지 않아도, 나는 그 모든 것이 철썩철썩 부딪쳤다 사라지는 마음속의 파도인 걸 스스로 알아차렸습니다. 인류는 바야흐로 영원불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중이지만, 그 영원불멸의 시조는 중국의 진시황이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요즘 자신이 그 진시황제의 묘에서 발굴된 흙으로 만든 병사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그 불안한 마음의 파도를 타는 순간들도 나는 당신과 주고받는 편지들로 많이 행복했습니다. 나 자신, 영혼이 통하는 지구인과 교신하는 외로운 우주인 같기도 했고, 영원히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전쟁터에서 평화로운 일상의 햇볕 따뜻한 공원을 향해 보내는 구조의 신호이기도 했던 나의 편지들이 당신의 마음 어느 언저리에 앉았다가 작은 나비 한 마리 되어 허공을 향해 자유롭게 날아가도 좋았습니다. 사랑을 향해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부나비보다는 멀리서 님의 맘을 맴도는 하얀 나비를 나는 좋아합니다. 간호사 아가씨는 나와 친한 동료 여의사 집에서 꼭꼭 숨은 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어쨌든 지금 나는 그녀를 두고 이곳을 떠날 수가 없는 기분입니다. 당신이라는 사람을 매개로 맺어진 추상적인 의리 같은 것일지도. 그녀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곳에 아무도 없다 하더군요. 어쩌면 전화를 걸고 싶은 곳도 당신 밖에는 없는 듯 보였어요.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라 한참은 더 쉬어야 할 것 같았고요. IS에 가담해 떠난 연인을 찾으러 왔던 게 언제였던지, 그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듯 했어요. 그가 죽은 줄 알고 힘들어했던 그녀의 곁을 지켜준 착한 미군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야 마땅한 그녀의 운명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현실에, 그녀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로 정물처럼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네요.
어제는 쿠르드족 출신인 동료 여의사와 그 집 안에 꼭꼭 숨어있는 간호사 그녀와 함께 머리라도 식힐 겸 영화를 몰아서 몇 편 보았습니다. 이곳에도 영화는 각 나라 최신 것들도 다 볼 수 있으니까요. 와인을 한 잔 마시며 영화를 보면서 각자 다른 생각을 했던 것도 같습니다, 영상들은 사라지고 인상적인 말들 몇 개가 소복이 남았습니다. “열심히 살다가 언젠가는 죽을 이름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라든지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져요. 달에 간 사람들처럼요.”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다오. 나도 나의 이름으로 너를 불러줄게.” 그런 꽃 같은 문장들이 머릿속을 맴도는 이곳도 봄입니다. 어쩌면 낯선 나라에서 아프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삶을 선택한 건 영원한 철없음의 여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외과 의사였던 체 게바라의 청춘일지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풍경들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나의 마음은 매일매일 파도치며 왔다가는 사라지고 또 왔다가는 사라집니다. 오랜 나의 동료인 쿠르드족 여의사는 며칠 뒤 시리아로 남편을 찾아 떠난다 합니다. 그녀의 남편은 시리아 민주 군을 주도한 쿠르드 민병대 소속으로, IS의 수도 시리아 락까에서 IS 군을 몰아낸 쿠르드족 전사랍니다. IS 최후의 점령지 바구즈에서 포위된 채 민간인 천명을 인질로 잡고 버티고 있는 IS 잔병 퇴치 중 소식이 끊긴 지 한참 되었다 하네요. 남편을 찾아 시리아로 떠난다는 그녀가 걱정이 됩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러 떠나는 사람, 추격 중인 사람, 도망치는 사람, 도피 중인 사람, 숨어있는 사람, 그리고 방관자들, 모든 사람들의 운명은 날실과 씨실로 짜여져 서로에게 끝없이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양탄자 같습니다. 그 슬픈 지구의 미아 쿠르드족을 아세요? 3500만 명에 이르는 인구가 나라도 없이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으로 흩어져 사는 그들의 삶은 한 번도 자신들의 국가를 가져본 적 없는 영원한 유랑인 들이랍니다. 지금도 터키 시리아 이라크 등지에서 매일 매순간 독립투쟁 중이지요. 친한 동료 여의사가 전쟁터로 남편을 찾으러 떠난다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생각하던 내 인생의 모호함은 다시 사치스러움으로 바뀝니다. 나의 시간은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는 걸까? 내 시간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달려갈 당신의 시간에 관해서도 생각합니다. 우리가 뉴욕 소호의 갤러리에서 잠시 만났던 그 시간은 얼마나 아득한 시간인 것일까? 그로부터 쉬지 않고 달려간 나와 당신의 시간은 늘 평행선을 그으며 다른 곳을 향해 사라졌지만, 지금 이 순간도 당신의 시간은 나의 시간을 향해 위안의 메시지를 보내는군요. 그곳에서 행복하지 않다면 더 늦기 전에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인생은 행복하지 않기엔 너무 짧다고, 객관적으로 측정되는 시계의 시간과 마음으로 느끼는 마음 시간의 속도는 얼마나 다른지요. 우리가 느끼고 감지하는 시간은 우리가 이미 살았던 시간의 비율에 좌우된다고 합니다. 나이 들수록 우리들의 마음 시간은 녹을 시간도 없이 사라지는 드라이아이스 같습니다. 나의 마음 시간 안으로 당신의 마음 시간이 걸어 들어오는 환상을 봅니다, 캘리포니아의 모하비 사막에 엉뚱하게 놓여있는 영화 속의 바그다드 카페에서 우리가 커피 한 잔을 나누어 마신 기억이 꿈인지 생신지 아득해져 오는 지금 여기,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정지해있는 것만 같습니다. 아니 당신의 그림이 영문도 모르게 걸려있던, 시리아의 고대 유적지 팔미라와 고 도시 다마스쿠스의 딱 중간 지점인 황량한 시리아 사막에 오아시스처럼 서 있던 ‘바그다드카페 66’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당신이 꿈속에서 나와 함께 차를 마셨다는 중국의 무이산 찻집거리, 당신 꿈속의 ‘바그다드 카페’도요. 고향으로 돌아가 한 계절쯤은 미국의 서부를 여행하고 싶습니다. 그 황량한 사막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꿈속의 바그다드 카페와 느리게 돌아가는 축음기 소리, 고장 난 커피 머신, 영화 속의 뚱뚱한 주인공이 마술을 가르치는 곳, 우리의 젊음이 묻혀있는 상상 속의 바그다드 카페를 찾아 당신도 그 여행에 함께하면 어떨까 싶네요. 이건 우리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마음 시간 속의 풍경입니다. 오늘은 내 방에 걸려있는 당신의 그림을 흉내 내어 똑같이 그려보았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참 행복한 일이더군요. 똑딱거리며 지나가는 시계의 시간을 멈추는 마음의 시간을 창조하는 일, 문득 당신이 부러워졌습니다. 미국의 광활한 서부를 한참 유랑한 뒤 어디로 갈지, 머물 곳이 어딘지 다시 생각해보려 합니다.
불안의 책을 펼치니 밑줄을 쳐 놓은 이런 구절이 눈에 띕니다. “나는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도 나처럼 이길 수 없는 전쟁에 깃발도 없이 참가한 군대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내가 지금 딱 그런 기분이네요. 이길 수 없는 전쟁에 깃발도 없이 참가한 군대 속의 탈영병, 이제 나는 군복을 벗고 모하비사막으로 달려가 당신과 함께 바그다드 카페를 운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문득 이 행복한 꿈이 진짜 현실로 바뀔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저녁입니다.
우리가 만날 때 까지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