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보지 않은, 늙어보지 않은 의사의 조언은 그리 신뢰할 것이 못 된다. 그런 의미에서 누나는 좋은 정신과 전문의의 자질을 타고났다. 나는 누나의 실험 케이스였다. 동성애는 어떻게, 언제, 어디서부터 싹텄는가? 그리고 그것은 인류 역사상 언제부터 언제까지 정신병리학적 논제였던가? 이것이 누나의 박사논문 내용이다.
동성애는 언제부터 범죄사회학적 현상이나 정신병리학적 현상으로 분류되던 과거로부터 해방되어 성소수자의 건강한 권리로 인정되기 시작한 걸까? 동성애의 시작은 일단 남성이면서 남성을 좋아하는 감정, 여성이 되고픈 남성, 자신의 여성성을 스스럼없이 인정하는 남성들에게 발견된다. 다양한 자료들에 의하면 동성애는 인디언 특유의 세계관에서 비롯되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세계관에는 모든 존재하는 것은 정신적인 것이며 실재하는 사물들은 영혼의 반영물이며 그림자다. 생물학적인 성의 다양성을 인정했던 인디언들은 어쩌면 가장 앞서간 인간들인지 모른다. 원시 고대 사회와 그리스도 동성애가 자연스럽게 인정되었던 사회다.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들은 여자와 동침하면 육체를 낳지만 남자와 동침하면 마음의 생명을 얻는다고 믿었다. 그리스의 동성애는 고대 제국의 강력한 남성 중심적인 지배계급이 노예와 평민 남녀들을 일시적인 성적 대상으로 착취했던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내가 늘 헷갈리는 건 사랑의 도구와 폭력의 도구가 같다는 것이다. 섹스는 사랑의 도구이지만 사랑에 있어 섹스가 다는 아니다. 심지어 성폭력이란 사랑과는 정반대 개념이다. 젊은 날의 뜨거운 사랑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이 실은 호르몬의 장난이거나 외로움의 적극적인 투영이기도 하다. 수많은 철학자들과 유명 작가들을 배출한 화려했던 황금기 동안 고대 그리스는 동성애를 공인한 희귀한 사회였다.
동성애는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 인류 역사 속에서 끊임없는 편견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면면히 지속되어 왔다. 중세와 근대를 통해 동성애는 신의 권능에 대한 도전 행위로 철저히 금지되었다. 1차 대전 이후 독일의 베를린은 동성애자들의 메카였다. 나치 집권 후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동성애자를 색출하는 작업이 진행되었고 수용소로 끌려가 고문당하고 학살당했다. 1969년까지도 동성애는 독일에서조차 금지되었다. 그 뒤로도 좀 더 완화된 형태로 존재하다가 동성애 금지조항이 완전히 철폐된 것은 1994년의 일이다. 오랜 세월 발각되면 감옥에 갇히던 동성애자들은 이후 정신병 환자로 분류되어 뇌수술을 받거나 전기충격치료를 받았다. 세상은 놀랍게 바뀌어 2000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미국과 캐나다와 남미 대륙 나라들과 18개의 유럽 국가들과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대만을 포함한 28개 국가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다.
그 긴 핍박의 역사를 지닌 동성애의 귀결이 이제 와서 결혼이라니. 이제 결혼은 어쩌면 이미 무의미한 형식의 절차로 증명된 지 오래지 않은가?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뭔가 동성애를 껄끄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수군댄다. 지금도 늘 소수는 다수에 의해 진실을 거부당한다.
