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입술 4회
벌거벗은 나무들 틈새로 이웃들의 모습이 더욱 잘 보이는 쓸쓸한 초겨울입니다.
출근했다 돌아오는 길에 사이코 부부네 집에서 육십쯤 되었을 낯선 여인네 한 분이 걸어 나오는 걸 봤어요, 웬일인지 그 집은 비어 있었어요.
그 아줌마인지 할머니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낯선 여인은 그 집에서 나와 우리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어요. 마치 자기 집이라도 되는 양 자연스러운 발걸음으로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저는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어요. 마치 총 맞은 것처럼 저는 움직일 수가 없었답니다. 그녀는 우리 집 마당으로 걸어 들어가 잠겨 있는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는 거예요. 잠시 숨어서 구경만 하다가 손님처럼 그녀의 뒤에 서서 물어보았죠. “아주머니 우리 집인데 무슨 볼일이세요?” 그랬더니 그녀는 이렇게 터무니없는 대답을 하는 거예요.
“뭐? 너네 집이라고? 여기 우리 집이거든. 이 옆집도 그 옆집도 다 우리 집이야. 빨리 문 열어.” 저는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위협했고, 그녀는 마침 우리 집에 찾아오신 수녀님을 보자 놀랜 얼굴로 도망치듯 사라져갔어요. 수녀님은 저를 위해 기도해주셨어요, “사랑하는 마리아, 세상의 모든 악에서 그녀를 구하옵소서. 아멘.”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토요일입니다. 하루 종일 집안을 반들반들하게 쓸고 닦아요. 저는 청소 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모든 잡념이 사라지는 충만한 순간이지요. 그렇게 청소를 하고 나서 오랜만에 저는 텔레비전 앞에 앉습니다. 생각 밖에 그 영화는 공포영화였어요.
별로 공포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저는 웬일인지 그 무서운 영화에 홀려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갑자기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렸어요. 그 순간 누군가 우리 집 대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나가보니 우리 집이 자기 집이라고 우기던, 바로 그녀였어요.
번개 치고 천둥 우는 밤에 비를 맞으며 찾아온 손님의 모습은 텔레비전 공포영화 속의 주인공보다 더 무서웠어요. 그녀는 저를 밀치고 집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와 뭔가를 찾는 듯 온 집안을 걸어 다녔어요. 할 수 없이 저는 동네 파출소에 전화를 걸었고, 얼마 뒤 젊은 경찰관 두 명이 그녀를 끌고 갔어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 집이 그녀의 탯줄을 묻은 곳이라 하네요. 어릴 적에 이 동네가 다 자기 집 땅이었대요. 무남독녀 외딸이던 그녀는 옆 동네에서 제일 부잣집 아들이랑 결혼을 했다나 봐요. 학벌도 좋고 얼굴도 잘생긴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 줄 알았던 그녀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든 건 그 잘생긴 남편이었어요. 사업한답시고 양쪽 집안을 거덜 내고, 노름과 계집질에 빠져 허우적대며 인생을 탕진하던 그는 이렇게 천둥 치는 날 만취한 채 걸어오다가 사고를 당해 죽었다나 봐요. 평생을 심심하면 얻어맞고 살아온 그녀는 죽은 남편이 아쉬울 리 없을 텐데, 남편이 죽은 그날부터 정신이 이상해졌다고들 해요. 그래서는 어릴 적 자기가 살던 집터를 찾아다니는 거라네요. 이 동네 토박이 부동산 아저씨가 말하기를 너무 불쌍한 여자니까 용서하래요.
용서하고 말구요. 오늘은 그녀를 위해 기도합니다. 마치 자기 땅을 통째로 빼앗긴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아프리카 마사이 원주민을 떠올립니다. 그녀의 탯줄이 묻혀 있는 곳이 어딘지 모르지만 저는 집안 곳곳을 다니면서 성수를 뿌렸어요. 지치고 병든 그녀의 영혼이 어릴 적 행복했던 본래의 그녀로 거듭나기를 빌면서요. 사람 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고단합니다.
갑자기 옆집이 소란한 걸 보니 조폭할머니네 집에서 막걸리 파티를 하나 봐요. 창밖으로 내다보니 체격이 무지하게 큰 남자들이 검은 양복을 입고 가득 둘러앉았네요. 그중에 가장 허우대가 좋은 사람이 할머니 애인이래요. 갑자기 조폭할머니가 우리 집 문을 두드리며 말씀하시네요. “어이 빨간 입술, 같이 놀자. 여기 남자 무지 많다. 하나 골라잡아.”
저는 조용히 침대 속으로 들어가 없는 척합니다. 커튼을 열고 바라보니 ‘골프 치는 변태’가 벌거벗은 채 빨간 불을 켜고 또 이쪽을 바라보고 있네요. 이제는 그런 것쯤 무섭지도 않아요. 원래 병적으로 노출증이 있는 남자들은 오히려 공격적인 행동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대학시절 학교 앞 기찻길에서 여학생들이 나타나면 바지를 내리던 할아버지가 생각나요. 언젠가 지하철에서 만난 바바리 맨도 떠오르고요. 풍덩한 바바리를 입고 내 맞은편에 앉은 그 젊은 남자는 기분 나쁠 정도로 하얀 피부에 여자처럼 고운 입술로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어요. 그날따라 그 칸의 승객은 거의 단둘이라고 할 정도로 사람이 없었고요. 그가 그 풍덩한 바바리를 나를 향해 펼치자, 벌거벗은 아랫도리가 그대로 제 눈앞에 펼쳐졌고, 제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자마자 그는 혼비백산한 얼굴로 자취를 감췄어요.
그 뒤로 저는 입술을 더욱 빨갛게 바른답니다. 이 세상에 입술을 빨갛게 바르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지요. “인간은 화장하는 동물이다.” 그게 제 나름의 인간에 관한 정의 중 하나예요. 입술을 빨갛게 바르면 왠지 세상의 악한 존재들이 다 도망갈 것 같아요. 아니 반대라고요? 저는 가끔 벌거벗은 채 거리에 서 있는 꿈을 꾸어요.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서 있는데, ‘골프 치는 변태’가 벤츠를 타고 제 뒤를 따라옵니다.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지 못하도록 그가 저를 태워주었으면 싶은데 그는 그냥 따라오기만 합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긴지 영원한 지옥처럼 느껴졌어요. “네가 곤경에 처했을 때 도와주기는커녕 구경만 하는 사람, 저것이 바로 네 이웃의 실체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누군가 옷을 빌려주면 안 될까? 하지만 아무도 옷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그때 사랑하는 당신이 저쪽에서 나타나 자신의 사제복을 벗어서 제게 걸쳐줍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제가 입어본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옷입니다. 이제 저는 조금 전과는 달리 이 꿈에서 영원히 깨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아멘.”