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점 ‘메리 포핀스’ 4
가게에 홀로 앉아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들어요. 이런 구절이 들려오네요.
‘몸의 장애는 한눈에 보인다. 하지만 마음의 장애는 첫눈에 보이지 않는다. 한 번 두 번 자꾸 만날수록 마음의 장애는 천천히 드러난다. 상대의 마음의 장애를 발견했을 때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의 손을 더욱 세게 꼭 잡을 것인지. 그냥 그 손을 놓을 것인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요. 끝까지 함께 가지 않을 거면 그냥 지금 손 놓아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문제는 우리 모두 타인을 포용하는 자기 그릇의 크기를 모르는 데 있을지도 모르죠. 남편을 포용하는 제 그릇이 너무 작은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러니 제가 수녀생활을 제대로 못 한 건 당연한 일이었어요. 남편의 병은 알고 보니 가장 가까운 사람이 소중한 걸 모르는 병이었어요. 멀리 있는 사람이,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운, 그런 병이랄까요. 남편이 돌아오지 않은 지 열흘째네요. 무슨 일이 난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가끔 하루나 이틀, 집에 돌아오지 않은 적은 있지만 이번엔 좀 기네요. 사라진 옛 아내를 찾아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을까요?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 저는 이제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요?
아무도 오지 않는 나른한 오후의 시간을 지나 누군가 가게에 들어와서 고색창연하게 늙어가는 기타를 어루만지며 얼마냐고 묻네요. 저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기타를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비매품이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나이가 짐작 가지 않는 손님은 그 기타가 언젠가 자신이 연주하던 기타라고 말하더군요. 자신이 많이 불행하다고 느낀 그 순간부터 소리가 나지 않더래요. 기타를 치지 않으면 한순간도 살아낼 수 없을 것 같았는데, 기타를 치지 않아도 살아지더래요.
그래서 저도 말했죠. 수녀가 되지 않으면 못 살 것 같아 수녀가 되었는데, 수녀가 되고 보니 수녀복만 벗으면 살 것 같아 세상으로 나왔다고요. 그런데 골동품가게에 이렇게 앉아 골동품처럼 낡아가는 시간들이 수녀 시절의 고독했던 시간들과 다름없이 느껴진다고요. 고도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늦게 만난 하나밖에 없는 남편도 열흘째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고요.
그는 선한 두 눈동자 사이의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정말 선한 웃음을 지었어요. 수녀복을 벗고 처음 세상에 나와 동해안으로 가는 기차를 탔을 때, 제 옆에 앉았던 사람이 남편이 아니라 이 사람이었다 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이 순간 제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어요.
손님은 마치 피치 못한 사정으로 오래전에 헤어져 다시 만나지 못한 애인을 만난 듯 감개무량한 얼굴로 기타를 어루만졌어요. 제가 가끔 먼지를 털어주는 탓에 기타는 고색창연하게 빛이 났어요. 손님의 손가락이 닿자마자 기타는 정말 거짓말처럼 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손님의 선한 눈동자에 눈물이 어렸어요. 저는 주인이 돌아왔으니 기타를 그냥 가져가시라 했어요.
손님은 한사코 두 손을 내저으며 돈을 가지고 오겠다고 말하고는 돌아갔어요.
그 손님은 다음날 적지 않은 돈을 들고 와 기타를 가져갔어요. 그리고는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가게에 들렀어요. 어떤 날은 기타를 들고 와 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죠.
정말 놀랍게도 그는 제가 좋아하는 ‘밥 딜런’의 ‘one more cup of coffee’를 들려줬어요.
저는 한 번 두 번 세 번, 자꾸만 그 노래를 들려달라고 졸랐어요. 선한 웃음을 지으며 그는 몇 번이고 그 노래를 들려주네요.
One more cup of coffee for the road
One more cup of coffee 'fore I go
To the valley below
(스틸라이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