‘소수민족’이라는 말만 들어도 나는 가슴이 아팠다. 누나가 내게 마지막 남긴 말은 “누가 뭐라든 떳떳하게 살아.”였다. 성소수자라는 말조차 생경한 고등학교 시절, 그저 마음으로만 통했던 반 친구는 유난히 여성적인 면모가 드러났다. 그 애와 나는 알 수 없는 예민한 들뜸과 그리움을 공유했고, 어느 날 집 근처에서 둘이 손을 잡고 걷다가 반 아이들에게 목격되었다. 이후 떼를 지어 몰려다니던 폭력적인 반 아이들로부터 발가벗겨져 성적으로 남자임을 증명 당한 날 며칠 후 친구는 목매달아 자살했다. 그 잔인한 폭력의 시간에 나는 친구의 바지를 벗기는 역할을 맡았고, 그걸 거부하는 바람에 어이없이 얻어맞았다. 그 애가 내게 남긴 편지에는 “우리는 아무 죄가 없어. 하지만 나는 이 폭력의 시간들을 참아낼 기운이 없다. 친구여 내 몫까지 살아라. 그리고 사랑했다.” 이렇게 씌어있었다. 친구의 죽음은 이후로도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어둠이 되었고, 마지막 편지는 어릴 적 내가 가장 좋아하던 『안네 프랭크의 일기』의 마지막 페이지에 아직도 끼워져 있다.
사고로 위장한 자살을 실행한 날 새벽 두 시경, 누나는 전화로 내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그때는 그게 마지막인지도 몰랐지만. 늘 선물을 보내는 모르는 사람을 찾아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라고도 했다. 사실 요즘 세상은 모르는 사람에게 계속 편지를 쓴다거나 선물을 보내는 행위는 스토킹으로 규정되어, 받는 사람이 원하면 법적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 역시 늘 누군가에게 뭔가를 주고 싶다. 그가 거절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아무런 목적 없이 선물을 주고받는 것처럼 좋은 게 있을까? 그게 삶인 걸,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세상은 나날이 달라진다. 그것도 천천히 느린 속도로가 아니라 어느 날 꿈처럼 다른 낯선 세상에 뚝 떨어지기도 한다. 미 정부는 미확인 비행물체 UFO의 존재를 인정했다. 외계생명체의 우주선일지도 모른다는 이론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다. 문득 “신은 없다. 외계생물은 존재한다.”고 한 스티븐 호킹의 말이 떠오른다. 다가올 세대는 우리에게 외계인이다. 외계 생물이 존재한다면 전생도 존재할 것만 같다.
누나와 나의 공통점은 꿈을 자주 꾼다는 것과 여행을 좋아한다는 거였다. 언젠가 달나라를 같이 여행하자던 누나의 꿈은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갑자기 새로운 차원의 세상에서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누나는 단체여행을 좋아하는 부류가 아니었지만, 타고난 길치였던 누나는 여행 중 길을 잃어 단체로부터 이탈해 헤매는 꿈을 자주 꾸었다. 인턴 시절 두어 달 체류했던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어느 허름한 건물의 방 앞에서 열쇠를 잃어버려 들어가지 못하는 꿈, 수업시간에 교과서가 없이 혼자서 불안하게 기웃거리는 꿈,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가족이 힘센 동물에게 먹히는 모습을 오열하며 바라보는 초식동물의 꿈, 숨을 곳도 없는 막막한 사막에서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헤매는 꿈, 요약하면 이 꿈들의 주제는 불안이다. 우리 모두는 조금씩 변주된 같은 꿈을 되풀이해 꾸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 그 꿈의 내용도 불안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쫓기는 꿈, 사람을 죽이고 도망자가 되어 끊임없이 도망치는 꿈….
고등학교시절 갑자기 세상을 버린 뒤 내 안의 오랜 어둠으로 남은 친구의 “우린 죄가 없어.”라는 말이 메아리쳐 들리는 동굴, 그 짧은 문장이 가슴 속에 찍힌 성소수자라는 신분증의 두려움과 고독감. 나 혼자만 유독 우울하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된 건 나이가 들 만큼 든 뒤였다. 내가 고독하고 두렵고 우울한 건 성 소수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는 사실 속으로는 다 소수자이며 그 내용이 다를 뿐이라는 걸. 매 맞는 소수자, 배고픈 소수자, 몸과 마음이 아픈 소수자, 고독한 다수라는 유일한 삶의 진실 속에 소수의 의미는 묻힌다. 종류가 다 다른 소수자라는 이름으로.
