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즈음 바오밥은 없던 버릇이 생겼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선이를 위해 기도하는 버릇이 생겼다. 선이가 나를 위해 오늘도 웃어주길, 선이가 나를 위해 울어주길, 선이가 행복하길. 선이의 밤에는 늘 이름 모를 별들이 가득하길. 달빛도 눈부시길, 선이가 맞는 아침은 언제나 햇살로 가득하길. 바오밥은 선이와 함께 끝없는 골목길을 걷는 꿈을 꾸었다. 끝이 나지 않는 그 골목길은 어릴 적 살던 미아리였을까? 아니면 가보지 못한 달나라의 좁은 골목길일까?
꿈인지 생시인지 바오밥은 선이와 함께 끝없이 좁은 골목길을 걸었다. 골목길은 눈이 녹아 질척거렸다. 눈이라니, 아프리카에 눈이라니. 하지만 킬리만자로 정상에는 늘 하얀 눈이 쌓였다.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을 바오밥은 어릴 때 본 영화로 기억했다. 그것도 제목만.
헤밍웨이는 왜 자살했을까? 바오밥은 알 수 없었다. 세상은 참 알 수 없었다. 나를 버린 나의 진짜 가족은 다 잘 있을까? 고마운 양부모님은 천국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실까? 내 곁을 떠난 잊을 수 없는 사랑스런 개 라이카도 천국에 있을까? 그리고 내 곁을 떠난 아내 엘리노어는 지금 누구와 함께 행복할까? 하지만 다 추상적인 생각일 뿐, 그의 마음에 새겨진 얼굴은 선이, 그녀였다. 그는 가끔은 선이를 마음뿐이 아닌 살아있는 몸으로 안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선이를 따라다니는 햇빛이었다. 그는 가끔 무슨 과학 잡지에서 읽은 이런 구절을 떠올렸다, “내 얼굴에 지금 이 순간 와 닿은 햇빛은 태양에서부터 천만 년 전에 떠난 그 햇빛이다.” 그는 자신이 선이를 만나러 천만 년 전 태양으로부터 떠난 한 조각의 햇빛처럼 느껴졌다. 선이는 그걸 알고 있을까? 그녀를 만나러 그렇게 먼 곳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걸어왔다는 걸, 바오밥은 구름밭을 내려다보며 비행하는 한낮을 좋아했다. 이 세상 모든 밭들 중에서 구름밭처럼 너른 벌판은 없을 것이다. 한 낮의 밑도 끝도 없는 구름 벌판을 내려다보며 어느 찰나 자신을 잊어버리곤 하던 그가 착륙할 때 만나는 건 킬리만자로의 붉은 노을이었다.
그 노을을 바라볼 때 문득 그는 자신의 모든 불행을 용서했다. 아니 사랑했다. 친어머니에게서 버려진 것도, 양부모가 돌아가신 뒤 어릴 때 꿈이던 파일럿이 되어 아프리카의 오지 전역을 돌아다니게 된 것도, 아내 엘리노어가 떠나간 것도, 드디어 선이를 만나게 된 것도.
선이의 남편인 젊은 한국인 목사는 바오밥을 좋아했다. 언젠가부터 그는 바오밥을 형이라고 불렀다. 그가 선교사들을 싣고 시리의 사막에 올 때마다 선이 부부는 한국 음식을 정성껏 대접했다. 선이의 남편이 만든 닭도리탕은 일품이었다. 신기하게도 우리의 닭도리탕은 아프리카 어디에서도 맛볼 수 있는 낯익은 맛이었다. 한국 닭도리탕은 매콤한 게 특징이었다.
선이가 만든 김치찌개를 바오밥은 좋아했다. 김치찌개를 먹을 때마다 어릴 적 어머니가 “한수야 많이 먹어라.” 하며 수북이 떠주던 하얀 쌀밥이 떠올랐다. 산다는 건 매 순간 축제였다.
선이 부부는 매주 일요일마다 시리의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축제를 열었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삶은 콩을 제일 좋아했다. 그들은 콩을 삶아 점심으로 아이들에게 주었다. 그 콩을 닮는 플라스틱 그릇들은 빨강 파랑 노랑 연두 초록 보라 분홍 등등 색채의 향연이었다.
아무리 가난해도 아프리카인들은 색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아이들의 학예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어머니들의 의상과 액세서리는 찬란하게 아름다운 원색들로 빛났다. 누가 그들이 그렇게 가난하다는 걸 알 수 있을까? 그들이 사는 집을 찾아가보면 그렇게 화려한 의상이 어디에 걸려있는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움막이었다. 그 움막조차 쓰레기와 누더기들로 기워놓은 설치미술 같았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바오밥은 아프리카의 모든 곳에서 그림을 보고 느끼고 숨 쉬었다. 바오밥은 선이를 위해 아프리카식 화려한 목걸이와 팔찌를 만들었다. 한 번도 준적은 없는 선이를 위한 선물은 하나씩 둘씩 바오밥의 작은 아파트 서랍 속에 쌓여갔다.
사랑을 표현한 적도 선물을 준 적도 없기에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는 그녀의 남편에게도 별로 미안하지 않았다. 그냥 선이를 볼 수만 있어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