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 그리고 그와 같은 이름을 지닌 내 남편 마르셀 프루스트의 공통점은 신기하게도 아주 작은 소음도 참지 못한다는 것과 호흡기가 약하다는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삐걱거리는 침대의 소음을 못 견뎌 코르크로 만든 침대를 사용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코르크 하면 와인이 떠오르고 와인 한잔하면 잠에 떨어지는 나와 달리 내 남편 프루스트는 늘 불면증에 시달린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서로가 옆에 없으면 불안했던 신혼의 시간을 지나 우리는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잠을 영위한다. 부스럭 소리만 나도 잠에서 깨는 남편의 소음 강박증 때문에 같은 침대에서 잘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는 소음이든 음악이든 함성이든 소리에 민감하지 않은 편이다. 옆방에서 들리는 남편의 기침 소리는 내게 자장가가 되어주기도 한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독서를 즐기거나 번역 일을 하는 나는 어떤 소리든 음악으로 만들어버리는 재주가 있다.
우리는 아침에는 커피를, 저녁에는 와인을 마신다. 그럴 때 살아있다는 건 선물이다. 나는 가끔 아침의 햇빛과 석양의 술 한 잔이 비슷한 에너지를 준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이 고단한 삶을 지탱하는 건 열정이다. 살려는, 이루려는, 되찾으려는. 우리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잃어버린 시간은 늘 우리 안에 있다. 그러니까 잃어버린 시간은 내 안의 보물섬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남편은 네스프레소 캡슐 커피를 마셨다. 여과지를 커피 머신에 넣고 커피를 내려 먹곤 하던 내게 캡슐 커피 머신은 신기한 마술 기계처럼 보였다. 결혼 후 캡슐커피를 먹기 시작하면서, 나는 왠지 남아있는 날들을 저금하는 기분이 든다. 하루가 지나면 내가 마신 두 개의 캡슐과 남편이 마신 두 개의 빈 캡슐이 남는다. 남편은 버리지 않고 그 캡슐들을 다 모아둔다. 아름다운 색깔과 갖가지 무늬의 커피 캡슐은 그동안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들의 잃어버린 시간들이다. 색깔도 변하지 않고 영원히 썩지도 않을, 우주선의 식량을 닮은 작은 커피 캡슐들을 모아놓은 커다란 유리 단지들을 볼 때마다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야말로 타임캡슐이다. 밥을 먹는 것은 내용물을 소화시키고 배설하는 방법으로 외양적으로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캡슐 커피 머신은 우리가 이 지구라는 우주에서 얼마만큼 살다 간다는 흔적을 고스란히 남길 것이다. 변하지 않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다는 아름다운 커피 캡슐은 화성이나 금성, 수성 같은 혹성들을 축소해놓은 것 같다. 재활용 목적으로 커피 회사는 빈 캡슐들을 회수해 가길 원하지만 우리는 단 한 개도 돌려보내지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우리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네스프레소 왕국의 국민이다. 이 묘한 소속감은 캡슐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은근한 고리로 엮어준다. 프루스트가 살아있다면 캡슐커피를 좋아했을까? 커피보다는 홍차를 좋아했을 것 같다. 마들렌과 홍차, 내 남편 프루스트는 네스프레소 캡슐커피와 색깔이 깊은 마카롱을 즐기는 편이다. 이렇게 쌓인 시간의 흔적들은 언젠가 남편의 설치미술로 바뀔 것이다. 시간의 시간에 의한 시간을 위한 시간뿐인 우리의 삶.
