듬성듬성 서있는 키 작은 가시나무들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사막 한 가운데 누워, 시리의 밤하늘에 알알이 박힌 별들을 바라보며 그는 경비행기 뒷좌석에 앉았던 여자에게 청혼을 했다. “나는 당신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가깝지만 그 때만 해도 머나먼 나라 한국에서 좋은 양부모님에게 입양되어 미국의 시카고에서 자라, 지금 나는 아프리카를 사랑하는 아프리카 사람입니다.” 선교사인 친구 부부를 따라 뉴욕에서 출발해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한 뒤, 그가 운전하는 경비행기를 타고 두 시간 반을 날아와 시리에 도착한 엘리노어는 자신에게 갑자기 일어난 이 일이 당황스러웠다. 몇 번의 시시한 연애 끝에 자신의 내면에 넘치는 사랑을 뭔가 믿을만한 곳에 저금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즈음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갑자기 그녀는 얼굴은 동양인이지만 유창한 영어에다 맑고 청량한 목소리로 사랑을 고백하는 그 특별한 사람과 한 번 쯤 더 사랑에 빠진들 어떠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그녀는 그가 경비행기를 운전하는 파일럿 선교사라는 사실에 매료되었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남들이 다 탄다고 해서 그저 남들 따라 타는 걸 그녀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쏟아지는 별들을 이불삼아 사막 한가운데 누워서 사랑을 나누었다. 아무도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존재는 없었다. 한 달 뒤 그들은 시리의 쏟아지는 별밤에 친구인 빌의 주례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에 온 손님들은 북극성을 포함한 유명한 별 몇 개를 제외하곤 모두가 이름 모를 별들이었다. 친구 따라 뉴욕에서 아프리카로 여행을 와 갑자기 파일럿의 아내가 된 엘리노어는 뉴욕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화가가 되려는 꿈을 접고, 아프리카 오지의 배고픈 어린이들을 위해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열정에 넘쳐있었다. 그러던 차에 정말 기막힌 타이밍에 그를 만나 하루 만에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그는 남편의 멀쩡한 이름 데이빗을 데이빗이라 부르지 않고 바오밥이라 불렀다. 귀에 딱지가 않도록 바오밥나무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는 그 나무 안에 돌아가신 자신의 양부모의 영혼이 살아있다고 말하곤 했다. 어린왕자에게 있어 바오밥나무는 자신이 살던 조그만 별 소혹성 B612호를 파괴하는 거인나무였지만, 남편에게 그 나무는 자신의 영혼을 매일 1센티씩 자라게 하는 생명의 나무였다. 그리고 그녀는 가끔 남편을 어린왕자가 아니라 위대한 왕자라고 불렀다. 리틀 프린스가 아니라 그레이트 프린스라고. 그들은 나이로비에 살면서 도시에서 오지로 떠나는 사람들을 날라다주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엘리노어는 언제나 남편 뒷자리에 앉아 창밖의 킬리만자로 산을 바라보았다. 거대하고 신비로운 킬리만자로는 구름 속에서 잠시 나타났다가 다시 구름 속으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녀는 남편이 운전하는 경비행기를 탈 때 마다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바로 구름 속의 저 킬리만자로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부르는 곳이면 어디나 같이 갔다. 탄자니아로 남 수단으로 르완다로, 전쟁이 일어난 곳으로도 서슴지 않고 날아갔다. 전쟁이 발발한 위험지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기자들이거나 기독교단체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지만 그중에서도 한국 선교사들이 가장 많았다. 데이빗, 바오밥, 그레이트 프린스는 그 사실이 참 신기했다. 왜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자신들과 하나도 닮지 않은 예수의 뜻을 전파하는 것일까? 그것도 생명을 걸고. 비행기가 들어가지 않는 아프리카의 오지 곳곳을 안 가본데 없이 다녔지만, 그들 부부가 가장 사랑하는 곳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조그만 사막 마을 ‘시리’였다. 몇 년 전만 해도 시리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어서 일 년 동안 들어가는 사람이래야 서른 명 남짓이었다. 그들 부부는 그저 일 없이도 가끔 그곳에 혼자 사는 선교사 빌을 위해 생필품들과 구호물자들을 가득 싣고 들어갔다. 연필과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들도 빠뜨리지 않았다.
엘리노어와 바오밥은 늘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별같이 반짝이는 아이들의 눈동자를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