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9
미국의 약국은 별의별 게 다 있는 참 편리한 곳이지만, 그 규모가 하도 커서 아는 사람을 만나도 서로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죠. 감기 기운이 있어서 타이레놀이라도 사 먹을까 싶어 들어간 약국 저쪽 구석에서 낯익은 뒷모습을 한 여자가 허리를 굽히고 물건을 고르고 있는 게 제 눈에 들어왔어요. 저도 모르게 그쪽을 향해 다가가는데, 왠지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어요. 바로 곁에 다가가 보니 그녀가 틀림이 없었어요. 어쩌면 그렇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우리는 반갑다고 호들갑을 떨며 약국을 나와 한참을 걸었어요. 겨울이지만 하늘은 파랗고 날씨는 정말 너무 좋았죠. 우리나라만 스타벅스니 커피빈이니 하는 커피집이 하도 많아 커피공화국이라 생각했었는데, 뉴욕도 그렇더군요. 아니 이 세상의 도시들이 다 커피공화국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는 언제 맨 처음으로 커피를 먹었을까? 어른이 되는 징표인양 언젠가 먹기 시작한 커피, 도대체 우리는 왜 매일 커피를 마시는가? 밥 다음으로 자주 먹는 커피는 우리의 고독에 어떻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 걸까? 커피에 중독된 우리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한 잔의 커피를 마신다. 뜨거운 커피, 아이스커피, 식은 커피,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 카페라테, 카푸치노, 모카치노, 모카자바, 콜롬비아 수프레모, 헤이즐넛, 킬리만자로, 탄자니아 등등…” 그녀를 서울도 아닌 뉴욕에서 그렇게 쉽게 우연히 만났다는 충격을 누그러뜨리기라도 하듯 제 머릿속엔 갑자기 커피에 관한 모든 생각들이 떠올랐어요. 길 건너마다 하나씩 있는 커피집이 그날 따라 한참을 걸어도 보이지 않았어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저기-” 손짓하며 우리가 들어간 곳은 던킨도넛 가게였어요. 갖가지 모양의 도넛을 내려다보며 저는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어요. 도넛 속에 제 가버린 사랑이 녹아들어 입에 들어가자마자 스르륵 녹아버리는 것 같았지만, 아무런 맛도 느낄 수가 없었어요. 제 눈물이 섞여 들어간 달고 짠 맛이라고나 할까요? 그녀는 예전처럼 뚱뚱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마른 듯한 몸에 걸친 허름한 검은 스웨터에는 오래된 가난이 묻어 있었죠. 그 부잣집 딸내미의 행색이 그렇게 초라해 보이는 게 낯설고도 가슴 아팠어요.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도넛과 커피를 마셨어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어요? 세월은 이미 그렇게 흘렀고, 제 앞에 앉은 그녀는 이미 기억 속의 ‘내 사랑 뚱뚱한 그녀’가 아니었어요. 예전처럼 그녀는 도넛을 게 눈 감추듯 먹지 않았어요. 도넛 한 개를 포크로 사등분하더니 그 중 두 개를 입에 넣어 아주 천천히 씹었어요. 저는 제가 그토록 오랜 세월 그리워하던 여자가 바로 앞에 앉은 그녀라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모든 사랑은 기적이지만 대부분의 재회는 그저 식은 커피의 맛을 닮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슬픈 시간이었죠. 제가 그리워했던 건 도넛을 눈 깜짝할 새 한 상자씩 먹어치우는 그녀, 뚱뚱하지만 아름답던 그녀, 살이 찔수록 깊은 첼로의 음률을 연주하던 그녀, 이유를 알 수 없는 괴로움에 고통스러워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늠름하기 짝이 없는 초라하지 않은 그녀였어요. 한없이 작아 보이는 그녀가 도넛을 천천히 씹으며 말했어요. “그렇게 갑자기 사라져서 미안해. 나두 네 생각 정말 많이 했어. 병원에서 너를 마지막 본 날 이후 난 부모님의 결정대로 뉴욕 가는 비행기를 탔어. 뉴욕에 사는 삼촌이 존스 홉킨스 병원의 신경정신과 의사여서 나를 그리로 부른 거야. 물론 삼백 살 먹은 비올롱 첼로를 옆자리에 앉히고 말이지. 기내식 식사가 나오는 데 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어. 승무원에게 도넛 한 개만 가져다줄 수 없느냐고 물었지. 불행히도 그 비행기 안에는 도넛이 한 개도 없었어. 갑자기 배가 고파진 나는 기내식이라도 먹어보려고 애썼지만 갑자기 구토가 나더라고. 그즈음 나는 도넛이 아닌 그 어떤 걸 먹어도 구토가 나서 토하곤 했어. 검사를 해보아도 의학적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지. 금방 토할 것 같은 배를 움켜쥐고 기내 화장실에 가서 한참을 토했어.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내 뱃속에서는 알 수 없는 노란 물질이 계속 토해져 나왔어. 믿지 못하겠지만 자세히 보니 그건 금을 닮은 어떤 물질이었어. 남들이 놀랄까 봐 나는 얼른 변기를 비우고 제자리로 돌아갔어. 수면제를 먹고 겨우 잠이 든 나는 뉴욕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잤던가 봐. 드디어 케네디 공항에 도착한 나는 첼로를 들 기운이 하나도 없었어. 비틀거리는 나를 보고는 내 뒤에 앉아 있던 어느 미국인이 첼로를 들어준 거야. 그게 우리들 인연의 시작이었지.”
저는 그녀의 지난 이야기를 들으며 그 세월 동안 그녀를 그리워하던 저 자신을 돌이켜보았어요. ‘삶이란 매순간 끊임없이 무너져가는 모래성이다.’ 문득 누군가 그렇게 썼던 기억이 떠오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