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5
저는 정말 그녀와 결혼해서 평생 첼로소리를 들으며 살고 싶었어요.
퇴근하는 길에 도넛 한 상자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얼마나 행복할까, 눈을 감으면 뚱뚱한 내 사랑이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이 그려졌어요.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잊히는 게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새 서서히 잊히죠. 그리고는 몸에 있는 옅은 점처럼 그 기억이 좋으면 좋은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그렇게 마음에 남기 마련이죠. 남남이 되어버린 우리들 사랑의 기억은 대개는 기억하기도 싫은데 또렷이 기억나는 오래전에 꾼 악몽처럼 나쁜 기억이기 일쑤죠. 그 누구의 사랑의 기억인들 그렇지 않겠어요.
상처를 준 사람은 생각도 않고 있는 나쁜 기억들을 상처를 받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끌어안고 간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사랑, 그것참 무서운 일이죠. 문득 저도 모르게 수많은 여자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았을지 모르는 이 죄 많은 청춘을 속죄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어요.
상처는 종종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과거에 받은 대로 되돌려지곤 해요. 상처의 윤회랄까요?
하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제가 받은 사랑의 상처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어요. 도넛가게를 지나칠 때마다 도넛을 한 상자 사서 누군가에게 주곤 했죠. 음반가게를 지나치다 첼로 소리가 흘러나오면 그 음반을 사서는 누군가에게 선물하곤 했어요.
오랜만에 찾은 그리운 기억의 공간에서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기억 속 여기저기서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어요. 수많은 생각들 사이로 누군가 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어요.
평범한 외모에 얌전한 자태를 지닌 처음 본 여자와 마주앉아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고등학교 물리 교사라는, 처음 본 그녀는 나무랄 데 없는 신붓감이 틀림없었어요. 그걸 알면서도 저는 첫눈에 참한 그녀에게 별 호감이 생기질 않았어요. 형제가 몇이냐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시느냐- 뭐 그런 빤한 질문과 대답이 오가다가, 어릴 적 음악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는 그녀의 말에 갑자기 오래도록 만나 왔던 사람처럼 친숙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것도 첼리스트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 순간부터 갑자기 저는 그녀가 좋아졌어요. 실제로 일주일에 한 번은 취미로 첼로를 배우러 다닌다고 하더군요. 괴물이 되어버린 제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줄 것 같은 선하고 따뜻한 이미지에 이끌려, 두 달 뒤 저는 그녀와 결혼했어요. 실제로 아내는 참 좋은 사람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