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받았던 잊을 수 없는 선물 중 하나는 스케이트보드와 헬멧이었다. 결국 누나는 모르는 사람이 보낸 스케이트보드를 타다가 얼토당토않은 사고로 믿을 수 없는 죽음을 맞았다. 스케이트보드라는 뜻밖의 낯선 선물은 일밖에 모르던 누나의 유일한 자유이며 취미가 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스케이트를 타다가 친한 후배와 접촉사고로 넘어져 일 년간 깁스를 하고 학교를 다녔다. 이후 나는 다시 스케이트를 타지 않는다. 나는 누나가 이 세상의 얼음도 파도도 아닌 아스팔트 길이나 공원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모습을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급경사진 곳에서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와 다시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는 보드는 마치 누나의 날개처럼 느껴졌다.
누나가 지상에서 영원으로 떠난 뒤 한동안 나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헤맸다. 꿈속에서 나는 누나의 엽서를 받는다. 아직 카톡이 존재하지 않던 세상인가보다. “잘 있어. 너도 잘 있지?” 늘 그렇듯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정신과 수련의인 누나는 나보다는 냉정하지만 의사치고는 감성적인 인간이었다. 어쩌면 누나는 순간이동을 하여 이국의 어느 낯선 거리에서 보드를 타며 여행 중인지도 모른다. 한번은, 내가 없애지 않고 간직하고 있는 누나의 스마트폰으로 만나러 오라는 문자가 왔다. 택시를 타고 어딘가 도착했는데 무슨 불교 강연회를 하는 곳이었다. 멀리서 얼핏 보이는 누나는 살짝 취한 듯 보였고 슬퍼 보였다. 자리를 잡는 동안 누나는 시야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강연이 끝나고 누나를 찾아다니는데 누군가 내게 다가와 속삭이듯 말해주었다. 누나가 자동차로 누군가를 치고 달아나 수배중이라고.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깨 보니 꿈이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누나가 사람을 친 건 현실이었다. 야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뛰어든 취객을 치었는데 그가 즉사했다. 그날 이후 누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못 마시던 술을 너무 많이 마셨고 점점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가벼운 취미이던 스케이트보드를 난폭하게 즐겼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누나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사가 돼가지고, 그것도 남의 마음을 치료하는 사람이 왜 자신의 마음은 그렇게 방치했던 걸까? 꿈속에서도 나는 누나를 힐책한다.
누나가 슬슬 꿈에 나타나지 않기 시작하면서 대신 나는 꿈속에서 거친 소년병들 속에 둘러싸여 울고 있는 어느 어린 소년병을 본다. 날 때부터 세뇌를 받아 알라를 신봉하는 전쟁터의 소년병들에게 질문은 허락되지 않는다. 총에 키스하고 총을 몸에 문지르고 총을 가슴에 품고 자는 아이들은 이교도들을 모두 죽이리라 맹세한다. 내세에는 온갖 금은보화가 기다린다고 믿는 소년병들에게 죽음은 두렵지 않은 영광스러운 순교의 길이다. 누가 그들을 나무랄 수 있을까? 요즘 전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킨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영상은 몇 년 전 한참 세상의 주목을 끌던 ISIslamic State, 이슬람국가 홍보영상을 생각나게 한다. IS는 세련되고 자극적인 영상으로 세상의 외로운 늑대들을 유혹한다. 그리고 속삭인다. “그대들은 SNS를 통해 실행하는 게임을 우리와 함께 전쟁에서 실제로 경험한다.” 홍보영상에 홀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세상의 외로운 늑대들은 그곳에서 극단의 테러 교육을 받게 된다. 소년병들은 적들의 참수된 머리로 축구를 하기도 한다. 잔혹과 폭력을 익숙하게 만드는, 수학을 전쟁으로 배우는 세뇌 교육이다. 더 많은 죄를 짓고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게 하는 게임,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나는 게임하는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울고 있는 어린 소년병을 떠올린다. 별의별 백신을 다 만들어 수명을 늘리면서, 인류는 결국 불치병인 전쟁의 백신은 만들지 못하고 말 거다. 내 꿈속에서 울고 있는 어린 소년병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바로 누나다. 누나가 남겨놓은 스케이트보드를 나는 고이 모셔두었다. 소년병의 빛나는 총처럼 가끔 꺼내 보기도 하고,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놓는다.
