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밥의 경비행기에 남편과 함께 오른 그녀를 마주친 순간, 그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동그란 얼굴에 뒤로 묶은 검은 머리칼이 희미한 그리운 냄새의 기억을 풍기며 그의 얼굴을 살짝 스쳐지나갈 때, 그의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쉬리로 들어오는 한국인 선교사 부부는 걱정스런 얼굴로 잔뜩 흐렸다가 다시 환하게 웃는 바오밥의 얼굴을 보고는 마음이 놓인 듯 편한 웃음을 지었다. 쉬리는 선교사들에게 척박한 고난의 땅이었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멀리서 온 힘을 다해 고난의 땅으로 들어오는 걸까? 바오밥에게 쉬리는 풍경이었다. 가시나무와 전갈과 사막과 별들이 있는 곳, 그 곳에 어릴 적 어머니의 기억을 빼닮은 여자가 하얀 얼굴로 해맑게 웃고 서 있었다. 그들 부부가 쉬리로 들어온 이후 쉬리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방문객들은 바오밥이 운전하는 경비행기를 타고 쉬리로 들어와 온통 별들로 빛나는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나이로비로 돌아갔다, 쉬리는 낮과 밤이 너무 다른 곳이었다. 척박한 낮과 황홀하게 빛나는 별들의 밤, 바오밥은 별들이 쏟아지는 밤에 엘리노어와 사랑에 빠졌던 밤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 그의 머릿속을 맴도는 단 하나의 얼굴은 어릴 적 어머니를 꼭 빼닮은 그녀, 한국인 젊은 목사의 아내, 선이였다. 선이는 피아노를 능숙하게 연주했다.
그녀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바보밥은 먼 옛날 어머니의 품속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가 물론 파일럿 선교사이긴 했지만 사실 그는 하느님의 실존을 그리 믿지 않았다. 어느 날은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없기도 하는 하느님은 그 무슨 뜻으로 그리운 어머니를 떠나 이렇게 먼 곳으로 나를 보내셨을까? 바오밥은 별들이 눈물처럼 뚝뚝 떨어지는 밤에 가슴에 조용히 손을 얹고 그리운 어머니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어릴 적 어머니의 모습을 꼭 빼닮은 그녀, 선이의 얼굴이었다. 바오밥은 틈만 나면 그녀의 이름을 발음해보았다.
‘선-이’ 하고 어눌하게 발음할 때, 소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남는 건 그리움이었다. 신앙심 깊은 그녀의 남편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는 조용히 멀리서 그녀를 사랑했다. 바오밥은 선이가 낭랑한 음성으로 웃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에 파문이 일었다. 이런 웃음소리를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는 희미한 기억이 먼동처럼 멀리서 서서히 다가왔다. 아- 산다는 건 매 순간 기적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그 친숙한 웃음소리는 바로 어릴 적 어머니의 웃음소리였다.
웃을 때 밝은 미소가 얼굴 한 가운데 환하게 퍼지곤 하던 어머니의 경쾌한 웃음소리, 소리 나지 않게 숨죽여 흐느끼던 새벽녘의 어머니 울음소리.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한수야.’하며 어린 바오밥을 쓰다듬던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 하지만 사실 어머니의 얼굴의 생김새는 여간해서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목사의 아내 선이를 보기 전까지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전율이 일었던 건, 아주 잊었다고 생각하던 어머니의 얼굴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다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선지 선이를 마주칠 때마다 마음이 환해지는 동시에 울고 싶어졌다.
그녀가 낭랑한 목소리로 서툰 영어로 그에게 건네는 말은 언제나 “밥 먹었어요? 안 먹었으면 우리랑 같이 먹어요.”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너무 좋죠?” 그렇게 일상적인 내용들이었지만 그는 그녀가 말을 건넬 때마다 마음의 섬세한 부분이 떨려왔다. 그리고는 자신의 삶에 관해 처음부터 다 털어놓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이 세상엔 다 좋은 것도 다 나쁜 것도 없다.
엘리노어가 떠난 이후 그에게 새로운 사랑의 자리가 마음속에 자리 잡은 걸 느끼며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세상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종족이 있다. 모계사회로 이루어진 중국 운남성 소수민족인 나시족 모소인들에게는 사랑뿐 아니라 아버지라는 단어도 없다.
바오밥이 어느 핸가 중국 운남성을 여행했을 때 들은 이야기였다. 생각해보니 그에게도 아버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기원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어머니의 얼굴도 분명한 기억은 아니었다. 어쩌면 어머니를 빼닮았다고 생각한 선이의 모습은 바오밥 자신이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린 어머니의 얼굴이었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