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밥이 선이를 태우고 경비행기에 오른 날 아침, 날씨는 쾌적했다. 살아있다는 건 해가 뜨는 걸 바라보는 일이다. 살아있다는 건 해가 지는 걸 바라보는 일이다. 살아있다는 건 사랑하는 사람의 체온을 느끼는 일이다. 살아있다는 건 세상의 맛있는 음식을 온 감각으로 음미하는 일이다. 살아있다는 건 저 멀리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다, 살아있다는 건 바람과 비와 눈을 맞는 일이다. 살아있다는 건 아무리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매일의 일상보다 힘이 없다는 걸 깨닫는 일이다, 그 일상 속에서도 과거는 힘이 없다. 하지만 과거 없는 미래는 없다.
자신이 살아온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선이- 하고 발음하면 눈물이 날 것 같은 그 이름은 선이가 곁에 있는데도 계속 입에서 맴돌았다. 대낮이었지만 ‘야간비행’ 중 한 구절도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평화란 없다. 어쩌면 승리도 없을지 모른다. 집은 도피처가 되지 못했다.” 그의 집은 도대체 어디였을까? 집보다 더 익숙한 하늘이 그의 집은 아니었을까?
선이와 단 둘이 경비행기에 올라 이런저런 생각들로 마음이 벅찬 바오밥은 선이의 가녀린 허리를 스치며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선이는 너무 많이 울어서 지친 얼굴로 창문 넘어 펼쳐지는 킬리만자로의 풍경을 넉 놓고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이 세상에 단 둘이 남은 듯한 기분으로 바오밥과 선이는 마다가스카르 안타나라리보에 도착했다. 그곳의 한국음식점 ‘아리랑’은 두 사람을 가족처럼 포근히 맞아주었다. 마다가스카르식 지붕이 내다보이는 운치 있는 식당에 앉아 그들은 엄마처럼 그리운 음식을 먹었다. 헤어진 아내 엘리노어와는 같이할 수 없었던 정겨운 순간이었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와 불고기를 시켜먹으며 그들은 순간 행복했다. 죽은 사무엘은 그 순간 잠시 잊혀졌다. 그리하여 서서히 잊힐 것이었다.
바오밥은 이렇게 영원히 선이 곁에 머무르길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문득 사무엘의 비극이 자신의 행복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스쳐갔다. 그렇게라도 한번쯤 행복할 권리가 내게도 없으란 법은 없는 것 아닐까?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복권에 당첨되고 누군가는 벼락에 맞아죽는다. 산다는 건 그저 운의 연속이다. 그 운을 결정하는 존재가 신이라면, 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늘 행운이 따라야 마땅하다. 그러나 하늘이 사랑하는 사람은 빨리 데려가신다는 둥 사람들은 역설적인 사랑의 진리를 외쳐대며 아슬아슬하게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누구나 애틋하게 억울하게 죽는다. 어쩌면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아지는 세상을 살면서 그 무엇이 옳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문득 바오밥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선이와 한께 천수를 누리고 싶다는 것 외에는. 삶을 누린다는 말의 뜻이 무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오늘 일을 미룰 수 있는 내일이 있다는 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바오밥은 선이와 함께 누릴 수 있는 내일을 상상하며 김치찌개와 된장찌개와 불고기를 먹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름다운 음식이었다. 선이를 위해 매일 음식을 해주리라. 선이를 생각하며 수없이 만든 아프리카식 목걸이와 팔찌들을 이제는 주어도 좋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