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입술 7회
새벽녘까지 뒤척이다 라디오 소리에 눈을 뜨면 어느새 아침입니다. 라디오 속에서 친근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말하는군요. “오늘도 추억이 됩니다”라고요. 그렇고 말고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외로운 삶을 살다간 ‘골프 치는 변태’의 아내의 슬픈 이야기도 어느새 추억이 되어 떠내려갑니다. 그녀의 죽음이 정말 제 탓이었을까요?
그렇다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 탓으로 이루어지는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아무 생각 없이 남에게 내뱉은 말들, 나도 모르는 사이 남긴 타인의 지울 수 없는 상처들, 그 상황이 전쟁이라면 우리는 모두 살인자들이거나 살인 미수범들이겠지요.
꽃다운 열여섯 나이에 자신이 무슨 일에 목숨을 걸었는지도 모르는 채 남의 나라 일본을 위해 가미가제 특공대가 되어 아까운 목숨을 버릴 뻔했던 소년, 일본 패망 후 운 좋게 고국으로 돌아와 국군이 되어 빨갱이들을 무찌르러 제주도로 내려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인 청년, 애국의 이름으로 수없는 동족들을 죽인 날은 괴로워서 아편을 맞고서야 잠들던 슬픈 젊음의 자화상을 떠올립니다. 육이오 전쟁이 발발하자 고향의 계엄사령관이 되어 북진, 압록강까지 올라가다 총에 맞아 그 상처의 고통으로 아편 중독이 되고만 슬픈 젊은이, 세 번의 자살미수 끝에 스물여섯 꽃다운 목숨을 저버린 슬픈 운명의 사람, 그가 바로 제 큰아버지십니다. 전쟁 때 억울하게 죽은 수많은 양민들과 모든 사람이 평등한 빈부 차이가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죽어간 그 시절의 진정한 빨치산들의 짧은 생애와 우리 큰아버지처럼 자기도 모르는 사이 운명이 정해져 버린 이 땅의 수많은 억울한 젊음들을 애도합니다.
긴 하루가 가고 저녁이 왔습니다. 바깥은 하얀 눈 속의 망막한 정적입니다. 내 이웃들은 아무도 외출하지 않나 봅니다. 차라리 사이코 부부가 소리를 지르며 대문이라도 걷어차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외로운 저녁입니다. 이층으로 올라가 맞은편 창을 바라봅니다. 며칠째 ‘골프 치는 변태’는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울고 있을까요? 다시는 어둠 속에서 빨간 불을 켜고 벌거벗은 채 저를 바라보는 일은 없을까요? 정말 그도 울고 있을까요?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을 켭니다. 텔레비전에서 속보가 나오고 있었어요.
아프가니스탄에서 무료 진료를 하던 국경없는의사회의 의료봉사단원들 중 여성 세 명을 포함해서 미국인 여섯 명, 영국인 한 명, 독일인 한 명, 아프간 한 명, 그리고 한국인 한 명, 도합 11명이 탈레반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충격적인 뉴스였어요. 순간 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텔레비전에 비치는 얼굴은 오빠가 늘 존경해 마지않던 미국인 안과 의사 ‘톰 리틀’씨였어요. 일행은 아프가니스탄 산간 오지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는군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무료 진료를 하고 있던 리틀씨가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산간 오지에 사는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스스로 위험한 산간지역을 찾아 나섰던 길에 변을 당했다는 뉴스였어요. 영국 미국 등지에서 온 의료봉사자들을 포함한 일행 앞에 두건을 쓰고 총을 든 괴한들이 나타났답니다. 그들은 다짜고짜 의료진을 숲으로 끌고 간 뒤 한 줄로 서게 했다고 생존자 중의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리틀씨는 침착하게 “우리는 의사다. 가난한 산간벽지의 아프간들을 치료하고 오는 길이다”라고 설명을 했답니다. 하지만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끔찍한 총성이 울렸답니다. 탈레반이 다른 사람들도 아닌 자국민을 도우러 온 의사들을 살해한 사실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고 텔레비전 뉴스는 전하고 있었어요. 온몸이 떨려왔어요. 탈레반의 총에 맞아 사망한 한국인 한 명이 오빠가 틀림없다는 생각에 저는 숨이 막혀왔어요. 사망이 확인된 의료봉사자들 중, 아내와 세 딸까지 데리고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가 사십여 년을 그곳에서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며 살아온 미국인 안과의사 ‘톰 리틀’과 치과 장비를 매달고 에베레스트산 중턱까지 올라가 가난한 환자를 치료하곤 하던 영국인 치과의사 ‘토마스 그램스’도 오빠에게 들은 낯익은 이름이었어요. 하지만 유일한 한국인 의료봉사자의 신분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뉴스는 말하고 있었어요.
오빠 사랑하는 나의 오빠, 하지만 방송국으로 연락해도 아직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만 계속할 뿐 오빠는 전화도 불통이고 이메일도 작동하지 않았답니다.
사랑하는 당신, 제가 보낸 몇 통의 편지에 답장 한 번 주시지 않던 당신, 하지만 제 꿈속에 찾아와 언제나 발그레한 미소로 “자매님 저도 자매님을 사랑하고 있어요” 그렇게 눈으로 말해주던 당신, 오빠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그렇게 저는 뜬 눈으로 그 밤을 하얗게 새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