아프리카 초원의 초식동물들은 강한 육식 동물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런데 초식동물들은 늘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거대 육식동물보다 오래 산다. 쫓기는 시간 외에는 먹이를 구하느라 늘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자의 평균 수명이 10~15년이라면 얼룩말은 25년, 코끼리의 수명은 50~70년에 이른다.
누나가 내 이름으로 모아놓은 통장 덕분에 나는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한동안 살 수 있다. 허송세월을 보내며 허송세월에 관한 연구를 하며, 프루스트적으로.
하루에도 스마트폰을 서너 번 잃어버린다. 스마트폰을 잃어버리는 블랙홀에 빠진 기분이다. 꿈속에서 스마트폰을 잃어버리는 꿈이 현실 속에서도 계속되는 것이다. 주머니에 들어 있는 핸드폰이 갑자기 없는 것 같아 불안해진다. 문득 만져보면 있다. 스마트폰은 ‘나’를 증명하는 모든 것이다. 스마트폰 상실의 블랙홀은 내게 소통의 불안을 상징한다. 누나와의 소통이 불가능해지는 불안이다. 나는 누나의 도움으로 성소수자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리고 스마트폰의 상실은 나와 누나의 소통의 상실을 의미한다. 내가 뜬 뜨개 스웨터와 털목도리와 장갑을 사랑하던 누나, 오랜 세월 그녀의 부재는 나의 부재를 증명하는 것 같았다. 수많은 날이 지나고 나의 홀로서기는 힘겹게 계속된다.
살 때는 삶에 집중하고 죽을 때는 걱정하지 않는다. 매일 매일이 좋은 날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그게 바로 내 인생의 목표인데. 그게 가장 어렵다.
시대를 초월한 내 친구 다섯 명을 꼽으라면 안네 프랭크, 우리 누나, 마르셀 프루스트,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윤동주 등등이다. 시대를 초월한 인류 친구들은 나로 하여금 성소수자의 고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걸 도와주었다. 연인을 만나도 그건 늘 아픔으로 귀결되었으며 성소수자의 불안과 고독을 증명해 줄 뿐이었다. 계절은 빠르게 지나가고 우리는 늙어간다. 지구여행 좀 하다 가는 거지. 다 갖기엔 다 하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내가 사랑하는 영원히 늙지 않을 윤동주와 안네 프랑크를 생각하면 그것도 과한 욕심일 거다.
누나가 세상 떠난 뒤에도 한참 동안 선물이 도착했고, 마지막으로 받은 선물은 누나가 좋아하는 향수였다. 그리고 그 안에 편지가 들어있었다.
선생님 저를 기억하실까요? 가장 외로운 시간에 선생님 덕분에 삶을 다시 시작한 저는 언젠가 한 소녀를 사랑했습니다. 우리 사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그녀의 부모님은 만남을 금지시켰습니다. 곧 유학을 떠나도록 절차를 밟던 중, 우울증을 심하게 앓는 그녀를 신경정신과 병동에 입원시켰습니다. 보고 싶어도 그녀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어느 햇빛 좋은 날 병원 옥상에서 떨어져 이승을 떠났습니다. 그녀를 따라 자살을 기도한 그때 그 시절, 제 상처를 어루만져주신 분이 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은 모르시겠지만 제가 병원을 다니지 않게 된 뒤에도 저는 늘 선생님을 생각했습니다. 제 상처의 아픔 위에 새살이 돋고 어느 순간 선생님은 제 마음속에 깊이 들어앉으셨습니다.
미안합니다. 당신을 사랑해서.
그리고 언제부턴가 선물은 다시 오지 않았다.
꿈속에서 UFO를 보았다. 그 안에 누나가 타고 있었다.
“빨리 타. 지구는 끝났어.” 누나가 말했다.
누나와 나는 UFO를 타고 다른 별로 이사 간다.
그곳에 도착하니 모르는 사람이 보낸 선물이 미리 와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