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3
점점 뚱뚱해진 그녀는 걷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저도 모르게 갑자기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갔고, 그 후 다시는 그녀를 만날 수 없었어요. 그녀의 친구들 중 아무도 그녀를 만날 수 없었죠. 제게 그녀는 쉽게 잊히지 않았어요.
단 한 번의 정사로 끝이 난 음악선생님도 그토록 오랫동안 못 잊었는데 제가 어떻게 그녀를 잊겠어요? 병원에서 그녀를 데리고 도망가지 못한 게 한이 되었죠.
도망을 치더라도 첼로가 문제였어요. 그녀와 어디를 가려면 꼭 첼로와 함께여야 했어요. 기차를 타도 비행기를 타도 세 좌석을 예약해야 했어요. 단 한 순간도 첼로에서 눈을 떼지 않는 그녀에게서 저 역시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죠.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이 첼로는 보통 첼로가 아니야. 삼백 살 먹은 첼로를 너는 상상할 수 있어?”
이렇게 제가 그녀를 사랑하는데. 삼백 살이나 먹은 비싼 첼로를 가지고 있는데, 왜 그녀는 도넛을 먹지 않으면 우울증에 시달리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죠. 그녀는 늘 첼로와 도넛이 없으면 못산다고 말하곤 했어요. 그녀는 또 이렇게 말했어요.
“내 첼로 속에 벌레가 살아. 벌레 우는 소리가 내게는 들려. 그 소리가 조금씩 점점 커져서 첼로 소리를 다 잡아먹고 말 거야. 나는 그게 두려워.” 그렇다면 첼로 속에서 벌레를 꺼내면 될 거 아니냐는 내 질문에 그녀는 벌컥 화를 냈어요. “그 벌레는 내 첼로 속에서 밖에는 살 수가 없어. 어쩌면 전생의 내가 벌레로 변신해서 첼로 속에 살아 있는 건지도 모르잖아.” 이해할 수도 없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물었어요. “그렇다면 그 벌레는 무얼 먹고 살아? 첼로의 속을 갉아 먹고 사는 거야?” 그러자 그녀는 또 화를 벌컥 냈어요.
“그걸 말이라고 해? 그 벌레는 내가 먹는 도넛을 먹고사는 거야.”
그렇다면 도넛을 한 상자씩 먹어치우는 벌레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 뚱뚱해지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죠. 정말 그게 없다면 못사는 그 어떤 존재가 내게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보곤 했어요. 근데 제게는 그게 바로 이상하기 짝이 없는 그녀였어요.
아무리 뚱뚱해져도, 아니 뚱뚱해질수록 깊고 아름다운 소리를 연주하는 내 사랑 그녀를 어떻게 하면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제 머릿속은 온통 그녀뿐이었어요. 집으로 전화하면 그녀는 이제 한국에 없다는 말밖에는 들을 수 없었고, 몇 날 며칠 그녀의 집 앞 골목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렇게 제 청춘은 첼로 켜는 두 여자 때문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버렸죠. 제 대학시절은 그렇게 끝날 줄 모르는 방황의 연속이었어요. 수업을 아예 들어가지 않고 그녀를 찾아 온 거리를 헤매는 날이 많아졌고, 드디어 저는 수업일수 부족으로 전 과목 낙제를 하고 말았어요. 한 해를 꼬박 학교를 다시 다니면서 조금씩 정신을 차려가던 어느 날이었어요.
한 여자가 첼로를 안고 택시에서 내리고 있었어요. 얼핏 보기에 나이가 좀체 짐작이 가지 않는 그녀를 무작정 따라갔어요. 왜냐면 멀리서 보기에도 그녀가 안고 있는 첼로가 아무래도 낯이 익었기 때문이었어요. 바로 내 사랑 그녀의 첼로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저는 한눈에 그녀의 삼백 살 먹은 첼로를 알아보았던 거죠. 첼로는 저를 보고 이렇게 말하는 듯했어요. “왜 이제야 찾아왔어? 야속한 사람 같으니라고. 주인님은 어딘가 멀리 떠나 당신과 나를 그리워하고 있는데, 어디서 뭐 하다가 이제야 온 거야?”라고요.
그녀의 첼로를 껴안고 종종걸음으로 자신의 아파트 현관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 묘령의 여인의 뒷모습은 왠지 낯이 익었어요. 어쩌면 꽤 유명한 첼리스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저는 그녀의 뒤에서 더듬거리며 말했어요.
“실례지만 말씀 좀 묻겠습니다. 그 첼로의 전 주인이 누군지 혹시 아시는지요?”
제 절실한 목소리에 흠칫 놀란 듯 그녀가 얼른 뒤를 돌아보았죠. 아파트 길목마다 노란 은행잎이 소복이 쌓인 깊어가는 가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