남편은 작업을 하는 동안 캡슐커피를 마시며 같은 음악을 하루 종일 듣는다. 같은 음악을 일 년 내내, 아니 몇 년 동안을 늘 틀어놓는다. 그 음악이 영혼 속에 깊이 밴 냄새가 될 때까지. 그중 가장 많이 듣는 음악 중의 하나는 에릭 사티Éric Satie의 음악이다. 나는 그가 1800년대에 태어난 옛날 사람이라는 게 늘 믿기지 않는다. 그 현대적인 음률은 현대의 어느 뉴에이지 음악보다 새롭고 독창적이며 무엇보다도 프랑스적이다. 조곤조곤 영혼의 귀에 속삭이는 감각적이고 세련되고 멜랑콜리한 삶의 해석을 음악으로 써 내려간 에릭 사티의 독창적이고 현대적인 예술은 프루스트와 공통점이 있다. 그 우울한 기시감, 불교적으로는 업력이라 불리는 오래된 우울의 힘. 프루스트로 검색하면 1871~1922라는 생의 연도 숫자가 뜬다. 에릭 사티는 1866~1925라고 뜬다. 그들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동시대인이다. 에릭 사티는 라투르Patrice Contamine de Latour의 시 「오래된 것들」의 몇 줄에 영감을 얻어 「짐노페디」Gymnopédies를 작곡했다. 짐노페디는 고대 그리스의 의식 때 벌거벗은 소년들이 추었던 무도를 의미한다고 한다. 에릭 사티의 두 번째로 유명한 음악 「그노시엔」Gnossiennes은 비밀스런 종교적인 느낌을 지닌, 사티 자신이 만든 단어로 알려져 있다. 다른 음악가들과 달리 사티 음악의 제목은 독특하다. 그는 화이트와인을 좋아했고, 몽마르트르의 캬바레 르샤누아Le Chat Noir에서 10년 동안 피아노를 쳤다. 그곳에서는 사티의 유머와 시어詩語가 녹아든 그림자 연극이 열리고, 연극에는 그 시절의 모파상, 에밀졸라, 폴 베를렌, 알퐁스 도데, 그리고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름도 등장한다. 하얀 대리석 위로 미끄러지는 벌거벗은 그리스 소년들의 발소리, 「짐노페디」는 뜻밖에도 그런 발걸음을 숨소리처럼 간직하고 있다.
에릭 사티는 많은 독창적인 천재 예술가들이 그랬듯 가난하고 고독한 생애를 보냈다.
“수요일 그 가엾은 늙은 남자를 봤어. 그의 방에 들어갔더니 자고 있었어. 그는 며칠이나 샴페인과 진통제 외에 입에 대지 않았어.”
- 레이몽드 리노시에, 「프랑시스 풀랑크에게 보내는 1925년 7월 6일 자 편지」
“에릭 사티는 59세에 세상을 떠났다. 날씨가 화창한 날 장례 행렬은 매우 길었다. 그리고 예쁜 양산을 든 두 명의 젊은 여성이 장례식을 뒤따랐다 한다.”
- 아가드 멜리낭(툴루즈 국립극장 공동 극장장)
그 시절 에릭 사티와 마르셀 프루스트가 특별히 가까웠다는 논증은 하나도 없다. 그들이 인연이 없었던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공통적인 만질 수 없는, 만지면 부서질 듯 만져지지 않는 섬세한 예술혼을 느낀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를 들으며 우리의 아침은 시작된다. 오전에 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나는 책을 읽는다. 오후가 되어 남편의 빈 캔버스에 색칠을 하면서 매일 쓰는 색깔에도 아직 낯선 색깔이 있다는 사실이 늘 신기하다. 수많은 빨강 중에서도 낯선 빨간색, 낯선 노란색, 낯선 보라색, 심지어는 낯선 흰색도 낯선 검은 색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낯선, 내 남편 마르셀 프루스트, 그리고 낯선 나…….
