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의 소금장수’, 그 제목이 잊히지 않는 건 영상이 아주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북쪽 지역의 소금호수까지 3개월에 걸쳐 소금을 가지러 이동하는 4명의 유목민의 행렬을 따라 그들의 삶을 묘사한 영화였다. 그들은 물물교환의 수단이 되는 그 귀중한 소금 더미를 북북 긁어모아 야크 등에 얹혀있는 무거운 자루 속에 꾹꾹 눌러 담고는 집으로 돌아온다. 지구에서 자장 아름답게 고립된 이 지역에서 남자들은 여성이 결코 가까이 근접할 수 없는 소금 호수의 소금 언어로 이야기한다. 그건 고대로부터 내려온 삶의 방식이며 서구인들이 결코 해독할 수 없는 상징으로 번역될 수밖에는 없다고 말하던 오래전에 본 영상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또렷이 그려졌다. 우리가 그냥 스치고 지나가는 건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
나중에 생각하면 우리가 보고 느끼고 냄새 맡았던 그 모든 것들은 우리의 삶을 설명하는 이유 있는 이정표들이다. 오던 길에 본 광활한 염전의 소금 판 위로 하얀 소금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나고 있었다. 소금 언어란 어떤 언어일까? 아버지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그 신비한 소금 언어로 말하고 있는 듯했다.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닌, 그 아무 데도 없는, 아버지의 마음속에만 있는 곳의 언어로. 그녀는 그 언어가 친구 오빠가 가르쳐준 수학의 언어가 아닌지 잠시 생각했다.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들어 설명하는 수학의 언어, 짜지만 한없는 바다를 품은 소금의 맛, 그게 바로 티베트의 유목민들끼리 통하는 ‘소금 언어’일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버지는 서울로 가자고 졸라대는 아들의 말은 듣지도 않고 펜션 주인 할머니를 행해 큰절을 하고는 “집사람이 돌아왔으니 서울로 올라가겠습니다.” 하는 것이다.
그렇게 세 사람은 서울로 돌아왔다. 펜션 주인 할머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미역이니 김이니 말린 생선이니 염전에서 만든 귀한 소금 몇 포대를 차에다 실어주셨다.
서울로 올라와 그들은 한집에 살기 시작했다. 그녀와 친구 오빠는 가끔 가곤 하던 시내 가까운 절에 가서 둘이 결혼식을 올렸다. 시아버지는 여전히 그녀를 자신의 아내와 착각했다. 신기하게도 시아버지는 어릴 적 피난민 대열에 끼어서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고향인 나남에서 흥남까지 한없이 걸어가, 배를 타고 남한을 향해 무작정 내려오던 날을 또렷이 기억했다. 피난길에 아버지를 잃어버린 모자는 울며불며 부산으로 내려왔다. 어디서부터 필름이 지워진 걸까? 인간의 기억은 어쩌면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건만 기억하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 정반대 타입의 사람도 있을 터였다. 삶의 나쁜 기억만 간직하고 사는 사람, 그녀의 친구 오빠, 아니 지금은 남편이 된 사람이 그랬다. 그에게 수학은 나쁜 기억들로 단순화되었다. 자신과 아버지를 버리고 간 아내, 늘 아프기만 하던 어머니의 기억, 아버지의 치매, 그녀는 쓰기만 하면 슬픔과 고독이 없어지는 치유의 안경을 만들고 싶었다. 3차원이나 4차원 입체영화를 볼 때 착용하는 안경을 쓰면 세상의 모든 사물, 아니 등장인물에게 중요하게 인지되는 사물들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온다. 영화 속의 기쁨과 슬픔과 외로움과 고통과 행복의 순간들이 안경을 쓰면 약간의 현기증이 나면서, 손에 쥘 듯 눈앞에 와 있다. 입체 영화용 안경을 쓰지 않는 데도 시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바로 눈앞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 특별한 치매증상이 아픔을 치유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시아버지를, 그를 닮은 남편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들이 가족을 이룬 이후 묘하게도 부자는 사이가 조금씩 나빠졌다. 늘 과거에 머무른 시아버지의 며느리에 대한 집착은 나날이 커졌다. 시아버지의 머릿속은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와 서해의 증도에 정착, 광활한 염전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어른이 되어 이뤘던 아내와의 인연의 시간으로 나뉘었다. 그 두 가지의 시간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아버지의 증상이 치매 때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남편은 점점 말이 없어져 갔다.
말 없음을 숫자로 환원하면 어떻게 될까? 점점 입을 굳게 다무는 남편을 보며 그녀는 섭섭한 생각이 사무쳤다. 자신에게 딱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던 안경사 일을 그만두고 그녀는 운명적으로 두 사람의 아내가 되었다. 하지만 그 두 개의 역할은 늘 힘에 부쳤다. 시아버지는 아들의 기분이 나빠 보일 때면 멀쩡한 사람처럼 늘 눈치를 봤다. 그럴 때면 시아버지는 섬으로 데려가 달라고 며느리를 졸랐다. 그날따라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새벽녘에 시아버지를 차에 태우고 그녀는 소금의 섬 증도를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