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가끔 떠올렸던 친구 오빠와 다시 만난 걸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이 좁은 서울 바닥에서 우연히 만난 건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워낙 마음의 문을 닫고 사는 그녀에게 그런 우연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았다.
게다가 그는 이혼한 뒤, 주말마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찾으러 전국을 돌아다니며 혼자 살고 있었다. 고등학교 수학교사였던 아버지는 어머니 없이 자식들을 혼자 키운 너무도 고맙고 훌륭한 존재였다. 그녀와 그는 아버지를 찾는다는 핑계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데이트를 시작했다. 전국의 무의탁 노인시설들과 노숙자들이 잠을 자는 지하철역들과 전국 어디에나 있는 24시간 찜질방들까지 그들이 안 간 곳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사실 그의 아버지는 조기 치매가 온 거였지 그렇게 노인도 아니었다. 멀쩡할 때는 아주 멀쩡했다. 정말 놀랍게도 그들이 우연히 만나 아버지를 찾으러 다니기 시작한 지 석 달 만에 아버지를 극적으로 찾았다. 그것도 아버지가 어떻게 그 먼 곳까지 갔을까 싶은 신안군 증도에서였다.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천사의 섬으로 불리는 증도는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되어 수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기도 했다. 2010년 증도대교가 개통되기 전에는 배를 타고 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섬이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배를 타고 그 먼 곳까지 갔을까?
전국의 파출소들에다 신고해놓은 지 몇 년 만에 아버지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노인이 중도의 바닷가 펜션에서 살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그런 일이 여러 번 있던 터라 별 기대도 안 했는데, 인터넷으로 보내온 사진을 보니 그의 아버지가 틀림없었다. 그녀와 그는 제보가 들어온 그날이 마침 휴일이라 아침 일찍 증도로 향했다. 슬로시티 증도는 늦게 개발된 탓에 횟집과 노래방으로 즐비한 다른 섬들에 비해 깨끗하고 아름다운 별천지였다. 차가 밀려 어두워진 뒤에야 도착한 증도의 밤하늘은 이름 모를 별들로 가득했다. 밤에는 가로등을 완전히 꺼놓는 탓에 증도의 모든 길은 칠흑처럼 어두웠지만, 별들만은 환하게 빛나 길손들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그녀와 그는 별을 보고 무작정 따라간 민박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그날 밤을 지냈다. 잠 안 오는 밤이었다. 결혼해서 호주에 가서 사는 그녀의 친구는 아버지를 찾았다는 오빠의 전화에 대고 흐느꼈다. 고등학교 때 친했던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친구는 그저 반갑고 고맙다고 말하며 울었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아주 끝나는 인연은 없다. 언제 어디선가 우리들의 인연은 다시 이어진다. 다음 날 아침 그녀와 그는 아버지가 살고 계신다는 화도로 향했다.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섬 증도는 소금의 섬이었다.
소금의 고향이라 할 증도는 소금 장인들의 땀과 열정과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대한민국 최고의 소금이 만들어지는 태평 염전으로 더 알려졌다. 그녀와 그는 차를 타고 달리면서 태평 염전의 소금 판 위로 하얀 눈꽃 같은 소금의 결정체들을 바라보며 눈이 부셨다. 아버지는 왜 이곳에 계실까? 그가 갑자기 이제야 생각이 난 듯 무릎을 쳤다.
“아버지가 부모님을 따라 피난을 내려와 정착한 곳이 바로 증도 태평 염전이었대. 1953년 증도의 태평 염전은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을 정착시키고 소금 생산을 늘리기 위해 조성된 염전이었대. 어린 시절 아버지는 소금을 만드는 부모님을 따라 염전에서 놀았던 기억을 내게 들려주시곤 했어. 왜 이런 생각이 이제야 나는 걸까?”
그녀는 문득 수학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준 옛날 옛적의 그를 떠올렸다. “수학은 복잡한 세계를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표현하게끔 도와주는 학문이거든.” 그 옛날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미분이 곡선을 직선으로 바꿔 사물을 무한대로 잘게 쪼개는 거라면, 적분은 쪼개진 것들을 더하거나 쌓아서 넓이를 계산하는 공식이야.”
그녀는 지난밤 캄캄한 증도의 하늘에 박혀있던 별들을 떠올렸다. 눈에 보이는 별들을 다 합하면 몇 개가 될까? 눈에 보이지 않는 별들도 다 합하면 몇 개가 될까? 이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슬픔으로 똘똘 뭉쳐진 소금 덩어리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