나는 아침에 깨면 한동안 눈을 감고 누워서, 뜻을 이해할 수 없는 낯선 나라 라디오 채널을 틀어놓고 멍하니 있기를 즐긴다. 이란 방송이나 모로코 방송에서 코란이 울려 퍼지는 걸 들으면 한없는 평화를 느낀다. 때로 낯선 감각은 자유의 감각과도 통한다. 코란을 들으며 자유를 느낀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내 남편 마르셀 프루스트다. 그건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코란을 음악으로 듣는 나의 특별한 취향이기도 하다. 신은 없다. 만일 있다고 치더라도 자식을 불타는 전쟁터에 내다 버린 부모를 닮은, 그런 신은 없어도 무방하다. 매일 삶을 시작하는 걸음마 연습 뒤에 정오가 오면, 미친 듯 삶의 활기가 온몸에서 솟아오른다. 이 조울躁鬱의 기분은 어릴 적부터의 오래된 습관인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삶에 무심하다가 왜 갑자기 사는 게 온통 기쁨으로 물드는지, 빵을 자르는 것도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는 것도 왜 그리 행복감으로 충만한지. 그 비싼 물감을 겁도 없이 캔버스에 처바르는 일은 위대하고도 미친 화가, 반 고흐의 유전자를 헌혈 받은 세상 모든 화가들의 업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언젠가 본 다큐 프로그램에서 1980년부터 8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던 이란 이라크 전쟁 당시, 전쟁을 부추기는 이란 국영 방송 프로그램 아나운서의 나른한 목소리가 생각난다. “젊음이여 장렬히 순교하라. 오직 하나뿐인 우리의 신 알라를 위하여.” 나른한 그 감정 없는 목소리가 절망과 허무의 기억으로 저장되어 나 자신의 목소리가 되기도 한다. 영상 속에서 자식과 남편을 잃은 검은 히잡을 쓴 여인들의 풍경은 까마귀들의 풍경처럼 강렬하고 스산했다. 소년병들, 그들이 지금 살아있다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전쟁은 언제나 시작보다 끝내기가 더 어렵다. 세상의 소년병들이여! 나는 「짐노페디」를 들으며 돌아오지 않은 소년병들이 거대한 대리석 바닥 위에서 춤을 추며 미끄러지는 걸 상상한다.
어제는 꿈을 꾸었다. 남편과 함께 열기구를 타는 꿈이었다. 나는 열기구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설렌다.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아날로그적 선물, 천일 간의 여행을 떠오르게 하는 열기구, 우리는 가끔 높은 곳에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아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미움이란 또 얼마나 덧없는지 알기 위하여. 내 남편 마르셀 프루스트가 내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선선한 새벽공기 속에서 열기구를 타고 내려다본 꿈속의 풍경은 언젠가 가본 적 있는 아름다운 터키의 카파도키아 계곡이나 미얀마의 신비한 사원들의 풍경이 아니라 참혹한 전쟁터의 풍경이었다.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전쟁터조차 멀리서 보면 예술이다. 아니 전쟁터야말로 제대로 예술이다, 전쟁터에서 절대적 죽음을 경험하는 어린 병사들의 악몽의 순간들을 상상한다. 어차피 삶은 꿈이다. 그중에서도 전쟁의 시간은 가장 나쁜 꿈이다. 어쩌면 운 나쁜 사람들은 지독한 악몽을 경험한다. 다행히 꿈속에서 우리는 열기구를 타고 전쟁터의 풍경을 구경했다. 사는 동안 전쟁을 한 번도 겪지 않고, 꿈속에서 텔레비전에서 영화 속에서 전쟁의 풍경을 바라보는 구경꾼으로 살다가는 삶은 얼마나 행운인가?
그날 아침 눈을 뜨니 남편은 집에 없었다. 작업실 구석 책상 위에 남편의 노트북이 켜진 채, 짧게 쓴 일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또 오늘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죽은 자들뿐이다.”
“프루스트, 그런 책 제목이 있었지? 아니 작가던가?”
“매일 작업을 시작할 때의 하얀 불안, 페널티킥 선상에 선 골키퍼의 불안 같은.”
“모자를 벗어야 겠다 하면서 안경을 벗고, 울고 싶은데 웃고 있는 나.”
내 남편, 마르셀 프루스트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