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6
참 이상하죠? 도넛을 한 상자씩 먹어치워서 매일 살이 조금씩 찌던 그녀와 반대로 아내는 뭘 잘 먹는 법이 없었어요. 결혼하기 전 짧은 데이트기간 동안 저는 그저 안 먹어서 살이 안 찌는 체질인가보다 생각한 정도였어요. 냉면 반 그릇을 겨우 먹거나 스파게티 반 접시, 스테이크라도 썰라치면 아주 조금 먹는 정도였으니까요. 어떤 날은 안 먹어도 나만 보면 배가 부르다며 일인분만 시키라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어요.
결혼을 한 날부터 그녀는 점점 더 삐쩍 말라갔어요. 뚱뚱한 여자와 삐쩍 마른 여자 중에 선택을 하라면 전 뚱뚱한 쪽이에요. 그 마른 몸으로 첼로를 드는 일은 늘 힘들어 보였지만 그녀는 첼로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해 보였어요. 부모를 잘 만났다면 유명한 첼리스트가 되었을 텐데 하고 한숨을 쉬곤 했죠. 어쨌든 아내는 학교 일에도 가사 일에도, 모든 인간관계에 다 성실한 좋은 사람이었어요. 자기는 안 먹어도 언제나 성심성의껏 저를 위한 식탁을 차리곤 했으니까요. 어느 날 저녁 식탁 앞에 앉아 아내는 밥술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며 제게 물었어요. “세상에 삼백 살이나 먹은 첼로가 있대요. 누가 그 첼로를 갖고 있다가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남에게 팔았대요. 그런데 팔려고 결심한 날부터 소리가 잘 나지 않더래요. 말을 안 듣는 첼로를 보기만 해도 눈물이 주르륵 흘렀대요. 아마도 악기도 기르던 개나 고양이처럼 정이 드는 생명체인가 봐요.”
저는 아내의 말을 듣다가 갑자기 정신이 퍼뜩 드는 기분이었어요. 그 첼로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느냐고 물으니 같이 첼로를 배우는 동료 교사한테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문득 잊고 살았던 뚱뚱한 그녀의 첼로가 떠올랐어요. 현실에선지 꿈에선지 우연히 맞닥뜨렸던 제 첫사랑 음악선생님이 들고 있던 낯이 익은 첼로도 떠올랐어요. 그게 같은 첼로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첼로의 흔적을 쫓아가다 보면 뚱뚱한 그녀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설렘이 제 온몸에 펴져 가는 걸 느끼며, 그날 저녁 저는 누가 들고 온 와인을 한 병 따서 혼자 다 마셨어요. 아내는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기 때문에 가끔 혼자 마시곤 했죠.
이상하게도 착한 아내와 같이 있어도 저는 조금쯤 늘 외로웠어요. 어느 날 밤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저를 향해 아내가 조용히 다가왔어요. “여보 당신은 도대체 왜 내 곁에 없는 거죠?” 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일축했지만, 제 마음 저도 알 수 없었어요.
괴물이 된 제 맘을 낫게 해 줄 유일한 사람일 거라고 믿었던 착한 그녀에게 저는 자신도 모르게 점점 거리를 두고 있었어요. 그럴수록 아내는 점점 말라갔고, 저는 아내를 안고 싶은 생각이 매일 조금씩 사라져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결혼 전에 가끔 만나던 여자를 길에서 우연히 만나 같이 술 한잔하다가 외박을 해 버렸죠.
다음 날 곧장 출근했다가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 거실에 넋 놓고 앉아 있는 삐쩍 마른 아내가 문득 사람이 아닌 이상한 생물체처럼 낯설게 느껴졌어요. 왜 외박을 했느냐 한 마디 묻지도 않는 아내의 모습은 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누가 다 발라먹은 생선처럼 앙상했어요. 하긴 아내가 좋아하는 유일한 음식이 남들이 다 발라먹고 살이 조금 붙어 있는 생선 뼈였어요. 밤이면 조용히 흐느적거리는 아내의 실루엣을 바라보면서 저는 언젠가 출장을 갔던 슬로베니아의 포스토이나 동굴에 서식하는 신기한 생명체 프로테우스를 떠올렸어요. 일명 수족관 안의 인어, 혹은 ‘휴먼 피시’라고도 불리는 그 생명체는 길이가 삼십 센티미터 정도이고, 팔다리가 달려 있으며, 동굴 속의 어둠 속에서만 사는 아주 예민한 동물이지요. 눈이 퇴화되어 없는 휴면 피시는 수명이 거의 사람과 같아서 팔십 년에서 백 년을 살며, 먹이를 안 먹고도 7년을 버틸 수 있다 하더라고요.
아내는 점점 출근하는 일을 힘겨워했어요. 저를 위한 아침 식탁을 준비하는 일조차도 힘들어했지요. 아내는 학교도 그만두고 점점 첼로하고만 같이 있고 싶어 했어요. 아이가 생기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딸아이가 생기고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죠.
너무 가벼운 몸으로 세상에 태어나 겨우 목숨을 건진 사랑스러운 딸이 두 돌을 맞은 날, 퇴근해서 돌아오니 멍하니 첼로를 껴안고 있는 아내 곁에서 어린 딸아이가 배가 고파 울고 있더라고요. 갑자기 저는 슬픈 생각이 들었어요. 왜 여자들은 늘 내 곁에서 행복하지 않은가? 도넛을 한 상자씩 먹어치우며 점점 더 뚱뚱해지든가, 아예 먹지 않아 비쩍 마르든가, 그러면서 어딘가에 맘을 뺏겨 이 세상에 없는 사람 같은 표정을 짓고 있든가. 아무 곳에도 없는 여자, 그녀가 바로 제 아내의 현주소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