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8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엄마를 찾으며 울어대는 딸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저는 한동안 혼자 지냈어요. 왜 찾지 않았냐고요? 사실 그동안 아내는 수없는 이별의 신호를 제게 보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어쩌면 아내는 이별을 미뤄왔던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딱히 눈에 보이는 잘못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어쩌면 그게 더 사람 잡는 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알죠. 이를테면 꿈속에서 실컷 매를 맞고, 깨보니 아픔은 여전한데 멍 하나 들지 않은 멀쩡한 상태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아내 곁에서 내 마음속의 괴물은 치유되지 못한 채 그저 어슬렁거리고 있었던 거죠.
그 어떤 일도 아무리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다고 해도, 미루고 또 미루면 영원히 미룬 채로 결국 하지 못하고 마는 법이죠. 그러나 마침내 아내는 매일 생각만 하던 이별을 그날 아침 실행에 옮긴 것뿐이었어요. 별로 잘못 한 것도 없는데, 이별을 통보받는 게 억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혼자 있는 시간들이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누군가는 외로워서 술을 마시고, 누군가는 외로워서 아무하고나 닥치는 대로 섹스를 하고, 누군가는 외로워서 폭식을 하고, 누군가는 외로워서 이것저것 물건을 사죠. 모든 중독의 뿌리는 외로움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 사랑 뚱뚱한 그녀도 외로워서 도넛을 한 상자씩 먹어치웠던 거였고, 떠나간 아내도 외로워서 첼로를 껴안고 있었던 거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어요. 그렇다면 외로운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옳은 것일지, 한동안 저는 외로움을 잊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하루 두세 시간씩 걸었어요.
혼자서도 둘이서도 영원히 해결 불가능한 우리들의 난제 고독, 그 고독을 관리하는 능력에 따라 사람은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한다는 걸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었죠. 그렇게 외로운 날들 속에 해외출장의 기회가 주어졌어요. 행선지는 뉴욕이었죠. 뉴욕은 언제나 가보고 싶던 곳이었어요. 어쩌면 내 사랑 뚱뚱한 그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렜어요. 문득 뉴욕 맨해튼 길거리에서 그녀를 보았다는 대학 동창 놈의 말이 떠올랐어요. 계속 그녀를 따라가 아는 척했더니 그녀는 “저를 아세요?” 하더라며 동창생 녀석이 혀를 차던 생각이 났어요. 왜 모든 그녀들은 과거를 잊어버리는 걸까? 아니 모르는 척하는 걸까? 남자는 적어도 과거를 잊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여자들에게는 면면히 내려오는 유전자 속에 오래된 피해의식이 있어서 아프거나 싫은 기억은 잊어버리는 방어기제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만날 때는 여자가 더 집착하는 경우가 많을지도 모르지만, 헤어진 뒤에는 집착한 만큼의 속도로 깨끗이 잊어버리는 쪽도 여자가 아닐는지, 그런 생각이 드네요. 하긴 제게 집착하는 여자는 아무도 없었어요. 아이를 낳고 산 아내마저도 그렇게 쉽게 제 곁을 떠났으니까요. 어쨌든 뉴욕을 향해 떠나는 비행기 속에서 저는 오랜만에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어요. 뉴욕 월드 트레이드 센터 근처의 호텔에 짐을 풀고, 자유의 여신상이 손을 잡을 수 있을 것처럼 가까이 보이는 공원에 가서 산책을 즐겼어요. 어둑한 황혼에 손에 횃불을 들고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아름다웠어요. 문득 뚱뚱한 내 사랑 그녀와 뚱뚱한 자유의 여신상이 제 눈에 겹쳐져 떠올랐어요. 그녀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대는 내일 죽는다. 지금 이 순간 무얼 하고 싶은가?” 그렇게 하느님이 묻는다면 서슴없이 도넛을 한 상자씩 먹어치우는 내 사랑 뚱뚱한 그녀를 만나보는 거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싶은 기분이었죠. 뉴욕에 도착한 며칠 뒤 저는 정말 꿈속에도 그리던 내 사랑 뚱뚱한 그녀를 거짓말처럼 우연히 만났어요. 57가 매디슨 애비뉴에 있는 약국에서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