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7
점점 삐쩍 말라가는 아내를 마지막으로 안아본 건 바람이 스산하게 불기 시작한 11월 어느 날 밤이었어요. 참 이상하죠? 우리는 섹스가 사랑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사랑의 기능을 원활하게 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해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요.
아내와 결혼한 건 그녀를 안고 싶은 생각이 앞섰다기보다는 그녀 곁에서 편안히 쉴 수 있을 것 같은 절실함 때문이었어요. 결혼하고 나면 섹스는 어떻게든 기름을 친 톱니바퀴처럼 굴러갈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결혼을 한 후 저는 점점 아내와의 섹스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졌어요. 맞아요. 섹스든 학문이든 스포츠든 예술이든 사업이든 결국 집중의 문제라는 걸 알기 시작한 저는 너무 늙어버린 기분이 들었어요. 하지만 저만 그랬을까요?
아내를 마지막으로 안아본 그날 밤, 안간힘을 쓰는 저를 밀어내며 아내는 말했어요.
“여보 그만해요. 집중이 안 돼요. 당신하고 할 때마다 사람들이 기르다 버린 유기견들이 떠올라요. 오늘 오후 교보문고에 갔다가 나오는 길에 광화문 한복판에서 유기견 한 마리가 돌아다니는 걸 봤어요. 그 조그만 푸들은 길거리의 수많은 사람들 중 주인을 찾아 헤매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였어요. 불쌍한 그놈은 지하도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었어요. 조금 전까지도 곁에 있었던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 그 밑도 끝도 없는 지하도 계단은 그 조그만 강아지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끝없는 절벽처럼 보였어요. 근데 그 애처로운 강아지가 바로 나처럼 느껴졌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또다시 아침이라는 사실이 허무해요. 밤이 오면 또다시 밤이라는 사실에 불안해져요. 그 허무와 불안을 잠시나마 잠재워주는 건 내겐 첼로밖엔 아무것도 없어요. 여보, 우리 이쯤에서 헤어져요.”
저는 아내의 넋두리인지 절규인지 모르는 주절거림을 들으며 곁에서 잠든 딸아이를 생각했어요. 그 애를 저 혼자 기르는 건 쉽지 않을 거라는 절망적인 생각이 들면서, 저 역시 아내를 안을 때마다 집중할 수 없었던 기억들이 떠올랐어요. 어느 날은 몇 년 전 텔레비전 뉴스에서 본, 까만 보자기를 덮어쓴 한국인 선교사 ‘김선일’에게 탈레반이 권총을 겨누고 있는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불쌍한 그가 계속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던 장면이 아내를 안고 있는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어요. 또 어느 날은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병든 아이들이 떠오르곤 했죠. 왜 포르노 산업이 절대 망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어요.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가 굳이 셋이 하기도 하고 넷이 하기도 하고 집단으로도 하기도 하는 포르노 필름의 생애를 흉내 낼 필요가 있을지, 절망적인 기분이 드는 쓸쓸한 11월 밤, 아내는 소리를 죽이고 계속 울고 있었어요. 문득 저의 사랑 무기력증은 어쩌면 제 사랑을 훔쳐간 음악 선생님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 뚱뚱해질수록 풍요로운 소리를 내던 내 사랑 그녀의 첼로 소리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다음날 아침 아내는 말했어요. “여보, 지구 동물의 80퍼센트는 곤충이래요. 내 첼로 속에 벌레가 살아요. 그 벌레가 내 마음속으로 이사를 온 것 같아요. 내 마음속에 사는 벌레 때문에 나는 점점 말라가는 것 같아요. 식욕이 점점 떨어지고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아요.”
삐쩍 마른 그녀 곁에서 방실방실 웃고 있는 딸아이를 보면서 아내의 모성애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저는 알 수가 없었어요. 기르던 개 한 마리도 절대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제 자식도 제 부모도 갖다버리는 사람이 있다는 걸, 도대체 그 차이는 무엇인지 정말 알 수가 없다는 제 두서없는 생각들 사이로 아내가 켜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협주곡이 섞여들었어요. 첼로 속에 사는 벌레가 도넛을 한 상자씩 먹어치운다며 점점 살이 쪄가던 옛사랑 뚱뚱한 그녀와 먹지 않아 삐쩍 말라가는 아내의 마음속에 사는 벌레는 어쩌면 같은 벌레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저는 점점 절망적인 기분에 빠져들었어요. 아내가 집을 나간 건 그로부터 딱 일주일 후, 늦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 아침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