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노어와 결혼한 건 바오밥에게도,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녀는 젊고 매력적이고 총명하기까지 했다. 매번 천사와 함께 비행기에 오르면서 그는 예전의 자유와 고독을 살짝 그리워하다가도, 너무 행복하면 뭔가 행복에 반하는 핑계거리를 만들어내는 법인 인간의 본성을 비웃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도록 혼자 살았던 그에게는 고독이 주는 청량감에 대한 향수가 아주 작은 틈이라도 타고 스며들었다. 그가 고독해서 행복할 때는 특히 비행기가 이륙할 때와 착륙할 때였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착륙과 이륙, 그럴 때마다 그는 열 번은 읽은 듯한 쎙떽쥐뻬리의 소설 ‘야간 비행’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는 쎙떽쥐뻬리의 자유롭고 고독한 영혼이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온통 사로잡고도 모자라, 어쩌면 자신이 환생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가끔 사로잡혔다. 하긴 파타고니아와 부에노스아이레스 사이의 우편을 배달하는 우편비행기 조종사나 낯선 오지를 향해 사람들을 날라다주는 파일럿 선교사나 뭐가 다르랴? ‘야간비행’ 중에서 빨간 줄을 그어놓은 이런 구절이 그를 늘 설레게 했다. “삶에는 해결책이 없다. 전진하는 힘만이 있을 뿐이다. 그 전진하는 힘 때문에 프로펠러는 녹슬지 않는다.” 그 녹슬지 않는 프로펠러가 바오밥의 마음속에서 희망처럼 나부꼈다. 하지만 야간 비행 속의 이런 구절이 늘 마음 깊숙한 그늘로 자리 잡았다.
“그는 이처럼 불안할 것이다. 영원히.”
그 불안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시리의 아이들에게 그림그리기를 가르쳐주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볼 때, 그는 행복했다. 그 역시 그림 그리는 일을 사랑했다. 하늘을 나는 일은 눈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그가 처음 시리에 도착했을 때, 도화지에 색칠을 하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아이들은 땅에다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렸다. 비가 오면 다 지워지고 마는 그림을 보면서 그곳에 갈 때마다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싣고 갔다. 아이들에게 종이와 크레파스를 나눠주고 그림을 그리라 하면 아이들은 모두 낙타와 염소와 사막의 가시나무들을 그렸다. 그 가시나무들은 크기가 엇비슷해서 아이들은 사물을 조그맣게 비슷한 크기로 그리곤 했다. 일렬로 늘어선 낙타와 염소와 가시나무와 사람, 그들이 태어나 본 세상의 풍경은 그게 전부였다.
언젠가 코카서스 3국의 나라들을 여행했을 때. 바오밥은 그곳의 옛 사람들이 말보다 소를 훨씬 크게 그려놓은 벽화가 인상에 남았다. 그곳의 옛사람들은 중요하고 힘센 사물을 크게 그린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시리의 아이들은 모든 사물의 크기를 똑같게 그렸다. 그러고 보니 그들에게는 특별히 힘센 존재가 존재하지 않았다. 바오밥은 가끔 생각했다. 태어난 곳에서 한 치도 다른 곳으로 가보지 못한 사람과 자신처럼 이 세상 끝 안 가본데가 없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생각할수록 그는 너무 멀리 왔다. 그의 기억 속에 남은 가장 오래된 풍경은 서울의 어느 작은 시장 풍경이었다. 그곳에서는 안파는 것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외할머니가 팔던 생선들을 그는 잊을 수 없었다. 할머니가 구워주는 생선을 먹을 때마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죽은 생선들이 떠올라 그는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할머니가 발라주는 생선살을 먹었다. 미국으로 건너온 뒤 그는 눈을 뜨고 죽은 생선 구이를 먹은 적이 없었다. 미국의 식료품 가게에서 파는 생선들은 그저 살코기만 있었다. 산다는 건 얼마나 모진 일인가?
우리가 먹는 남의 살들은 모두 다 잔인한 살육의 결과물이다. 알고 보면 닭 한 마리 먹는 일도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닭들은 안다. 자신의 가족들이 순서대로 제물이 된다는 걸. 그리하여 드디어 오늘이 자신의 차례라는 걸. 언제부턴가 바오밥은 채식주의자가 되어있었다.
바오밥이 기억하는 한국의 풍경은 서울의 어느 변두리 시장 할머니가 생선을 팔던 생선가게, 닭의 목을 비틀어서 털을 뽑아 팔던 그 옆 가게, 그리고 아름다운 색깔의 갖가지 옷감을 팔던 포목가게의 풍경이었다. 그 모든 풍경들이 가끔 꿈속에 나타나 “한수야. 네 이름은 한수란다.” 하고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