나는 짝사랑 전문가다. 남자가 돼가지고 일단 여자한테 관심이 없으니 사랑하는 상대를 찾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더구나 찾았다 해도 그쪽도 나와 같은 마음일 확률은 너무 낮았다. 청소년 시절 나 역시 외로운 늑대의 시간을 보냈다.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은 오래된 인류의 세뇌 교육에서 비롯한다. 왜 꼭 그래야 하는지, 질문은 허락되지 않는다. 나는 외로운 소년병의 마음을 안다.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쩌면 나 역시 꿈속에서 울고 있는 누나를 찾아 “게임은 전쟁터에서.”라고 달콤하게 속삭이는 슈거 랜드를 향해 시리아로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났을지 모른다. 모름지기 종교란 수호신인 어머니를 대신해 세상의 모든 고아들을 품어주는 따스한 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발명품이어야 한다고.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렇다. 내가 자라온 시간들만 해도 성소수자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종교도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성소수자의 사랑에 관하여 당신은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눈살을 찌푸린다. 오늘날까지도 모든 종교는 같은 성을 사랑하는 건 정신적인 기형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기형이란 무엇인가? 나와 다른 것일 뿐, 다수 중에서 자신을 힘들게 지켜나가는 소수일 뿐. 나는 가끔 외로운 마음을 달래주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프로그램을 보면서 동물에 관한 소중한 진실을 발견한다. 새끼를 굶기지 않는 부모란 얼마나 위대한가? 부모가 될 수 없는 나는 아직도 나 하나만도 굶기지 않음을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는 천둥벌거숭이다. 자신은 명품백 하나 사지 않고 동생에게 두둑한 용돈을 주던 나의 누나는 내 꿈속의 소년병이 되어 전쟁터에서 울고 있다.
무심히 유튜브를 듣다가 이런 말이 귀에 꽂혔다. “스스로 가장 밝게 빛나는 별, 나는 태양이며, 세상의 별들 중 으뜸이다. 우주의 작은 별들은 나의 영향력 아래 나를 중심으로 돈다. 나의 빛은 빨라서 8분 만에 지구에 이른다. 지구의 빛은 180년이 걸려야 내게 도달한다. 하지만 무한한 우주 속에서 태양 역시 한낱 작은 별에 지나지 않으며, 나에게 주어진 시간도 영원하지 않다. 그러므로 나, 태양의 운명은 신이 아니라 인간에 가깝다.” 태양도 그럴진대 지구 속의 작은 성소수자인 나는 자신의 처지를 안쓰럽게 생각할 시간이 없다. 어릴 적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한 사람은, 전쟁터에는 살 만큼 산 칠십 세 이상만 보내라던 ‘찰리 채플린’이다. 그는 결혼을 네 번 하고 열한 명의 자식을 두었다. 어두운 시대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웃음을 준 찰리 채플린, 어쩌면 그조차도 외로운 순간이 있었을까? 그렇겠지. 그도 ‘고도’를 기다렸을까? 『고도를 기다리며』는 날 때부터 인간에게 운명으로 주어진 허무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인생의 반복의 지루함에 관한 상징이기도 하다. 매일매일의 반복, 그중에서 그나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아니 그저 싫어하지 않는 일의 반복이 운명으로 주어진다면, 그게 성공한 삶이 아닐까?
사실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들은 무엇을 이루거나 주어진 일을 하는 것보다는 나를 잊게 하는 무책임한 순간들이었음을 고백한다. 누나에게는 그게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일이었다. 우리는 매일 인생이라는 여행길에서 불안하게 눈을 뜬다. 불안을 없애는 방법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은 갖가지 색깔의 털실로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는 물건들을 짜는 것이다. 스웨터. 장갑, 모자, 귀마개 등등. 누나는 내가 만든 스웨터와 장갑과 모자와 귀마개를 좋아했다.
또 겨울이 다가온다. 갖가지 아름다운 색깔의 털실들을 사러 가야겠다. 누나를 위해 새로운 스웨터와 목도리와 모자와 장갑과 귀마개를 한 코 한 코 떠나가는 일은 내 방식대로 누나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길이다. 그것들을 완성해서 우리 동네에 아직도 존재하는 구멍가게 할머니께, 내가 가면 반찬을 듬뿍 갖다주는 단골 식당에서 일하는 조선족 누나에게, 길에서 마주치는 추워 보이는 사람에게 문득 내미는 거다.
“이거 두르실래요? 따뜻하실 거예요.”라고 말하며. 정작 내가 내미는 목도리를 선뜻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요즘 사람들은 남에게 주는 일에도 무능하지만 받는 일에도 무능하다. 믿지 못하는 것이다. “목도리 값이 얼만데요?” 하고 물을지도 모른다. “공짜예요. 모든 게 다 공짜예요.” 누나가 세상 떠난 떠난 뒤에도 일주일이 멀다하고 도착했던 모르는 사람이 보낸 선물도 다 공짜였다. 공짜는 없다고 말들 하지만 공짜가 있다 해도 그건 좀 무서운 선물이다. 어느 해의 크리스마스 즈음, 모르는 사람이 보내온 선물 속에 아기 예수가 그려진 조그만 카드가 들어있었다, 카드에는 이렇게 씌어있었다.
“아직도 당신을 사랑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나는 카드에 적힌 글자들의 의미를 들여다보며 전광판에 ‘저상 16분’이라고 쓰여 있던 3012번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의 16분은 긴 시간이다. 하지만 버스는 생각보다 금세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