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밥은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아프리카 사람이었으므로 미국으로 돌아가는 일은 아무 의미도 없게 느껴졌다. 그들의 위대한 사랑은 겨우 이 정도였을까? 바오밥은 섭섭했다. 그들 부부는 편지를 주고받고 가끔은 비싼 전화 통화를 했지만 서서히 떨어져 있는 거리만큼 조금씩 멀어져갔다.
그리고 다음해 가을엔 엘리노어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편지를 받았다. 바오밥은 며칠 동안 쉬리의 사막지대를 미친 듯 헤맸다. 비가 와서 사막의 먼지들은 조용히 가라앉아 그의 마음속으로 쌓여들었다. 사랑의 밀도란 그들이 쌓아온 세월의 축적에 비례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진짜 사랑이란 사이좋게 오랜 세월을 같이 한 노부부들에게서 드물게 발견된다.
젊은 날 우리가 사랑이라고 불렀던 짧은 사랑들의 대부분은 연애질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어야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바오밥은 고독했다. 그를 위로해주는 것들은 쉬리의 똑같은 간격으로 서있는 헐벗은 가시나무들과 반짝이는 눈동자와 따뜻한 손짓 몸짓으로 그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쉬리의 아이들, 그리고 그가 죽는 날까지 포기할 수 없는 즐거운 비행의 순간이었다.
비행하는 순간에는 역시 클래식 음악이 좋았다. 그는 오래도록 잊었던 클래식 음악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재즈를 좋아하던 엘리노어 덕분에 그는 한동안 재즈를 즐겨들었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에 듣는 바흐는 얼마나 황홀한가? 그 경쾌한 모차르트는 또 어떻고. 심장에다 노크하는 베토벤을 들으며 이륙할 때는 살아있다는 게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사실 그에게는 꼭 연인이나 아내가 없어도 좋았다. 세상의 모든 풍경들과 자신을 기다리는 아프리카 각 지역의 아이들과 자신이 아니면 지도에도 없는 오지로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 그 모두가 다 사랑이었다. 그는 다시 혼자가 된 느낌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걸 그는 스스로 ‘쎙떽쥐뻬리 증후군’이라고 불렀다. 어쩌면 아내 엘리노어가 자신의 곁에서 많이 외로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그는 가끔 야간 비행을 즐겼다. 그는 아무 때나 떠났다. 하지만 그가 도착하는 곳은 늘 쉬리였다. 엔진의 회전수와 오일의 압력, 비행과 관계되는 모든 단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부추겼다.
“밤에 떠난다는 건 아주 멋진 일이야.” 그는 가끔 진짜 쎙떽쥐뻬리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달을 올려다보면 부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부자들은 다 바보였다. 죽을 때 한 푼도 가져갈 수 없는 데, 짐만 많은 불편한 부자가 그는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친 자식이 없는 양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1년 동안 아무 일도 안하고 살 수 있는 돈을 제외하고 그는 그들의 친지들에게 다 돌려주었다. 그것만도 정말 고마웠다. 이제 그가 가진 건 세상을 향한 진심뿐이었다. 이런 진심은 어릴 적부터 아무 것도 가진 적이 없이 자란 성숙한 인간에게서 드물게 발견되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사람은 사막지대 쉬리에서 매일 밤 별들로 샤워를 하고 홀로 잠드는 친구 ‘빌’이었다. 그의 사진은 특히 유럽에서 많이 알려져 있었다. 그 알려진 사진들 중 바오밥 나무 아래서 찍은 파일럿 바오밥의 사진을 빌은 자신의 작은 방에 걸어두었다. 구만 육천 킬로미터의 혈관의 길이를 지닌 위대한 인간의 종이 그렇게 겸손할 수 있다니. 바오밥 역시 빌이 찍어준 바오밥 나무 아래서 찍은 자신의 사진을 매일 아침 일별하며 집을 나섰다. 사진 속의 그는 영원히 늙지 않을 젊은 쎙떽쥐뻬리였다.
사방이 캄캄하고 조용해지는 나이로비의 정적의 밤, 문득 참을 수 없는 비행의 유혹이 바오밥을 감쌀 때, 그는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다. 캄캄한 밤 속에 산맥들이 장애물경기처럼 놓여 있었다. 산맥들을 사뿐히 넘어가면서 비행하는 내내 바오밥의 머릿속에 이런 노래가 떠올랐다.
“꿈속에서 달이 찾아와 감옥에서 나를 꺼내주네.” -아마드 샴루, ‘달’-
세 시간 반 남짓해서 그는 쉬리의 작은 사각 착륙장에 능숙한 솜씨로 이륙했다. 그를 위해 켜둔 관제 등의 불 빛 속으로 들어서면서 그는 비행기의 소음으로 먹먹해진 귀를 조용하고 캄캄한 별들의 사막 ‘쉬리’를 향해 활짝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